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까지 강남4구 수만세대 입주…규제강화에 금리인상·생산인구감소도 압박 요인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서울 남가좌동에서 갓 돌 지난 아이를 키우는 주부 A씨는 요즘 이사 고민에 한창이다. 아이 교육을 위해 강남 입성을 계획중인데,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강남 아파트 값은 하염없이 오르고 있어서다. A씨는 “자고 일어나면 또 올라있더라. '강남은 오늘이 최저가'라는 말을 체감하고 있다”며 “무리해서라도 신혼 때 강남을 들어갔어야 하는데 이젠 늦은 것 같다”고 자책했다.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한달이 다되간다. 발표 초기에는 집값이 정부와 시장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듯하다가 이내 매맷가 상승세 데이터가 속속 발표되는 등 시장 우위로 기울었다. 공인중개업소들은 부동산시장과 투기에 대한 정부의 집중점검에도 추격매수를 하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재건축단지는 다시 전고점 경신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강남 집값은 오늘이 최저가'라는 말은 과연 도전받지 않는 진리인가.

시장전문가들은 지금까지는 큰 틀에서 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물량 앞에 장사가 없기 때문에 이 말이 앞으로도 건재할 지는 의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즉 강남 불패신화도 깨질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상 1000세대 이상의 규모를 대단지로 분류하는데 내년 하반기부터 메가톤급 단지의 입주시기 도래로 총 1만2000세대 이상이 한꺼번에 집들이에 나서기 때문이다.

내년 12월부터 송파구 가락동에서 ‘헬리오시티’가 입주를 시작한다. 총 9510가구로, 단일 단지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같은 시기 강남구 일원동에서 850세대 규모의 ‘래미안 루체하임’이 새 주인을 맞는다. 한 달 뒤인 2019년 1월에는 강남구 개포동에서 2000세대에 달하는 ‘래미안 블레스티지’도 입주를 시작한다. 이 세 곳 단지는 반경 10킬로미터 이내로 근접해 있는데, 이 일대에서만 3개월 사이에 1만2000세대의 입주가 몰려 있다.

올해 초 서울 자치구 대부분이 집값 오름세를 보이는 동안 유독 성동구만 전셋값·매맷값 모두 하향세로 고전하던 일이 있었다. 당시 왕십리에서 센트라스(2500세대) 입주로 주택물량이 대거 풀린 영향이었다. 초반에는 전셋값이 1000만원, 2000만원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전용 84㎡ 기준으로 약 반 년 사이에 1억5000만원 가까이 급락세를 보였다. 전셋값 하락은 곧 매맷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전세세입자가 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려던 집주인들의 물량이 대거 공급으로 세입자를 찾지 못하면서 잔금 치르기에 애를 먹었고, 결국 집을 급매물로 내놓으며 매맷가까지 조정받게 된 것이다.

성동구보다 4배 이상의 물량이 잔뜩 풀리는 강남 역시 이같은 시련을 피해갈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권역을 강남4구로 넓혀 보면​ 일시적 조정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3~4년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더 주의가 요구된다. 


2019~2020년에는 강동구 발 물량폭탄이 예정돼 있다. 2019년 상반기에는 명일래미안 솔베뉴(1900세대)에 이어 하반기 고덕 그라시움(5000세대),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1900세대), 고덕 센트럴 아이파트(1800세대)로 한 해 동안 강동구에서만 1만1000세대가 풀린다. 이듬해에는 고덕주공3단지(4100세대), 고덕주공6단지(2000세대)가 공급된다.

2021년~2022년은 역대급이다. 둔촌주공아파트가 헬리오시티를 제치고 국내 최대규모 단지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며 1만2000세대의 물량을 쏟아낸다. 개포주공4단지(3200세대), 개포주공1단지(5500세대)도 대규모로 공급에 가세한다. 이 단지들은 입주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만 2년 동안 2만 세대에 육박하는 물량이 풀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재건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서초구 반포동 일부 단지들까지 더해지면 그 규모는 어마어마해진다.

주택공급 이외에도 주택시장의 향방을 가르는 정부 정책, 금리 등의 변수들은 상승세를 유지하기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강남4구를 콕 집어 “강남4구에서만 주택을 5채 이상 가진 사람이 53% 늘었다. 또 강남4구에선 경제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29세 이하 주택 거래가 두드러지게 늘었다. 편법 거래를 충분히 의심할 만 일”이라며 강남 주택시장에 강공 드라이브를 걸 것을 예고했다. 하반기 금리인상 가능성 역시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다.

때문에 2019~2022년 강남4구 집값은 조정을 거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꼭 해당 동네가 아니더라도 강남4구는 시세가 엇비슷하게 움직이면서 서로 도미노처럼 영향을 주고받는다.

송인호 KDI 공공투자정책실장은 “통상 서울의 포함한 수도권의 경우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는 전제가 성립한다는 가정하에 공급물량이 10% 이상 증가하면 집값은 하락하는 추세를 보여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는 경제성장률,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 등 주택시장 압박요인 작용 가능성이 커 지금과 같은 상승세는 어렵다. 그런데다 강남은 물량공급까지 많아 더욱 큰 하방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비능력이 왕성한 생산가능인구가 지난해를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도 중장기적으로 부동산시장을 압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강남 진입을 희망하는 실수요자들에게는 이런 환경이 되레 기회가 될 수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매머드급 단지의 입주가 줄줄이 예정돼있어 시장 안정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물론 단기적 충격에만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물량공급 충격으로 약 10% 가량 집값이 빠질 수는 있지만 해외 대도시 사례 등 전례로 봤을 땐 1~2년 충격에 흔들리다가 다시 회복되더라”라며 "수요가 꾸준한 만큼 충격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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