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소비자는 뒷전이고 주주 이익만 앞세운 ROE경영…국민연금까지 이런 행태 편들면 안돼

지난 2007년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2년 전 당시 세계 최대금융회사였던 시티그룹은 역사상 최대인 250억달러의 이익을 시현하였다. 그 이전까지 엑슨 모빌과 애플 이외에 이런 천문학적인 규모의 이익을 기록한 전례가 없었고, 금융그룹 중에서는 전대미문의 기념비적 수치였다. 그러나 3년 후, 놀랍게도 시티그룹은 사실상의 파산상태에 이르게 된다. 드라마틱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를 시티그룹 역시 피해 나갈 수 없었던 까닭이다. 물론 미국정부의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TARP)의 도움으로 간신히 회생하긴 하였으나 실추된 명예까지 회복되지는 못했다. 


세계 금융위기 발발 이전, 북미와 유럽의 주요은행들도 씨티그룹처럼 수익성 제고를 위한 자기자본이익률(ROE) 경쟁에 열을 올렸다. 당시 도이치방크의 CEO였던 요제프 아커만은 무모하게도 ROE 목표치를 25%로 제시하기도 했었다. 주지하듯 ROE는 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따라서 ROE를 높이려면 분자를 키우거나 분모를 줄이면 된다. 자본집약적인 은행업에 있어서 가장 손쉬운 방법들은 차입금을 끌어들여 레버리지효과를 극대화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하여 소각하는 일들이다. 이 결과로 은행의 고위임원들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기도 했었다. 글로벌 은행들이 이런 일에 골몰하는 사이, 세계금융위기의 시계는 책각책각 돌고 있었으나 그들은 전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필자는 지난달 어느 금융지주회사가 개최한 주주와의 대화(Shareholder Roundtable)에 한 외국 기관을 대리하여 참석하였다. 금융지주 측에서는 회장과 이사회 멤버 전원이 참석했고 계열금융사들의 경영진도 배석했다. 참석한 주주들은, 국민연금 등 두 군데 국내기관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외국기관들이었다. 금융지주는 최대한의 성의를 갖고 행사를 준비한 듯 보였다. 그러나 기관들과 이사회간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모든 기관들의 요구사항이 ROE 10% 이상, 배당성향 30%이상으로 집약되는 것을 보면서 은행산업의 사회적 책임은 도대체 어디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실제로 ROE 경영은 주주이익 극대화를 가져올지는 모르나, 여타 이해관계자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최근 몇몇 국내 은행들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견 된다. 

 

한국씨티은행은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최근 점포 통폐합 계획을 발표하면서 향후 영업점수를 5분의 1 수준으로 줄인다고 하였다. 여타 국내은행들의 직원 수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2016년 KB국민은행은 약 550명, KEB하나은행은 270명, 우리은행은 240명가량의 인원이 줄었다. 

 

또한 ROE경영은 또 다른 이해관계자인 고객에게 부담을 전가시킨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2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대출금리는 38% 하락한 반면, 수신금리는 무려 59%나 하락했다. 그 대가로 은행의 예대 마진은 5년 전과 동일하게 1.97%P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즉 대출 이자는 비싸게 받고, 수신 이자는 상대적으로 싸게 지급함으로써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을 유지하거나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쯤해서 금융지주사 주주와의 대화로 다시 돌아와 보자. 그 자리에서 외국 투자기관들이 ROE 10%, 배당성향 30%를 주장해도 반박할 논리가 마땅치 않다. 

 

그러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사용자, 근로자, 소비자, 납세자 등)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은 외국투자자들과는 차별화된 의견을 제시했어야 했다. ROE증대, 배당성향 제고,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의 주주만을 위한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 은행의 사회적 책임과 이해관계자 이익에 대한 철학과 전략이 무엇인지도 따져 물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률은 특정 섹터의 ROE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 환경, 복지적 측면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예컨대 출생률, 고용률,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 자본시장의 투명성, 사회적 자본 등이 바로 그러한 지표들이다. 

 

따라서 특정 기업이나 섹터가 ROE 증대를 위해 여타 변수들을 희생시킨다면 그것은 기금 전체의 장기수익률로 봤을 때는 제로섬 내지 마이너스 섬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제 한국의 은행들도 씨티뱅크나 도이치방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자칫 브레이크 없는 ROE경영으로 위기를 자초하여 납세자들에게 손 벌리는 일은 진작부터 막아야 겠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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