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차원 대책 절실…中 의존도 낮추는 체질 개선도 필요

중국 시장은 기회로 가득했다. 국내 기업들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장기화되면서 무덤이나 다름없게 됐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간담회을 가진 대기업들은 정부 차원의 사드 수위 완화책을 내심 기대했다.

이 자리에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중국에서 사드 영향으로 매출이 줄면서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구본준 LG 부회장은 “전기차용 배터리를 (중국이) 아예 일본 것은 오케이, 한국 것은 안 된다고 명문화 비슷하게 해놨다”며 “중국 차에 (한국산 배터리를) 못 판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기대는 허사가 됐다. 정부는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도발에 사드 4기를 추가 배치키로 결정했고, 속내가 불편한 중국의 한층 강화된 사드 보복이 현실화 되고 있다.

이미 사드 여파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은 망연자실 한 모양새다. 사드 보복 장기화로 인해 추가 피해가 불보듯 뻔한 탓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간 소통이 본격화 되며 적지 않은 기대감을 품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사드 추가배치로 인한 양국간 기류를 보면 사태 완화는 커녕, 보복이 더 노골적이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당장 국내 산업계에서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순익 급감을 맛 본 자동차와 유통업계는 좌불안석이다.

현대·기아차는 사드 보복 여파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기아차의 올 상반기 중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났다. 중국은 현대·기아차에게 전세계 시장에서 판매 비중이 가장 높은 시장이다. 사드 보복이 본격화된 2분기 기준으로는 64% 급감했다.

현대·기아차 안팎에서는 사드 쇼크가 하반기까지 지속될 경우 자칫 올해 연간 판매량이 700만대 초반 수준으로 추락하는 심각한 판매 급감에 대한 우려도 불거진다.

배터리 업계도 고심이 깊다. 국산 배터리는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에서 원천 배제되면서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지난달부터 보조금 지급 명단에 없었던 일본산 배터리가 추가되면서 나왔던 기대감은 급속히 사그라졌다.

사드 보복으로 가장 깊은 상처를 입은 유통업계는 중국 영업을 사실상 접어야 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까지 감돈다. 롯데쇼핑과 신라면세점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반토막 수준이다. 화장품업계도 마찬가지다. 아모레퍼시픽의 2분기 성장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급감했다.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가 메세지 전달 통로로 사용하고 있는 롯데마트는 위기감에 휩싸이고 있다.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로 1~2곳의 매장에 추가로 폐점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중국 내 롯데마트 99곳 가운데 74곳은 중국 정부의 소방 점검 등 상식밖의 이유로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13곳은 자율 휴업 중이다.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중국 내에서 1800여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 아모레퍼시픽이나 100여개 매장을 보유한 LG생활건강, 미샤 등도 영업정지 조치의 다음 타깃이 될까 벌벌 떠는 처지다.

사실 사드 사안은 일개 기업이 통제 불가능한 변수다. 국가 단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만큼, 기업들의 자구책은 큰 의미가 없다. 기업들이 사드 보복과 관련,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사태 해결은 요원하다. 지난달 29일 문 대통령이 사드 잔여 발사대 배치를 전격 지시한 이후에도 정부는 열흘 가까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실행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온갖 카더라 수준의 추측성 보도만 무성하게 쏟아지는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력이 요구된다. 국내 산업계의 피해가 크지만 우리나라가 중국의 최대 수입국이라는 점과 중국 내 국내 기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감안하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갈수록 중국도 득보다는 실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점과 함께 사드 배치가 중국엔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 미국이 함께 참여하도록 하는 운영의 묘를 발휘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 산업계의 체질 개선도 요구된다.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지나치게 높은 게 사실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5%, 전체 무역 흑자의 41%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과도한 의존은 중국에 대한 경제 예속의 심화는 물론, 예측하기 힘든 변수를 더 헤아리기 힘들 게 만들 수밖에 없다.

당장의 흐름을 뒤집기 위한 첫 단추는 정부가 외교력을 통해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폭풍이 지나가면 수출 다변화와 내수 활성화를 통해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기르는 노력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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