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절벽 외면한 알맹이 빠진 대책"성토…“일감 부족 덜어줄 과감한 정책적 지원을”

국내 조선산업이 수주 회복에도 당장 일감이 없는 수주절벽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정부가 국내 조선산업 경쟁력 제고 방침을 정했음에도 ‘하루살이’​ 신세인 조선업계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2018년부터 외항선박에 친환경선박 폐선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이지만, 조선업계는 당장 올해를 버틸 수주 잔량이 없는 상황이다. 도크 폐쇄는 현실이 됐다. 이에 정부는 재차 선박 신조 수요 발굴 대책을 내놨지만, 조선업계 반응은 냉랭하다.


2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19일 친환경 선박의 건조기술 개발과 대체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조선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국정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2018년부터 외항선박에 친환경선박 폐선 보조금을 지급하고 2020년 연안화물선으로 확대해 2022년까지 총 100척을 건조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부터 친환경 선박 건조기술 개발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전 정부가 조선산업에 보인 혼란한 태도보다 한 걸음 앞선 행보지만, 위기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달 국내 조선사 수주잔량은 1721만2535CGT(선박의 건조 난이도를 반영한 가치환산톤수)이다. 2003년 4월 수주잔량 1734만1655CGT을 기록한 이후 월별 수주잔량 기준 14년여 만에 최저다. 특히 국내 조선사 수주잔량은 2015년 11월 이후 17개월 연속 줄고 있다.

그동안 국내 조선산업은 정부의 “확대냐, 축소냐”라는 고민 속에서 이른바 폭탄 돌리기 상황을 거쳤다. 실제로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꼭 필요한 부분에 지원이 이뤄지는 선별적 양적완화 방식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조선업계 전문가들은 “조선업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당시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전 대표이사는 “양적완화라는 표현을 쓰지만, 본질은 구제금융인 상태”라면서 “내 임기 중에 터지는 것만 막자는 생각이 앞서 전략적 접근은 빠진 구조조정”이라고 말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정책 방향 속에서 지난해 한 해 동안 국내 조선사 수주량은 223만6018CGT, 45억7700만달러로 올해 상반기(283만80CGT)만도 못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공격적인 저가 수주로 전 세계 선박 수주를 끌어오면서도 자국 내 발주를 중심으로 수주 안정화를 꾀했다. 중국은 자국 선사가 노후 선박을 교체할 때 GT(선박의 총 무게)당 약 3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에 중국은 올해 상반기 수주금액 기준으로 한국에 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수주 점유율은 여전히 31.7%를 차지하며 1위다.

올해 국내 조선사는 혹독한 일감 부족에 직면했다. 조선사별로는 현대중공업 조선 3사(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수주잔량이 5월말 기준 212억8000만달러 수준이다. 이는 1년 전보다 20.3% 감소한 수치다. 255척이 남았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역시 6월말 기준 22.9%, 29.3% 감소한 222억달러, 270억달러의 일감만이 남아 있다.

도크 폐쇄 결정은 당연했다. 현대중공업은 군산조선소(1개)를 잠정 폐쇄한 데 이어 울산조선소(10개) 내 2개 등 총 3개의 도크를 폐쇄한 상태다. 도크의 추가 폐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삼성중공업도 하반기 1~2개의 도크 운영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를 버틸 수 있다는 설명이지만, 중소형 조선사는 일감이 전혀 없다. 당장 존폐 갈림길에 섰다.

문제는 새 정부 정책 기조가 조선업 살리기로 기울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 정부와 정책 차이가 없다는 데 있다. 문 닫은 군산조선소를 살리기 위한 대책도 특별한 점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20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따른 지역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선박신조 수요 발굴, 조선협력업체와 근로자 지원 등이 골자다.

정부는 군산조선소 재가동을 위한 선박 신조 수요발굴에 나서기로 했다. 24억달러 규모의 선박신조지원프로그램을 활용한다는 계획인데, 지난 3월 정부가 해운업 지원 대책으로 발표한 내용과 동일한 내용이다. 지난해 10월 전 정부가 밝힌 친환경 선박 교체, 선박펀드를 활용한 발주, 노후 상선 교체 지원 등을 담은 해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기반을 둔 탓이다.

또 정부는 올해 10척 이상의 신조 선박 발주를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군산조선소가 전부 수주해도 재가동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군산조선소는 연간 10척 이상 발주가 있어야 재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며 "게다가 정부 발주 물량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물량을 받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조선사는 정부의 이번 선박 발주 유도 대책이 군산조선소만을 대상으로 한 지원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군산조선소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조선사들의 일감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현대상선의 유조선 발주가 대우조선해양에 몰리면서 산업은행이 자회사 간 수주 몰아주기를 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게다가 정부의 선박펀드는 국내 해운사가 국내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도록 돕는 역할이지만, 올해 들어 국내 해운사가 발주한 선박 중 상당수는 저가 공세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조선사로 넘어갔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발주된 20척의 선박 중 국내 조선소는 7척, 나머지 13척은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2020년부터 규제에 따라 친환경 선박을 운항해야 해 해운사들이 신규 발주를 늘릴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 하반기나 2019년 초가 돼야 일부 발주가 날 것"이라면서 “여기에 조선사가 수주 후 건조를 시작하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짧게는 올해, 길게는 내년 중반까지 수주 절벽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일감이 말라버린 현시점에서 국내 조선사는 숙련공 붙잡기에라도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크 폐쇄 확대로 숙련공 이탈이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탓이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IT공학과 교수는 “조선 산업은 노동집약 산업이지만, 핵심 경쟁력은 단순 인건비 절감이 아닌 숙련노동에서 나오는 기술 집약형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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