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개봉…김훈 바람 이뤄질까

이미지=김태길 디자이너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 불리며 문단에 등장한 소설가 김훈의 작품이 영화로 각색돼 나옵니다. 최근 100쇄를 찍은 《남한산성》입니다. 김훈은 《칼의 노래》에 이어 두 번째로 100쇄 작품을 배출했다는 진기록도 갖게 됐습니다.

영화의 투자배급을 맡은 CJ엔터테인먼트는 최근 기자들에게 영화 ‘남한산성’이 오는 9월 말 개봉을 확정지었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해 11월 21일 촬영을 시작해 올해 4월 23일 끝마쳤습니다.

소설은 주화와 척화의 논쟁과 갈등이라는 큰 줄기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주화의 편에 선 최명길 역은 배우 이병헌이 연기했습니다. 척화의 길을 택한 김상헌 역은 배우 김윤석의 몫입니다. 척화와 주화의 갈림길 속에서 번민하는 왕의 역할은 배우 박해일이 맡았습니다. 소설에서도 중요한 몫을 담당했던 대장장이 서날쇠 역에는 배우 고수가 나섭니다. 배우 박희순도 수어사 이시백으로 분해 영화에 무게감을 더합니다.

27일 처음 공개된 예고편서 최명길 역의 이병헌은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라고 말합니다. 김상헌 역의 김윤석은 “한 나라의 군왕이 어찌 만 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라고 반박합니다. 그런데 김훈은 이들의 논쟁만 그리려던 게 아닙니다.

기자는 6년 전 한 일간지의 독자초대 강연장에서 김훈을 처음 봤습니다. 그 강연에서 기억나는 이야기가 몇 개 있습니다. 그걸 기자의 개인블로그에 기록해둔 덕에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가 있습니다. 당시 김훈은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오늘의 일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지나간 시대의 풍문으로 떠돌지 않기 위해서”라는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남한산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김훈은 이 소설이 미완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당시 기준으로 이미 출간 4년 7개월이나 지난 소설이 미완성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당최 무슨 말인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와중에 김훈이 다소 느리지만 단호한 말투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들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김훈 소설의 애독자들은 그게 조선시대의 백성을, 그리고 현대의 민초를 이야기하는 것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겁니다. 그렇다면 왜 쓰지 못했을까요?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장난?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혹은 말을 남기고 싶지만 남길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그도 아니라면 말을 해도 시대의 파고를 막는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아서 그들은 속으로 울었을 뿐입니다. 김훈은 자신이 《남한산성》의 시대에 살았다면 바로 그 ‘아무 말도 안하는 자’가 됐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김훈의 이런 생각은 꽤나 오래 그를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100쇄 특별판에 ‘못다 한 말’을 추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화와 척화로 나눠 피를 튀기며 싸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그 겨울을 보냈다. 나는 그들의 침묵에 관하여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 그 침묵의 의미에 접근할 수 없었다. 《남한산성》​은 ‘미완성의 습작’이다”라고 썼습니다. 


자, 이제 그 미완성의 습작이 2달 뒤면 영화로 우리를 만납니다. 어쩌면 영화는 소설보다 더 ‘주인공의 예술’이기도 합니다. 카메라의 렌즈가 주연과 조연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이병헌과 김윤석이 가진 무게감이 아마도 김훈의 기준에서 ‘미완성의 습작’이 될 가능성을 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기대감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소설 《남한산성》의 인물들은 완벽한 영웅이 아닙니다.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은 전작 ‘수상한 그녀’에서 역사적 영웅의 삶이 아닌 ‘우리 옆의 작은 영웅’을 절묘하게 그려냈습니다. 소설가 김훈의 펜끝이 향하지 못한 지점을 연출가 황동혁의 카메라가 포착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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