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아니고, 딱 한 잔씩 마셔본 에디터의 팔도 소주 체험기.

사진=리빙센스 박나연

사진=리빙센스 박나연
사진=리빙센스 박나연

 

장을 보러 갔다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하나 된 대한민국이 진열장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팔도의 소주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생산되는 지역에 가야만 맛볼 수 있었던 지역의 초록병 소주들이, 이제는 가까운 대형 마트에서도 취향 따라 고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 고운 자태에 반해 소주 8병을 샀다.

 

신나게 먹고 싶은 대로 골라 담았는데도 7000원 조금 넘은 액수가 계산대 모니터에 찍혔다. 국민 주종답게 가격도 착하다. 사실 에디터의 소주 주량은 한 병이 똑떨어지는 7잔. 오늘은 8잔을 마셔야 해 걱정이 앞섰다. 

 

용기를 북돋워줄 첫 한 잔은 익숙한 패키지의 참이슬(후레쉬). 서울, 경기 지역을 베이스로 하는 하이트 진로 참이슬은 알코올의 알싸한 향이 코끝을 톡 치고 청량감 있게 목으로 넘어간다. 서울 토박이라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술맛을 보는 순간, 오늘 밤 주량을 초과 달성하고 장렬하게 전사할 것을 예감했다. 

 

두 번째 한 잔은 강원도가 본진인 처음처럼. 보통 처음처럼은 알아도 강원도 술이란 건 모른다. 부드러운 목 넘김은 천혜의 강원도 자연을 표현한 것으로, 소주 특유의 단맛이 잔잔하다. 경북의 맛있는 참 소주는 술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알코올의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깜짝 놀랐다. 그 참한 인상에 거푸 두 잔을 마셨다. 그러나 물처럼 술술 먹다가박나연는 취하기 십상. 저도수 소주여도 미들 헤비급은 되는 알코올 도수 14%다. 

 

그다음은 경남. C1과 좋은데이를 마셨다. C1은 타 지역 과실 소주와 다른 색다른 맛이라기에 자몽맛을 택했다. 확실히 과일 맛이 진하게 나는 다른 과실 소주와 달리 알코올 향이 더 진하다. 무학의 좋은데이 역시 소주의 걸걸한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맛이다. 영 투박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경상도 사람들을 닮았다. 

 

전남 보해양조에서 출시하는 잎새주는 메이플 시럽이 함유되어 있어 흔들면 달달한 맛을 내는 ‘여심저격’ 소주다. ‘술이 달아봐야 술이지’ 싶었지만 마셔보니 그 풍미가 놀라웠다. 코끝을 스치는 향에 애교가 묻어 있다. 

 

마지막 피날레는 역시 바다 건너 제주의 한라산 오리지널. ‘부드러운 맛’을 강요하는 주류 시장에서 알코올 도수 21%를 지켜온 외길 소주다. 언젠가 한라산을 완등하고 내려와 혼자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한라산을 마실 때처럼, 술맛은 무척 달았다. 이번엔 저도수 트렌드에 맞춰 출시된 한라산 올래를 마셨다. 강한 향이 코끝을 스쳐 당황스러웠지만 목으로 넘기자 이내 잠잠해졌다. 다음 날 속이 편할 게 예상되는 부드러운 맛이다. 그렇게 팔도 소주를 다 마셨다. 정신이 몽롱했다. 내 속에서 민족이 하나 된 밤, 잠에 빠져들기 전까지의 시간은 짧았으나 그 뿌듯함은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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