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족’ 나온 지 10년…미드로 감수성 익힌 작가 세대의 탄생 주목

배우 조승우, 배두나(오른쪽)가 30일 오후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열린 사전 제작 드라마 ‘비밀의 숲’ 쫑파티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미드족’이라는 낱말이 언론에 등장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 CSI, 프리즌 브레이크 등이 국내 시청자들을 유혹하면서 나타난 말이지요. 미드족 동호회도 한동안 화제가 됐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미드페인이란 말도 등장했지요. 열풍의 강도는 1990년대 한국을 휩쓴 ‘홍콩 4대천왕 열풍’을 넘어섰던 것 같습니다.

미드의 인기가 한국 드라마의 위기를 반영한다는 해석도 단골 레퍼토리였습니다. 반복되는 패턴이 식상함을 불러왔다는 얘기지요. 삶 자체로 한국 PD사(史)를 웅변하는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지난해 10월 기자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평일 저녁 8시 25분부터 하는 드라마 한 번 봐라. 너무 저예산이다. (물론) 저예산이어도 얼마든지 거기 아이디어를 넣어서 연출할 수 있다. 그런데 제목만 바뀌지 항상 똑같은 얘기다. 삼각관계, 신데렐라, 출생의 비밀! 출생의 비밀이 조금 식상하다 할 때는 시한부 생명.(탄식) 일일드라마는 거의 10년 동안 동어반복을 하고 있는 거다. 그걸 왜 하나. 그 시간에 차라리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게 나을 것 같다”(관련기사: [문화산업 직격인터뷰]③ PD전설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들이 많을 겁니다. 한국드라마에서 느끼는 결핍을 미드로 채울 수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국내서 인기를 끄는 미드는 주로 범죄수사, 의학, 법정드라마 장르입니다. 국내 업계도 이를 몰랐던 건 아닙니다. 나름 모방 시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외형만 미드일 뿐 내용은 ‘전통 한드’였습니다. 경찰서에서도 삼각관계, 병원에서도 삼각관계, 법원에서도 삼각관계였던 셈이지요.

최근에는 조금 양상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로맨스 물감을 뺀 범죄 수사물, 재판 양상에 집중하는 법정드라마가 연이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드를 떠올리게 할 만한 드라마는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종영한 OCN 드라마 ‘터널’, 이 드라마의 후속작인 ‘듀얼’도 주목해볼만한 작품들입니다. 아예 동명의 미드를 리메이크해 화제가 됐던 ‘굿와이프’도 기억해야겠지요. 이들 드라마 대부분이 미드와 마찬가지로 ‘사전제작’을 택한 점도 관심거리입니다.

최근 tvN과 넷플릭스에서 동시에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비밀의 숲’은 그래서 관심 가져볼만한 작품입니다. 한국방송평론상 최우수상 수상자인 장민지 박사는 ‘비밀의 숲’이 “기존의 한국 드라마 문법에서 완전하게 탈피한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장 박사는 “한국 드라마는 대부분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이야기를 소개하는 식으로 ‘기승전결’ 구조를 만들어간다”며 “하지만 비밀의숲 1회를 보면 ‘승승승결’을 만들어가는 모습”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이를 두고 장 박사는 “이미 1회부터 얽힐 대로 얽힌 상황에서 사건이 하나씩 마무리되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더 큰 줄기를 볼 수 있는 형태”라고 덧붙였습니다. 비밀의숲은 4회만에 시청률이 4%를 넘어서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미 1회가 끝난 지는 꽤 됐지만 드라마를 역주행 시청하는 독자들을 위해 더 자세한 이야기는 삼가겠습니다. 이야기를 다루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니까요. 다만 저는 장 박사의 다음과 같은 말을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는 “(비밀의 숲을 비롯해) 최근 화제성 있는 드라마를 쓰는 작가 세대는 미드를 많이 보고 자라온 세대다. 마치 미드처럼 드라마 한 회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몰아치는 수준”이라고 전하더군요.

이 분석에 기대보자면 앞으로 국내 시청자들도 지금보다 더 진화한 한국드라마들을 자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드의 장점과 한드의 장점을 절묘하게 뒤섞은 작품과 마주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흥미롭게도 일부 ‘미드풍’ 작품에는 한국 드라마 특유의 감수성도 배어있는 모습입니다. 시간을 거스르는 설정을 감행한 터널의 경우가 흥미롭습니다. 수사물의 성격을 보이면서도 부녀관계, 선후배관계 등을 주된 전개 고리로 활용하고 있어서입니다. 물론 미드에서 이런 설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만, ‘한드’의 장점과 ‘미드’의 장점을 잘 뒤섞은 장치라 평가할 수도 있겠지요. 굳이 표현해보자면 ‘한국풍’ 미드라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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