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여전한데다 물가상승 압력 미약 판단…미국 등 긴축선회에 한은 셈법 복잡해져

한국은행은 13일 오전 9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현행 1.2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사진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사진=뉴스1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현행 연 1.25%로 동결했다. 가계 부채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기준 금리를 움직이지 않겠다는 판단으로 분석된다. 증가세를 보이는 수출과는 달리 내수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점, 수요 측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미약한 점 등도 기준 금리 동결 결정의 배경으로 꼽힌다. 


앞으로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한국은행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세계 주요국 통화 정책이 변화의 시기에 접어든 까닭이다. 긴축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던 유럽중앙은행(ECB)도 최근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기준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던 미국은 점진적으로 금리를 올리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국내외 상황을 다양하게 고려해야하는 한국은행으로선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방안을 찾는 셈법이 복잡해지게 됐다.

◇ 한국은행 13개월 연속 기준금리 동결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방향을 유지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13일 오전 9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현행 1.2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는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이후 13개월 연속 동결로 시장 예상에 부합했다. 앞서 금융투자협회는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등 채권시장 전문가 1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98%가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이번 결정 배경에는 가계부채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이 12일 배포한 ‘2017년 6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6월중 은행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증가액은 6조2000억원으로 전월(6조3000억원)에 이어 크게 증가했다. 이는 예년(2010~2014년) 평균 증가폭인 3조원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4조3000억원 늘면서 전월(3조8000억원)보다 증가폭이 확대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움직이긴 쉽지 않았다. 기준 금리를 올리게 되면 시중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부채 상환 부담이 확대된다. 한국은행은 시중 금리가 50bp(bp=0.01%포인트), 100bp, 150bp 오르게 되면 고위험 가구는 지난해보다 각각 8000, 2만5000, 6만 가구 증가한다고 밝혔다. 고위험가구 금융부채 규모도 지난해보다 각각 4조7000억원, 9조2000억원, 14조6000억원 증가하게 된다.

수출과 달리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는 내수도 통화 완화적 기조 유지에 한몫했다. 자칫 금리를 인상해 경기 회복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까닭이다. 수출은 지난달 1년 전보다 13.7% 증가한 514억1000만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11월 이후 8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들어선 두 자리수대 수출 증가율을 보이며 추세적으로 상승 구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내수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5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9% 감소했다. 스마트폰 신제품 효과가 약해진 영향이 컸다. 같은 달 음식·숙박업 생산도 전월보다 3.2% 감소했다. 6월 소비 속보지표를 보면 국산 승용차 내수 판매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8% 줄었다. 백화점 소매판매액지수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도 올들어서 5월까지 매달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물가 측면에서 보더라도 금리 인상 부담이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특히 수요 측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크지 않다. 수요 측면 물가 상승 압력을 보여주는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지난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오르는데 그쳤다. 게다가 최근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공급 측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도 낮아진 상황이다.

◇ 세계 통화기조 변화, 한국은행 고민 깊어진다

한국은행으로선 향후 행보가 더 중요해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한국은행 창립 기념행사에서 “경기가 좋아질 경우 통화정책 완화 정도에 대한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녹록지 않다. 특히 세계 주요국들이 긴축 움직임을 보이면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

실제 “양적완화 축소는 없다”던 유럽중앙은행(ECB)이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연례 포럼 연설에서 “디플레이션의 위협은 사라졌으며 대신 리플레이션 압력이 있다”고 말했다. 리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심한 인플레이션에 이르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시장에선 이를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올해에만 3월과 6월 두 차례 기준 금리를 인상했다. 더구나 6월엔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보유자산 축소계획도 발표하면서 공격적으로 긴축으로 들어갈 전망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12일(현지 시각) 미국 하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연준은 올해 보유자산 축소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자산 축소 의지를 드러냈다. 이와 함께 기준 금리 인상 속도는 점진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보인 상황이다.

한국은행으로선 셈법이 복잡해졌다. 세계 주요국들의 정책 변화가 국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아직은 예단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총재는 지난 4일 경제동향간담회에서 “대외건전성이 높아졌고 글로벌 경기 회복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2013년 긴축발작과 같은 금융불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라면서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신흥국이 철저히 대비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많다. 선진국 통화정책의 변화, 국제자금이동의 흐름 등을 면밀히 점검해 나가면서 적절히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선 부국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통화기조가 긴축으로 가고 있는건 주지의 사실이다. 속도가 문제다. ECB는 예상보다 긴축으로 빨리 돌아설 것이라는 인식이 있고 미국은 생각보다 금리 인상속도가 늦춰지고 있다”며 “한국은행은 이러한 부분이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대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 상황 등 다양한 요소도 함께 봐야하기 때문에 당장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며 “경기가 회복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복세 정도가 둔화하고 있어 올해보다는 내년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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