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인수·합병으로 몸집 불리기 경쟁…유일한 국적선사 현대상선은 되레 '축소 경영'

한국 해운업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지난해 7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신규자금 지원은 없다고 못을 박은 지 1년,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유일한 국적 선사로 남은 현대상선은 합종연횡으로 치닫는 해운업 지형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일본과 중국은 각각 해운 3사 합병, 선사 인수에 나서면서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영향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11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유 해운사 코스코(원양해운집단공사)는 홍콩 OOCL(오리엔탈 오버시스)을 63억달러(약 7조2500억원)에 인수했다. 일본은 NYK, MOL, K라인 등 일본 해운 3사가 직접 나서 이달 10일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로 간판을 바꿨다. 지난해 10월 일본 해운 3사가 컨테이너 부문 합병을 발표한지 8개월여 만이다.

중국과 일본의 잇따른 몸집 부풀리기는 세계 해운시장에서 경쟁 가능한 해운사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이다. 독과점 체제 구축을 위해 전 세계 해운시장에서 이뤄지는 치킨게임 양상을 규모의 경제로 버텨낼 여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현재 운임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세계 해운시장 주요 선사들은 손실을 보면서도 공급량을 확대해 운임을 떨어뜨리고 있다. 

 

세계 해운시장이 초대형 선사 위주로 재편되면서 규모가 작은 국내 선사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이에 “지난해 8월 한진해운 파산으로 커진 해운업 위기감은 연대를 가속했고, 12개의 해운사가 3개의 거대 글로벌 동맹을 결성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9일 분석은 한걸음 뒤에 있다. 일본과 중국의 해운업 움직임은 해운동맹을 넘어 합병으로 앞서가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과당 경쟁을 피할 목적으로 운임과 영업조건을 협정하는 해운동맹을 넘어 합병에 나섰다.

앞서 중국 코스코는 국유 해운사였던 차이나시핑을 합병해 세계 4위로 올라섰고, 홍콩 OOCL과 합병을 통해 선복량 기준 세계 3위 컨테이너선사로 올라설 전망이다. 특히 코스코와 OOCL이 현재 주문해놓은 선복량이 각각 53만여TEU와 10만여TEU에 달해 인도 이후 OOCL을 안은 코스코 선복량은 300만TEU로 2위 MSC를 바짝 추격하게 된다.

30만~50만TEU의 선복량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해운 3사는 합병을 통해 이룬 ONE 출범과 함께 세계 6위 선사로 훌쩍 뛰었다. 일본 ONE는 총 143만6502TEU의 선복량을 갖췄다. 발주 물량 27만여TEU가 인도 완료되면 세계 5위 선사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본은 현대상선 선복량 34만4301TEU보다 4배 이상 큰 규모를 가진 선사를 갖게 됐다.

현대상선이 최근 물동량 증가, 적자 폭 개선 등 순항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대상선의 현재는 해운동맹보다 못한 2M(머스크, MSC)과의 전략적 제휴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센터장은 “2M이 현대상선과 맺은 전략적 제휴를 계약기간 3년이 지난 후에도 이어갈 것이란 보장이 없다”면서 “국내 해운업의 위기가 한진해운 파산 이후 더욱 커지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해운업계 인수·합병으로 대형 선박 확대를 통한 물류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고 평가한다. 해운업계 한 전문가는 “합병을 통한 대형 선박 확대로 비용을 줄이지 못하면 제한된 시장에서 살아남을 해운사는 몇 없을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 한국 해운업이 물류 허브로 도약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한국 해운업의 컨테이너 수송량은 지난해 8월보다 절반가량 줄었다. 지난해 8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국내 선사의 컨테이너 수송량은 106만TEU였다. 다만 지난해 9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입출항 불가 선언을 받으면서 배가 묶이자 컨테이너 수송량은 지난해 12월 51만TEU로 51% 감소했다. 7개월 넘게 지난 현재도 국내 선사의 수송량은 여전한 수준이다.

현대상선이 지난 4월 최초로 부산항 처리 물량에서 15만TEU를 넘어서고 한 달 만인 5월 다시 15만5112TEU를 기록하는 등 수송량을 늘리고 있지만, 부산항에서 가장 많은 물량을 처리하는 선사는 머스크다. 이마저 4월 초부터 시작된 머스크와의 전략적 협력, 3월부터 시작된 국내 미니 얼라이언스(HMM+K2 컨소시엄) 덕분이다.

그런데도 국내 해운사는 규모 축소에 급급한 실정이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국내 최대 해운사가 된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34만여TEU에 불과하지만, 발주는 없다. 이에 더해 현대상선은 지난해 채권단 요구에 따라 부산항 신항 4부두 경영권을 매각했다. 현대상선이 부산항에서 경쟁사보다 비싼 요율의 하역료를 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전 세계 해운업계는 거대한 선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로 변했다”면서 “스스로 없애버린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나서 국내 선사를 지원하고 또 거대한 몸집을 가진 선사가 대형 선박을 중심으로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중국과 일본처럼 선사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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