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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구마

사이다 글ㆍ그림, 1만3000원, 반달

‘사이다’라는 개성 만점 필명을 지닌 작가가 전작 <가래떡>에 이어 고구마라는 국민 간식을 소재로 두 번째 먹거리 이야기를 펴냈다. 고구마를 덩굴째 쭉 뽑아 올리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뿌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고구마는 보는 순간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 나올 만큼 하나같이 못난 얼굴들이다. 이 책은 <고구마구마>라는 제목처럼 ‘~구마’라는 말을 리듬감 있게 되풀이한다. ‘고구마는 둥글구마’, ‘고구마는 크구마’, ‘길쭉하구마’ 같은 식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웃지 않고는 못 배기는 고구마 친구들의 재미난 모습과 툭툭 던져놓은 대사가 맛깔스럽다. 허리 굽은 고구마, 배가 불룩한 고구마, 온몸에 잔털이 난 고구마, 왠지 모르게 좀 험상궂게 생긴 고구마…. 고구마들은 하나같이 당당하게 ‘나도 고구마구마!’를 외친다. 책 중반쯤 ‘못생겨도 이상하게 생겨도 고구마는 모두 맛나구마’라는 글은 유독 통쾌함이 느껴진다.​

 

사과가 주렁주렁

최경숙 글ㆍ문종인 그림, 1만1000원, 비룡소

한가로운 시골집 풍경이 펼쳐지고 대청마루 위 소쿠리에는 사과 한 무더기가 담겨 있다. 때마침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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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양이의 장난으로 안채 마당에 와르르 쏟아져버린 사과. 그중 한 알이 저 멀리 돌담 밑까지 데굴데굴 굴러간다. 풍뎅이와 작은 벌레들이 달콤한 사과 향에 취해 몰려들고 이에 뒤질세라 땅강아지와 지렁이도 고개를 내민다. 시간이 흐르자 사과가 품고 있던 까만 씨만 남아 흙 속에 뿌리를 내린다. 촉촉한 봄비, 따뜻한 햇살을 듬뿍 받으며 쑥쑥 자란 사과는 몇 해 동안 추운 겨울을 씩씩하게 나더니 어느새 마당 한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훌쩍 자랐다. 그리고 때가 되자 가지가 휠 정도로 주렁주렁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 애벌레며 산새, 동네 아이들에게 기꺼이 열매를 나눈다. 사과나무의 한살이를 시적인 글과 풍성한 그림으로 담아낸 이 책을 보고 나면 마트 매대에서 혹은 시장 좌판에서 무심코 장바구니에 옮겨 담았던 사과가 더 이상 예사로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과나무의 삶과 생태를 감동적으로 담아낸 특별한 그림책.​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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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스스무 글ㆍ그림, 9500원, 한솔수북

딸기의 생을 이토록 강렬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 일본의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신구 스스무가 쓰고 그린 딸기 이야기. 한 편의 절제된 시(詩) 같은 글과 예술가의 감각적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아, 정말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입안 가득 베어 물면 달콤한 향이 온몸으로 전해오는 딸기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질까. 햇빛, 별빛, 바람, 저녁노을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진한 녹색 꽃대 위에 별처럼 예쁜 딸기 꽃이 피어있다. 그리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고 하얗던 딸기가 붉디붉게 익어가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알의 딸기 안에 얼마나 많은 우주의 섭리가 담겨 있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그림책.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딸기의 싱그러움과 달콤한 냄새가 마음속에 진하게 남을 것이다.​

 

지렁이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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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미 글ㆍ그림, 1만2000원, 사계절

책의 첫 장, 단정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사 모자를 쓴 고양이가 등장해 “빵을 만들 거예요”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다음 커다란 볼에 밀가루, 이스트, 소금, 설탕, 미지근한 물을 들이붓는 장면, 반죽을 하는 손과 부풀어 오르는 반죽, 요리조리

빵을 만드는 손, 그리고 오븐에서 고운 갈색으로 구워지는 장면이 차례대로 나온다. 군더더기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빵 만드는 이야기만 담았을 뿐인데 이 책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과감한 단순함 덕분에 강렬하게 그림과 글에 빨려든다. 그리고 책 속 ‘고양이 셰프’만 따라하면 나도 어렵지 않게 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빵 냄새가 풍겨오는 것만 같은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지는 ‘맛있는’ 그림책.​

 

콩 풋콩 콩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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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스스무 글ㆍ나카지마 무쓰코그림, 9500원, 시금치

따뜻한 어느 봄날, 옆집 할아버지에게 콩 열 알씩을 받은 먹보 삼형제의 이야기. 삼형제가 콩 열 알 가지고는 배불리 먹을 수 없다고 불평하자 할아버지는 콩을 물에 담가 싹을 틔워 밭에 심으라고 알려준다. 할아버지가 일러준 그대로 하자 콩에서 싹이 올라와 쑥쑥 자라더니 꽃이 피고 진 곳마다 주렁주렁 콩 꼬투리가 달린다. 게다가 물에 심으려고 불려두었던 콩을 깜빡 잊은 채 며칠 지냈더니 맛있는 콩나물로 자라 있다. 열 알의 콩으로 수많은 콩을 얻게 된 삼형제는 수확한 콩으로 콩자반, 콩나물 라면, 콩나물 채소볶음을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이듬해 봄, 거둔 열매이자 씨앗인 콩을 다시금 밭에 심는다. 콩의 한살이를 친근한 옛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그림책으로 콩을 싫어하는 아이 옆에 슬며시 밀어놓기 딱 좋다.​

 

즐거운 빵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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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자와 도시코 글ㆍ하야시 아키코 그림, 9500원, 한림출판사

여기 재미난 ‘빵 만들기’ 이야기가 한 편 더 있다. 노석미 작가의 <지렁이 빵>이 심플함의 미학을 보여줬다면 하야시 아키코가 그려낸 <즐거운 빵 만들기>는 마치 신나는 요리교실 같다. 빵집에 나란히 진열된 고소한 빵 냄새에 끌린 누나와 남동생은 손수 재료를 구해 빵 만들기에 도전한다. 양 갈래로 총총 머리를 땋은 누나가 빵 만들기 대장, 그리고 남동생 둘은 누나의 특급 조수다. 한껏 들뜬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재료를 준비해 진득진득 빵 반죽을 치대고 반죽이 부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소라, 고양이, 코끼리, 발바닥 모양으로 반죽을 빚어 오븐에 빵을 굽는다. 재료 구하기부터 맛있게 빵을 먹기까지 신기해하는 표정, 놀라는 모습, 호기심 어린 눈빛 하나하나가 아이다움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장황한 설명이 아닌 리듬 있는 문체도 매력적.​

 

채소가 좋아

이린하애 글ㆍ조은영 그림, 9000원, 길벗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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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아줘, 뽑아줘”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책장을 넘기니 땅 위로 힘차게 연둣빛 줄기를 뻗은 채소가 있다. 쑥 뽑아 올리니 주홍빛 당근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에는 “따줘, 따줘” 하며 꼬불꼬불 덩굴 속에서 오이가 말을 건넨다. 다음 쪽에는 풍성한 잎사귀 가득한 상추가 “뜯어줘, 뜯어줘” 하고, 올망졸망 모여 있는 딸기와 주렁주렁 매달린 고구마도 차례대로 말을 건다. 땅속에서 자라는 당근, 뜯어 먹는 상추, 쭉쭉 뻗은 줄기마다 맺힌 토마토 등 싱싱한 채소가 자연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라는지 그리고 수확한 모습은 제각각 어떠한지 친절하고 재미나게 알려주는 아기 그림책. 반복되는 문장과 리듬감 있는 운율이 경쾌하다.​

 

된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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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미진 글ㆍ강은옥그림, 1만원, 키즈엠

찬 바람이 몹시도 불던 날, 멸치 세 마리가 오들오들 떨며 숲길을 걷고 있다. 바로 그때 그들 앞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이 나타나고 멸치 삼총사는 온천물에 퐁당 몸을 담근다. 한편 된장을 머리에 이고 이웃마을에 가던 감자들도 추위에 몸을 웅크린 채 발길을 재촉하다 온천욕 중인 멸치를 발견하고 너나 할 것 없이 동참한다. ‘식재료들의 온천욕 이야기’ 같지만 실은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음식 재료를 의인화하여 구수하고 맛난 된장찌개 끓이는 과정을 재미나게 담아낸 그림책. 각각의 식재료가 온천으로 향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토속 음식 된장찌개 끓이는 방법까지 자연스레 배울 수 있어 일석이조.​

 

산딸기 크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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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젠킨스 글ㆍ소피 블래콜 그림, 1만3000원, 씨드북

달콤하고 부드러운 서양의 대표 디저트 산딸기 크림봉봉(Fruit foolf). 부드러운 생크림에 신선한 과일을 으깨어 차갑게 먹는 간식으로 한입 먹으면 “음~ 달콤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책은 수백 년이 지나도록 한결같은 맛을 내는 산딸기 크림봉봉의 요리법을 네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100년 단위로 시대를 쪼개 옴니버스 방식으로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성이 독특하다. 300년 전 영국의 작은 마을에 살던 모녀는 덤불을 헤쳐 야생 산딸기를 따고 직접 소젖을 짜서 이 달콤한 디저트를 만들었다. 100년, 2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는 보다 쉽게 산딸기를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우유 역시 젖소에게서 직접 짜던 걸 시장과 마트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변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나뭇가지 거품기는 전기 거품기로, 우물에서 떠온 물은 상수도로 바뀌었고 언덕배기 위 얼음 창고는 전기 냉장고로 변화했다. ‘산딸기 크림봉봉’이라는 디저트 하나로 음식사는 물론 문화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 책은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은 인류사까지 담담히 다룬다. 백인 가족 대신 부엌일을 하는 흑인 모녀를 통해 미국 노예사를 드러내고 여성이 가사 일을 도맡는 풍경으로 남녀 불평등을 드러내는 식.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서는 아빠와 아들을 현대의 주방에 데려다 놓고 그들이 손님들을 위해 정성스레 산딸기 크림봉봉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4세기가 지나도록 변치 않은 맛 산딸기 크림봉봉과 그만큼의 세월을 지나며 서서히 변화해온 인류의 역사를 한 권의 책속에 밀도 있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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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씨

조혜란 글ㆍ그림, 1만1500원, 사계절

<할머니 어디 가요?> 시리즈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조혜란 작가가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엮어낸 소담스런 상추씨 이야기. 돌멩이를 조르르 둘러 만든 동그란 텃밭에 빨간 장화를 신은 꼬마 아이가 상추씨를 뿌리고 간다. 이내 바람 맞고, 비 맞고, 햇빛 받은 상추씨가 싹을 틔운다. 꼬마 아이는 이따금 상추에 물도 주고 빼곡해진 상추를 솎으며 돌봐준다.

그리고 잘 자란 상추로 고기쌈 싸 먹고, 회쌈 싸 먹고, 겉절이도 하고, 비빔밥에도 넣어 맛있게 비벼 먹는다. 한편 바람에 날려 돌담 밖으로 무심하게 뿌려졌던 상추씨 하나가 무럭무럭 자라 꽃대를 올린다. 노르스름한 상추꽃이 남긴 꽃씨를 아이가 정성스레 거두어 알록달록 고운 종이에 잘 싸둔다. 꼬마의 손을 통해 상추씨를 건네받은 누군가가 펼쳐갈 새로운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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