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칼럼
[행림회춘]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속도 높여라
  • 성철환 논설주간(cwsung@sisajournal-e.com)
  • 승인 2017.06.2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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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노후자금 훼손한 삼성물산 합병사태…선량한 관리자 역할에 한점 의심 없게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가시화되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 성과평가보상전문위원회는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국민연금에 대해 기업가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검토하도록 했다. 정부가 재촉하고 나섰으니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움직임이 한결 빨라지게 됐다. 국민연금도 이미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 용역 발주에 나선 상태여서 용역 기간을 감안할 때 늦어도 내년초에는 도입이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투자대상 기업을 제대로 감시하고 의결권 행사를 통해 총수 등의 일탈행위를 견제함으로써 기금 위탁자인 국민과 투자자들의 이익을 지켜내라는 행동준칙이다. 서양의 큰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기관투자가들도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선관의무, Fiduciary Duty)를 다해 ‘고객의 돈을 내 돈처럼 다루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기간중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공약한 바 있어 국민연금이 이를 도입할 경우 민간의 여러 기관투자가들로까지 급속히 확산될게 틀림없다.
 

일반 국민에게는 명칭조차 생소한 스튜어드십 코드에 눈길이 가는 것은 국민연금이 진작 이를 도입했더라면 국민재산을 더 투명하고 알뜰하게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특히 국민연금 스스로에게도 큰 상처를 남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벌어진 납득할 수 없는 행태가 원천적으로 차단됐을지 모른다. 국민연금이 다르게 행동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2년전 단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추진 당시부터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ISS, 한국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은 대다수가 합병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2015년 7월 치뤄진 주총에서 결국 합병안이 통과됐다.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로 11.2%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국민연금은 이렇게 강변했다.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 근거해 적법하게 산출됐다. 의결권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투자위원회 표결만으로 합병에 찬성 입장을 정한 것도 적법절차에 따른 것이다. 합병에 따른 불리함은 바이오 사업부문과 지주회사로서의 신사업 진출 기반 확대 등 합병시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로 상쇄할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하지만 합병비율뿐아니라 이런 중대 사안을 국민연금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투자위원회만으로 찬성 의결권 행사를 결정한 것도 많은 의혹을 낳았다. 이런 행동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개입됐다는 말이 무성했다.

 

결국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와중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기위해 국민의 노후자금을 훼손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게 됐고 관련자들이 사법처리 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서울지법은 지난 6월 8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상급심 판단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기금운용 원칙을 저버리고 보유주식의 가치를 훼손시킨 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지난해말 기준 자산규모가 558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국민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돈을 불리지는 못할 망정 재벌의 배를 불리기위해 손실이 나는 짓을 불사했다면 이만저만 실망스러운 행태가 아니다. 가뜩이나 저출산 고령화로 고금 고갈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걱정되는 판에 이런 식으로 기금을 축내다보면 국민이 부담해야할 연금 보험료가 오르고 노후 연금 수령액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만큼 국민의 노후는 더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놓고 "단기 차익을 노리고 투자하는 기관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되면 중•장기적인 회사 경영 방침과 배치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어 결국 기업 가치 훼손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재계의 반대론도 있다. 이런 불안감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수탁자의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 기업가치 훼손을 막는 일보다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세금이나 다름없는 연금보험료를 소득에서 떼가는 국민연금이 국민의 재산손실을 불사한채 기업 이익을 빙자해 재벌기업 오너의 재산을 불리는데 뒷돈을 대는 일이 더 이상 방치돼선 안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맡아 관리할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한다. 거대 기관투자가로서 위탁자의 돈을 내 돈처럼 다루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것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중요한 시작이 될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대자본가에 멋대로 휘둘리지 않고 소액 투자자라도 균등한 기회로 보호하는 자본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노력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 하물며 국민의 노후자금관리라는 중차대한 역할을 감안하면 재벌의 눈치를 보며 더 이상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다. 도입 일정을 더이상 미뤄선 안된다.

 

성철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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