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프리존에 외국 금융사 몰려…파격적 투자환경으로 세수·청년 일자리 보고로 삼아야

얼마 전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과거 참여정부에서 추진하다 좌초된 국제금융허브 조성을 다시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뉴욕, 런던처럼 종합금융허브 전략을 내세웠지만, 이젠 특정 기능에 특화된 금융허브전략을 짜자고 했다. 자산운용업 위주의 싱가폴, 금융서비스에 특화된 룩셈부르크처럼 우리 체질에 맞는 금융허브 모델을 찾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외국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와 규제 완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외국계 투자은행이나 자산운용사, 은행들을 우리 자본시장을 키우는 동반자로 여기고, 법령에서 금지된 사항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자고 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동북아금융허브 전략’은 다음 정부들을 거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제조업의 주력산업들이 이미 성숙단계로 진입한 우리 경제의 위상에 비추어 금융시장을 선진화하고 금융산업을 전략산업으로 키워야 할 당위성이 커졌음에도 이를 추진할 정부의 의지는 약했고 정치권도 그때그때 발목을 잡았다.

그러는 사이 한국시장에 기대감을 갖고 들어온 외국계 금융사들은 하나 둘씩 떠났고 그만큼 동북아 금융허브의 꿈도 멀어져 갔다. 최근에도 미국의 씨티그룹이 한국씨티은행의 점포수를 126개에서 36개로 줄이기로 했고, 골드만삭스(미국), RBS(영국), BBVA(스페인) 등도 국내지점 폐쇄를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 금융사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물론 국내시장에서의 수익성 악화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외국 금융사들이 해외로부터 저비용의 자금을 들여와 국내에서 운용하며 짭짤하게 수익을 거뒀지만 지금은 지속되는 저금리 기조로 인해 이런 방식으로의 수익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 외에도 불명확한 규제, 뿌리 깊은 반(反)외국기업 정서, 극도로 경직된 노사문화 등도 외국 금융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등을 돌리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필자는 우리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국제금융허브 조성사업을 다시 추진하자는 황영기 회장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한다. 특히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금융허브 조성방안을 찾자는 주장에 공감한다.

이러한 도시들은 외국 금융사들에 대해 파격적으로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면서 오늘의 국제금융허브로 성장해왔다. 특히 싱가포르는 GIC, 테마섹 같은 대형 국부펀드를 조성하고 그 자금을 현지에 진출한 외국계 운용사들에 맡겨 운영토록 함으로써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우리도 상당한 규모에 달하는 국민연금, KIC 등 공적펀드를 이처럼 활용할 수는 없을까.

필자는 황 회장이 제기한 이슈들 외에 또 하나의 이슈를 더하고자 한다. 바로 세금문제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증여세, 상속세가 없고 법인세는 각각 16.5%와 17%, 소득세는 각각 15%와 16%의 단일세율을 적용하는 반면 한국은 법인세는 최고 22%까지, 소득세는 최고 40%까지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이처럼 고율의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한 외국기업들을 끌어 모으기 어렵다. 우리가 홍콩, 싱가폴을 따라 잡고 최근 신흥금융시장으로 떠오른 상하이 등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외국계 금융회사들에 대한 과감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 주거, 교통 등 생활 측면에서도 외국인 친화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외국 금융사 직원들의 자녀가 다닐 국제학교를 충분히 설립하고 외국인도 쉽게 알아보고 운전할 수 있도록 도로표지판도 개선하는 등 각종 생활편의 시설들을 외국인들의 수요에 맞게 확충하여야 한다.

필자는 지난 4월 아프리카에서 열린 세계연수기관 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유지인 두바이를 들렸다. 오늘날 중동의 금융허브로 자리 잡은 두바이는 2004년부터 DIFC(Dubai International Financial Centre)라는 금융클러스터를 조성하고 특별경제자유지역(Free Zone)으로 지정하여 운용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법인세와 소득세 100% 면제, 외국인 투자지분 100% 허용, 자본금과 배당금의 자유송금 허용 등과 같은 파격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함은 물론 독자적인 입법, 행정, 사법 체계까지 갖춘 치외법권지역으로 운영함으로써 외국 금융사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외국 금융사들이 몰려와 DIFC는 설립된지 불과 10년만에 중동, 아프리카 및 남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 국제금융허브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제4차 산업혁명에 따른 핀테크산업 육성을 위해 크라우드펀딩 등을 활성화하기위한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는 등 국제금융허브로서의 발빠른 대응을 하고 있다.

우리도 국제공항에서의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을 금융의 프리존(Free Zone)으로 지정하여 각종 외국인 편의 시설들을 확충하고 독자적인 입법, 행정, 사법체계를 갖춘 치외법권 지역으로 운영하면서 홍콩, 싱가포르보다 낮은 저율의 단일세율을 적용한다면 외국 금융사들이 많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외국인이나 외국기업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세수도 증가할 것이고 고품질의 일자리가 급속히 늘어나 청년실업 문제 해결의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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