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그룹 운생동의 건축사사무소는 높다란 고층 빌딩이 아닌 사계절 형형색색 다른 빛깔을 자아내는 소담한 정원을 둔 성북동의 한 단독주택에 자리한다. 건축가 양진석이 만난 다섯 번째 건축가는 국내에서 대형 건축 프로젝트로 선 굵은 입지를 다져온 운생동 건축사사무소의 장윤규 건축가다.

사진 백경호

건축사진 김용관, Sergio Pirrone

촬영협조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와이네트워크​ 

 

 

건축가 양진석과 건축가 그룹 운생동의 장윤구 / 사진=리빙센스 백경호

대치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크링(Kring, 현 푸르지오 밸리)은 국내에서는 손에 꼽힐 만큼 실험적 설계를 시도하고 있는 운생동 건축사사무소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역작이다. 크링은 도심의 랜드마크를 넘어 마치 거대한 조각품을 보는 듯한 역동적인 외관 덕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찾을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건축의 외형부터 비장함이 느껴질 만큼 다수의 대형 프로젝트에서 실험적인 면모를 선보여왔던 운생동의 장윤규 소장이 ‘집’을 통해 건축가로서 존재감을 다시 드러낼 예정이다. 젊은 건축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특정 건축주만을 위해 설계를 하는 일이 이제 자신의 건축 인생에서 중요한 목표점이 된 것. 장윤규 소장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10채의 주택을 연작 구성으로 지어보기로 마음먹고 도전 중이다. 

 

그간 자신이 쌓아온 건축 노하우와 연륜을 주택에 쏟겠다는 열정은 중견 건축가로서는 이례적인 모습이다. 주택을 건축 인생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그를 건축가 양진석이 만나, 그가 집을 선택한 이유를 들어봤다.

 

새로운 삶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건축, ‘집’

 

대학로에서 성북동으로 사옥을 이전하셨어요. 사무실로 사용하는 곳이 주택이네요? 정원이 감싸고 있는 주택, 보기 좋은데요. 

 

이전한 지는 3년 정도 됐어요. 이전 사무소는 대학로에 있었는데, 지하 공간으로 10년 정도 사용했어요. 지하에서 탈출해 일해보자는 의지가 강렬했던 거죠(웃음). 마당에 식재된 나무와 꽃들이 계절마다 다른 색을 내요. 이전에 살았던 건축주가 사계절 내내 보는 재미, 사는 재미를 정원을 가꾸면서 얻으신 모양이에요. 계절마다 다른 식물들이 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어 좋더라고요. 정원에 놓인 조각물은 제 조형 작업 중 하나고요. 크고 작은 기획전에 종종 작품도 전시하고 있어요. 설계만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다양한 작품 활동도 하고 있답니다. 전시가 끝난 설치물을 그냥 버리기 아쉬워서 나중에 이곳에 또 다른 조형물을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복합문화공간 ‘크링(Kring)’. ©Sergio Pirrone / 사진=김용관, Sergio Pirrone

 

하우스 10을 타이틀로 주택 연작을 준비하고 계신다고요? 판교에 설계한 첫시작이 된 주택, 하우스 1 프로젝트는 어떤 집인가요? 

 

 

70평형의 지상 2층 주택이에요. 삼대가 사는 집인데, 가구 수에 비해 1인당 주거 면적이 크지 않아요. 고급형 주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진행했던 프로젝트였죠. 저는 일반인이 설계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어요. 일반인 또한 건축가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지요. 집을 지을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서로 거리감을 느껴왔다고 할까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건축

건축가 장윤규의 하우스 1 프로젝트인 ‘월 하우스’. ©Sergio Pirrone / 사진=김용관, Sergio Pirrone

의 다양성을 많은 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에요. 프로젝트를 통해 일반 건축주가 되려 건축에 다양한 생각들을 반영하려는 의지가 크고, 생각이 더 여유롭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건축주의 의견을 수용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측면이 더 많았기 때문에 하우스 1과 같은 형태의 집이 탄생할 수 있었던 셈이죠.

 

건물 외관의 월이 기둥 역할을 하는 ‘예화랑’. / 사진=김용관, Sergio Pirrone

 

 

 

 

 

하우스 1은 건축가 장윤규의 예화랑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건축물의 외관에서 소장님의 특징인 월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닮았다고나 할까요. 

 

하우스 1 또한 건축물의 기본인 ‘월(wall)’을 새롭게 풀어내려고 시도한 주택이에요. 예화랑 역시 그런 시각으로 설계를 한 경우고요. 건축의 외관을 심미적인 차원으로 접근하거나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일부로 가정하는 거죠. 예화랑의 외관 월은 기둥의 역할을 해요. 그래서 건물의 형태에 영향을 주죠. 다른 건축물과 다르게 생겼다는 느낌은 이러한 구조적인 측면 때문일 거예요.

 

그럼 외관의 월은 장식을 위한 장치가 아닌 하나의 구조가 되는 거네요? 

 

맞아요. 구조적인 월이죠. 하우스 1은 집에 기둥이 없어요. 벽면의 월이 기둥 역할을 합니다. 이 같은 시도를 한 건축물들이 연작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예요. 월 자체가 구조가 돼버리기 때문에 기둥은 있을 필요가 없죠. 최소한의 모서리 기둥과 슬라브(천장)로 구조가 완성되는 르 코르뷔지에의 ‘도미노’ 설계 방식과 달리 기둥이 없는 구조를 가진 주택이에요. 제 건축 방식은 근대 건축을 새롭게 해석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어요.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설계를 하고 있죠. 근대 건축에 대해 고민하고,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 등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이러한 생각들이 모이다 보니 어느 순간 다시 주택을 생각하게 되었고, 주택을 설계해보자고 도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성북동 주택을 건축사사무소로 사용하는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1층의 설계실 입구./ 사진=리빙센스 백경호

 건축주가 처음 이 설계를 받아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상상했던 전형적인 주택의 모습이 아닌데 뭐라고 하셨나요? 

놀라셨죠. “멋있다, 좋다, 재미있는 설계다”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건축주에게 처음 제안했던 설계가 현재 살고 있는 주택과 거의 똑같아요. 자신들의 삶이 그대로 설계에 반영되고, 주택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재미들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해서인지 만족스럽다는 평이었어요.

 

하우스 1, 월 하우스를 통해 건축주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집을 통해 어떻게 재미나게 살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알려드렸어요. 이 주택의 경우 내부 공간의 크기가 다양한 게 특징이에요. 서재는 길이가 7m나 될 정도로 시원한 개방감을 가진 반면 아이들의 방은 각각 사이즈가 다른데, 어떤 방은 다락방이 딸려 있기도 하고 문을 열면 분리된 공간이 하나가 되는 등 재미 있는 시도들을 담아 오밀조밀 설계했죠. 이렇게 다양한 면을 집에 들였을 때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상상하면 재미있는 결과물이 탄생해요.

 

외관의 월 때문인지 정원도 일반주택과 다른 모습이던데요. 

맞아요. 일반 주택과 달리 정원이 외부 월 안쪽에

사무소가 자리 잡은 성북동 주택의 안뜰. 장윤규 소장이 직접 만든 작품인 ‘산수타워’를 놓아두었다./ 사진=리빙센스 백경호

있어요. 집 대문을 열면 안쪽에 자리한 기존의 정원과 모습이 아예 다르죠. 미묘하게 다른 시선과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도 건축주에게 제안해요. 월로 인해 시선이 일부 갇혀 있다고 느낀다면 옥상 정원에 개방감을 살려 아래층 정원과 또 다른 시야를 누릴 수 있도록 설계하죠. 저 역시 이러한 주택의 장치들을 어떻게 활용해 좀 더 편리하고 새로운 공간으로 누리면서 사용하면 좋을지 건축주와 같이 고민하고 공유하면서 주택의 재미를 알게 되었어요.​ 

 

대형 프로젝트 위주로, 외국의 건축물들과 분간하기 힘들 만큼 화려한 외형의 건축물들을 설계하던 건축가 장윤규가 50대가 되어 주택에 도전하고 있어요. 보통 젊은 건축가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주택 설계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건축가도 사람이기에 삶이 바뀌면 자연스레 모든 것이 변화하게 마련이죠. 나이가 들면 주변 상황이나 환경이 달라지는데, 특히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집과 공간을 생각하는 시선이 달라지다 보니 이 같은 변화가 더 자연스럽게 찾아왔어요. 다양한 경험들이 축적되다 보면 본래 자신이 원했던 근본적인 생각들로 돌아가게 되죠. 저 또한 현재 그런 과정이라 생각하고요. 그동안은 건축의 형태미, 파격적 설계에 따른 쇼킹한 이슈들이 건축가 장윤규를 주목한 계기이자 대명사였지만, 이는 어쩌면 젊은 시절 많은 이가 제 건축에 주목할 수 있는 방식이라 생각해서 선택했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고요. 이전에는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보다 조형물로서의 가치를 두고 설계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외부에서 내부로 유입되는 것에 제가 가진 열정을 쏟았던 거죠. 그런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지금은 저의 근본으로 돌아가서, 건축을 다시 생각하고 원했던 바를 ‘집’을 통해 세우려고 합니다.

 

 

프로젝트 수가 늘어날수록 건축 모형도 점차 많아진다. 프로젝트 모형을 전시해둔 사무소 내 공간./ 사진=리빙센스 백경호

집을 짓는 연작 프로젝트를 목표로 이제 막 새로운 변신을 시작한 운생동 장윤규 소장님의 남은 주택 9채,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데요? 

하우스 10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집’의 정의와 집이 곧 ‘아파트’라는 틀에 가둬지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요즘 아이들에게 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파트인데요”라고 대답하는 게 당연시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집에 대한 생각들 다양하지 못한 거죠. 건축가가 고민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결국 주택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젊은 건축가​들이 대부분 주택으로 설계를 시작하는 게 사실이고요. 건축의 기본이 주택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 회의가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하우스 10이라는 목표 아래 그동안 생각해왔던 건축의 원천을 ‘집’으로 돌아가 다시 나를 돌이켜보자 결심한 거죠. 건축을 또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도전하는 저의 모습을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갤러리 정미소를 운영했던 장윤규 소장. 운생동의 건축사사무소 계단실에서도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리빙센스 백경호
장윤규 소장과 건축가 양진석이 2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 사진=리빙센스 백경호

 

 

 

 

 

 

 

 

 

 

 

 

 

 

 

1층에 위치한 설계실. 그동안 진행했던 대표 프로젝트의 모형과 설계를 하고 있는 운생동 스태프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백경호

 

건축가 장윤규

SPECIALIST OF THIS MONTH

 

건축가 장윤규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자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국제 건축 현상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일본 저널 <10+1> 세계 건축가 40인에 선정돼 국제적인 건축가로 명성을 얻었다. 건축과 관련한 문화 확장을 위해 갤러리 정미소를 운영해왔고, 대표 건축 프로젝트로 예화랑, 크링(Kring), 생능출판사 등이 있다.​ 

 

INTERVIEWER

건축가 양진석

건축가 양진석

교토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와이네트워크, 와이그룹 대표이사로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 외에 건축 강연을 통해 일반인에게 건축에 대해 알리고 있다. 건축업계의 발전과 소비자의 긍정적인 소통을 기대하며, 러브하우스 플랫폼 앱을 개발했다.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이기도 한 그는 최근 건축의 사회적 가치를 JTBC <내 집이 나타났다>를 통해 대중에게 알린 바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