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칼럼
[행림회춘] '헬조선' 한탄하는 청년들만 탓할건가
  • 성철환 논설주간(cwsung@sisajournal-e.com)
  • 승인 2017.08.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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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불평등' 의미 퇴색시키는 '나쁜 불평등'…부모 세대 꿈과 열정 되살려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얼마전 내놓은 한국부자보고서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설문조사에 답한 금융자산소유액 10억원이상인 부자들 400명의 자산 구성을 보면 부동산이 52.2%로 단연 으뜸이다. 이들의 부동산 보유액은 평균 28억 6000만원으로 전체 가계의 부동산자산 평균 2억5000만원의 11배에 달한다. 부동산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크고 재산 축적과정에서 부동산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짐작케 한다. 가장 유망한 투자용 부동산으로는 재건축아파트를 꼽고 있다(27.7%).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이들 부자의 84.8%가 “자녀 세대는 부모의 도움없이 자수성가하기 힘들어졌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1년사이 11.8%포인트가 높아진 수치라고 한다. 정작 자신들은 69%가 상속이나 증여가 아닌 자수성가로 부를 일궜다. 보유자산을 자녀에게 상속 또는 증여하겠다는 응답은 95.7%에 달했다.

부자 보고서에 담긴 메시지는 한마디로 한국의 부자들은 부동산(주로 아파트)에 투자해 스스로 부를 일궜지만 자녀들 세대는 상속 또는 증여로 부동산을 물려받지 않고는 자신들처럼 자수성가해 부자가 되기는 글렀다는 것이다.

지난달 명망있는 두 대학 교수가 SNS상에서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 칭하는 청년들의 인식을 놓고 느닷없이 격한 논쟁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쪽은 "이 땅을 헬조선이라고 욕할 때 조부모와 부모세대가 감당했던 어려운 시절과 흘린 땀을 똑바로 보라"고 충고했다. 그는 “응석거리고 빈정거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 당신들이 아프다고 할때 그 유약하고 철없음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고 헬조선을 일컫는 청년들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즉각 반박하는 글을 올린 다른 쪽은 "성장의 대가를 톡톡히 받은 베이비부머와는 달리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5000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이라고 상대 교수에 직격탄을 날렸다.


외국에서도 기적이라고 칭찬하는 우리나라의 성취를 헬조선이라고 한마디로 깔아 뭉개는 것은 지나친 자기비하요 자학적인 태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죽하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까 현실을 냉정하게 살피고 성찰하지 않으려는 기성세대의 태도도 오만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열심히 노력하고 땀을 흘리면 보상을 받는 세상이 바람직하다는 점에는 두 교수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견해를 가르는 것은 당위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실이 어떠냐는 것에 대한 판단이다. 한국 부자보고서가 보여주는 것은 뭘까.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자신의 저서에서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좋은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으로 구분했다.


좋은 불평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하게 하고 위험한 사업을 시작하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효율과 성과를 높여 사회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한 것이 바로 이런 불평등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남보다 더 잘하려는 동기를 주기보다는 기득권층에 부를 유지하는 수단을 보장해 줌으로써 오히려 사회구성원들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불평등도 있다. 요즘 금수저라고 일컬어지는 기득권층이 재산이나 소득의 불평등을 이용해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들 때, 또 교육이나 일자리 혜택이 가진 자에게만 집중될 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나쁜 불평등이다. 

 

이런 나쁜 불평등은 마치 성차별이나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 금수저가 아닌 집단은 자칫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사장되는 병폐를 낳기 십상이다. 당사자들의 절망감이야 더 말할게 없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살벌한 글로벌 경쟁속에서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제약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부자들 스스로도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처럼 자수성가 하기 어렵다고 토로할 정도다. 하물며 물려줄 재산조차 변변치 않은 부모들이나 그 자녀들은 어떻겠는가. 과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꿈을 실현하겠다며 열정을 갖고 꿋꿋히 정진할 수 있을까. 부자들도 자신의 자녀들이자수성가할 기회가 더 많아진다면 굳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향후 국정운영 로드맵을 담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들이 본격화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려는 부자증세, 다주택자에 초점을 맞춘 부동산대책 등이 그것이다.이런 정책의 상당수는 국회에서 법 개정을 거쳐야 비로서 실행이 가능하다. 

 

9월 정기국회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나쁜 불평등의 요소를 꼼꼼히 챙겨 제거함으로써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되뇌는 "국민을 위해"라는 말을 ​행동으로 실천해 보일 기회다. 하물며 특정 기득권층의 이익을 앞세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억지를 부리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헬조선'이라는 끔찍한 말에 공감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판에 나쁜 불평등을 뿌리 뽑는 일에 여·야가 따로 있어선 안된다. 

성철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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