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선사 컨테이너선 발주 확대…국내 중소선사 운임 하락에 ‘쩔쩔’

2년 만에 컨테이너선 수주 기대감을 높인 국내 조선업계를 국내 해운업계가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해운동맹 재편에 따른 글로벌 선사 간 주도권 경쟁이 컨테이너선 확보로 치닫게 되면, 운임 하락 파고가 국내 해운업계를 덮칠 수밖에 없는 탓이다. 해운업 후방 산업인 조선업이 살아난다는 말은 해운 업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의미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한진해운 파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실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 한진해운은 글로벌 선사가 선박 추가 발주 등 공급량을 확대해 운임 하락을 이끌자 계속 운영 여력을 잃고 지난 2월 완전히 스러졌다. 한진해운 회생 절차를 담당했던 삼일회계법인은 지난해 12월 기업을 청산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결론졌다. 그렇게 국내 1위 해운사가 사라졌다. 

 

글로벌 선사가 공급량 확대를 통한 해운 운임 하락 이끌기에 나서면서 조선업 수주량 증가 가능성은 커졌지만, 국내 해운업 위기는 심화하고 있다. / 그래픽 = 김태길 디자이너

2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 선사인 CMA·CGM는 2만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6척의 입찰을 시작했다. 예상 선가는 척당 1억6000만달러로 추가 옵션 3척까지 발주되면 총 14억달러 규모다. 입찰에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가 모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는 컨테이너 수주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지난 2년이 국내 조선업 불황과 겹치는 만큼, 글로벌 선사의 입찰을 시작으로 컨테이너선 발주가 살아나면 조선 업황 역시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해운 시황분석 기관 알파파이너는 내년까지 전 세계 기준 해운사 선복량이 연평균 4%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그동안 국내 조선 3사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식해 왔던 시장”이라며 “올해 들어 발주된 글로벌 초대형유조선(VLCC) 대부분을 한국 조선사가 수주한 것처럼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도 국내 조선사들이 유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조선업 호황이 전방 산업인 해운업 호황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반대다. 운임 주도권을 쥐고 있는 글로벌 주요 선사들은 손실을 보면서도 선박을 발주하고 공급량을 유지‧확대하고 있다. 공급량 확대로 떨어진 해운 운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소 선사의 시장 퇴출을 위해서다. 올해 컨테이너선 공급 과잉률은 35%를 넘어섰다.

해운동맹체제가 지난 4월 기존 4개에서 오션얼라이언스와 디얼라이언스, 2M 등 3개의 해운동맹체제로 재편된 것도 국내 조선업엔 호재지만, 국내 해운업엔 악재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해운동맹들은 주도권 확보를 위해 최근 초대형 컨테이너선 늘리기 힘쓰고 있다”면서 운임을 낮추기 위한 전략인데 국내 해운사는 동맹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제2의 한진해운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 역시 상존한다. 실제로 머스크, MSC, CMA‧CGM, COSCO 등 거대 글로벌 선사들은 현대상선과 고려해운 등 세계 컨테이너선사 10위권 업체를 대상으로 한 공급량 밀어붙이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글로벌 거대 기업이 운임 하락 이끌기에 그치지 않고 나머지 선사를 인수합병(M&A)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진해운을 딛고 선 국내 해운업계는 내실 다지기를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특히 현대상선은 올해 들어 한진해운 터미널 5곳을 인수하며 수출화주를 끌어오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한진해운 사태로 잃어버린 국내 해운업 신뢰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부산항 물동량 증가세가 이를 반증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부산항 처리 물동량은 178만6575TEU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44% 증가했다. 지난 4월 물동량 증가율은 지난달보다 2%포인트 넘는 11.47%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부산항만공사가 집중하고 있는 환적 물동량은 90만1926TEU로 9.81% 늘었다. 현대상선, SM상선 등 국내 선사들이 운용하는 동남아 지역과 북미 지역 노선 환적 물동량이 늘어난 덕이다.

이에 대해 해운업계 한 전문가는 “부산항이 물동량 증가율을 보이는 이유는 해운동맹 재편과 중국 항만 마비 등 일시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부산항 물동량 증가만을 두고 회복을 점칠 수 없고, 결국 운임을 봐야 하는데 규모가 작은 국내 선사는 운임 주도권을 가질 수 없어 해운업계 위기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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