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스크린 2000개‧상영횟수 1만회 '파격'…실적부담에 ‘1주일 물량공세’ 커진 듯

영화 '군함도'가 개봉 이틀째 100만 관객을 돌파한 27일 서울 여의도 CGV에 군함도 광고가 걸려 있다. 영화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지옥섬'이라 불렸던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한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지난해 '베테랑'을 통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류승완 감독의 신작이기도 하다. / 사진=뉴스1

류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의 기세가 폭주 수준이다. 화제는 논란과 자매관계다. 관객 반응이 뜨거운 것에 비례해 다양한 논쟁거리가 스멀스멀 수면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중 영화산업과 관련해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다. 이틀 연속으로 군함도가 ‘일일 1만회’라는 압도적인 상영횟수를 기록한 탓이 크다. 영화계 ‘투톱’인 극장과 투자배급사가 그만큼 전폭적으로 스크린을 몰아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논란이 일어날 걸 알면서도 무리수를 뒀을까?

그 이유를 칼로 무 자르듯 단순히 해석해 내놓기는 어렵다. 업계의 말처럼 압도적인 관객 예매율은 스크린 배정에 가장 중요한 지표기도 한다. 그럼에도 수수께끼는 남는다. 상영횟수 1만회라는 수치는 그만큼 영화계에서는 상징적이기 때문이다.

일단 소폭이지만 과거보다 극장이 늘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배급‧상영업계가 동시에 직면한 실적 부담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막대한 제작비 탓에 워낙 높아진 손익분기점도 업계의 행동을 자극하는 요소다.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최근 부쩍 중요해진 ‘개봉 첫 주’에 물량공세를 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다는 얘기다.

◇ 충무로의 ‘1주일 경제학’이 만든 물량공세

28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군함도’의 개봉 이틀 간 누적관객수는 155만명으로 집계됐다. 군함도의 첫날 관객 97만명은 부산행과 미이라(각각 87만명)을 넘는 역대 최고기록이다. 이 덕에 이틀 만에 누적 매출액이 100억원을 넘어섰다.

영화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건 단연 상영횟수다. 군함도는 26일 개봉일에 전국적으로2027개 스크린을 확보해 1만 174회의 상영 기회를 얻었다. 종전 최고기록이던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의 1991개 스크린과 최근 ‘스파이더맨:홈커밍’의 1965개 스크린을 넘어선 수치다. 하루 1만 상영횟수는 국내 영화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에는 ‘검사외전’이 9451회가 상영돼 독과점 논란이 불거졌었다. 국내 영화가에서 가장 휘발성 강한 사안인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다시 떠오른 까닭이다.

군함도의 투자배급사는 CJ E&M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기준 극장업계 점유율 압도적 1위(49.7%)인 CJ CGV가 계열사를 밀어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자사밀어주기’라 보기는 어렵다. CGV가 CJ 계열 영화만 집중 배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업계만의 주장은 아니다.

지난해 4월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의 CGV 고발 건을 불기소 처분한 사실이 알려졌다. 함께 고발된 롯데시네마도 같은 처분을 받았다. 당시 검찰 측은 “CGV가 계열사 밀어주기가 아니라 자사의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스크린 등을 배정한 것으로 봤다”며 “계열사에서 만들지 않은 영화도 흥행이 예상되면 큰 상영관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실마리는 여기서부터 찾을 수 있다. 핵심은 자사 이익 극대화라는 점이다. 만일 계열사 밀어주기가 현실이려면 항상 업계 1위 CJ 계열의 영화가 논란거리로 떠올라야 한다. 하지만 같은 논란을 겪었던 ‘부산행’(NEW), ‘검사외전’(쇼박스),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는 모두 배급사가 달랐다. 이번 경우 역시 극장 3사가 모두 뛰어들어 스크린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극장들이 비판을 감수하고 막대한 스크린을 배정했을까.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게 ‘개봉 1주일’이라는 시기다. 한 영화제작업계 관계자는 “블록버스터일수록 점점 초반에 치고 빠지는 흐름이 대세가 되고 있다. 당장 2주차부터 드롭(drop)하는 영화가 요새 너무 많다. 이번 경우는 배급사 힘이라기보다는 감독과 배우파워가 다 겹쳐져서 극장이 ‘신나게’ 받은 것이라 봐야 한다”고 밝혔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김동철 원내대표 등 당직자 및 영화사 관계자들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CGV에서 영화 '군함도'를 단체관람하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뉴스1

CGV 관계자도 “최근 들어 개봉 1주차에 관객들이 큰 관심을 가졌다가 (그 후에) 관심이 사그라지는 경향이 많다. 1000만 영화가 탄생하려면 적어도 2~3주차까지는 분위기가 이어져야 하는데 그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또 SNS 등이 워낙 발달해 (개봉 전부터도) 영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경향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배급사나 극장입장에서는 관객들 관심이 가장 높은 1주차에 스크린을 가장 많이 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극장 3사에서 공히 소폭이나마 스크린이 늘고 있다. 쇼핑몰이 들어서면 영화관도 함께 들어오길 바라는 고객들도 많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처음으로 2000개 스크린이 넘었다는 점에 너무 의미를 크게 부여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군함도에 1주일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8월 2일 올해 최대 화제작인 ‘택시운전사’가 개봉하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의 투자배급사는 CJ E&M의 최대라이벌 쇼박스다. 즉 다음주부터는 일정하게나마 택시운전사와 스크린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군함도의 초반 물량 공세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군함도에 1주일 앞서 개봉한 할리우드 화제작 ‘덩케르크’ 역시 개봉 초 1250개 안팎의 스크린을 확보하다가 군함도가 개봉하자마자 628개 스크린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상영횟수도 7554회에서 2181회로 급락했다.

◇ 너무 높은 손익분기점과 실적부담

워낙 높은 손익분기점도 1주일 물량공세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영화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군함도의 순제작비는 220억원~270억원 안팎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5000만 달러(약 573억원)를 투자한 ‘옥자’와 사실상 할리우드 작품인 ‘설국열차’를 제외하면 역대 한국영화 최대치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추정 제작비 회수 손익분기점은 900만명이다. CJ E&M 투자비율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약 30% 정도의 투자비율을 가정할 경우 배급수익과 합치면 660만명이 손익분기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충무로에서 ‘660만명 이상’이라는 숫자를 충족시킨 영화는 ‘공조’와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유이’하다.

이 와중에 CJ E&M의 영화실적이 하락추세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CJ E&M 영화부문은 2분기에 18억원~21억원 사이 영업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분기에 136억원의 적자를 냈다가 올해 1분기 19억원으로 흑자전환했는데 다시 뒷걸음질 치는 셈이다. CJ E&M의 지난 한해 영화부문 영업손실액은 239억원에 달한다.

CJ CGV 역시 상황은 녹록치 않다. 지난해보다는 영업이익이 크게 늘겠지만 시장 기대치에는 못 미칠 가능성이 커서다. 박정엽 미래에셋대우증권 연구원은 “이익 부진의 원인은 국내 별도 실적 때문”이라면서 “국내 2분기 박스오피스 시장 성장률(-0.3%)이 기존 예상 수준(+4.5%)에 미치지 못했다. 6월 영화 흥행이 특히 부진했던 반면 2분기에도 경쟁 심화가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 뜨거운 사회적 관심도와 CJ의 홍보공세


스크린편성은 예매율 뿐 아니라 사회적 관심도의 영향도 받는다. 극장업계에서 ‘군함도’의 스크린 몰아주기를 두고 가장 많이 꺼내는 이유도 ‘예매율’과 ‘관객평점’, ‘사회적 관심도’다. 과거 ‘명량’과 ‘변호인’, ‘광해’가 모두 마찬가지 전철을 거쳤다. 이 중 군함도에 관한 사회적 관심도 급증에는 정치권과 언론의 영향이 컸다.

최근 군함도를 관람한 정치권 인사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모두 거물급이다. 국민의당에서는 지도부가 나서 단체관람했다. 양대노총 위원장도 시사회에 참석했다. 심지어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까지 나서 군함도 개봉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한 뉴스통신사에서는 군함도 개봉 이튿날인 27일 실제 생존자들의 인터뷰가 실리기도 했다.


CJ 입장에서도 그룹 차원에서 분위기를 더 키우려는 모습이다. CJ는 지난 25일 여의도 CGV에서 CJ Friends of K-Cultur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주한 외교관 160명을 초청해 시사회를 개최했다. 이중 태국, 스리랑카 대사 등의 ‘영화 극찬’ 발언이 보도자료로 작성돼 기자들에게 배포됐다. 이후 다수의 연예매체에는 주한 외교관들이 군함도에 감동받았다는 류의 제목이 달린 기사가 수십 개 이상 실렸다.

CJ E&M은 같은 계열의 tvN에서 군함도의 무비멘터리까지 방영했다. O tvN 예능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서도 역사강사들이 나와 군함도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한 문화예술계 인사는 “군함도의 진실을 알리는 영화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면서도 “그런데 소재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홍보가 되는데 굳이 CJ가 이렇게까지 나설 필요가 있나”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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