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횡으로 변질된 근로자 권리…이기적 욕심 자제, 상생 혜안 찾아야

국내 완성차업계가 노조의 파업에 신음하고 있다. 세계적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 내수 침체 등 대내외적 경영 환경이 악화 일로를 치닫고 있지만 노조는 올해도 어김없이 서슬퍼런 파업의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국내 완성차업계의 상반기 생산량은 216만대로 7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수출도 132만대로 8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내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완성차 맏형인 현대차의 판매량은 8.2% 줄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차의 중국시장 판매량은 무려 60% 급감했다. 형제 계열사인 기아차 역시 판매량이 9.4% 쪼그라들었다. 양사를 합친 판매량은 352만여대에 불과하다. 올해 세웠던 연간 판매목표의 40% 수준이다. 

 

현대차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2년 연속 연간 판매 800만대 미달성을 염려한다. 자칫 700만대 초반 수준으로 추락하는 심각한 판매 급감에 대한 우려도 불거진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이제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례 행사로 여겨진다.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단 네 차례를 제외하고는 매년 파업을 벌여왔다. 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이달 14일 파업을 결의했다. 올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2012년 이후 6년 연속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총 24차례에 이르는 파업과 특근 거부로 14만2000여대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금액으로는 무려 3조1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현대차에 납품을 해야 하는 1차 협력업체 348개사와 약 5000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2·3차 협력업체까지 더하면 손실액은 약 4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올해 노조의 파업 결의 전 사측이 내놓은 제시안에는 기본급 5만원 인상과 성과급 400만원 지급, 협상 타결 즉시 500만원 격려금 지급 등 내용이 담겼다. 기본급 5만원 인상은 상여금과 일부 수당에까지 영향을 미쳐 근로자 1인당 100만원 안팎의 인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노조는 올해 월급 15만3883원 인상, 전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정년 65세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요구대로 전년 순이익의 30%(약 1조7000억원)를 전체 현대차 근로자 6만8000여명에게 나눠 지급하면 1인당 2500만원 정도다. 여기에 노조가 요구한 기본급 인상안이 받아들여진다고 가정하면 1인당 인상액은 3000만원 수준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현대차 근로자 평균 연간 임금은 9천400만원으로 1억원에 육박한다. 일본 토요타(7961만원), 독일 폭스바겐(7841만원) 등 글로벌 유수의 완성차업체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반면 생산성은 이들 업체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현대차 국내공장의 HPV(자동차 1대당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는 26.8시간으로 토요타(24.1시간), 폭스바겐(23.4시간), GM(23.4시간)보다 떨어지는 수준이다. 경쟁업체에 비해 노동 강도는 덜하지만, 급여는 높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야겠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인 셈이다.

사측은 올해 초 임원들이 연봉의 10%를 자진 삭감하고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의 임금을 동결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대내외 경영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라면서 “노조가 실제 파업에 돌입할 경우 하반기 신차로 반등을 도모하려던 계획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요구안에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총고용 보장 합의서 체결도 넣었다.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이 대체해 일거리가 줄어들더라도 단 한 명도 내보낼 수 없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쯤 되면 어깃장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기아차 노조 역시 이미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 조정을 신청한 가운데 파업 절차에 들어갈 태세를 갖췄다. 중노위가 13일 조정 중지를 결정함에 따라 언제든지 합법적으로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 17~18일 파업 결의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GM 노조는 17일부터 총 8시간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이 회사 노조 역시 금속노조 지침에 따라 현대·기아차와 동일한 기본급 15만4883원 인상, 성과급 통상임금의 500%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8+8 주간 연속 2교대제 및 월급제 시행, 미래 발전 방안 등을 요구한 상태다.

한국GM은 지난해 5000억원대, 최근 3년간 누적 2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오는 10월 산업은행의 특별결의거부권이 사라지게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터라 국내시장 철수설까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까지 7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이끌어낸 쌍용차와 2년 연속으로 무파업으로 협상을 마친 르노삼성도 올해는 안심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양사 노조는 지난해 실적 개선을 근거로 쌍용차 각각 기본급 11만8000원과 15만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의 일탈을 바로잡고 현장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주어진 파업이라는 근로자의 권리가 노조의 전횡(專橫)으로 변질되면서 회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타 산업 근로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귀족노조의 행태는 도마 위에 오른 지 오래다. 파업 때마다 동조해 오던 일부 진보 여론의 반응도 싸늘하다. 


파업은 국가 경제 지표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2005년 이후 11년간 지켜온 완성차 생산국 톱5 자리를 인도에 내주고 6위로 내려앉았다. 올해는 세계 7위인 멕시코한테도 덜미를 잡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라 안팎의 모든 상황이 여의치 않다. 위기감이 갈수록 고조되면서 경기 반등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자신들만 예외라는 이기심이 순순히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절제하지 못하면 혹독한 대가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극단적 선택으로 치닫기보다는 상생의 혜안(慧眼)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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