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문제 회피한 기색 역력 …국민 고통 외면 말아야

이달 초 치솟는 집값 때문에 아이들이 결혼까지 포기하는 처참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속으로 우려한 게 하나 있다. 부동산 정책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한데도 정작 당국은 대책을 세운다면서 업자들 눈치를 보다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거였다.

그 우려가 기우로 끝나지 않고 현실로 나타났다. 당국은 지난 19일 내놓은 대책에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고 말았다. 대책을 내놓기 전부터 언론을 통해 ‘부작용’을 흘리더니 결국 건설사와 금융기관의 이익을 확실히 챙기는 미봉책을 내놨다. 이러다간 참여정부 때 벌어졌던 것 이상으로 망국적 부동산 파동이 또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떨쳐내기 어렵다.

◇변명으로 일관한 6.19 대책

이번에 당국이 대책이란 걸 내놓자마나 인터넷 사이트에는 비난성 댓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댓글들이 하나같이 가진 자들을 위한 대책이란 거였다.


실제로 발표문을 훑어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폭등의 문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제목부터가 대책도 아니고 아예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선별적 맞춤형 대응방안’이라고 했다.

무주택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적어도 시장만큼은 확실히 살려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당국이 현 상황을 얼마나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내용을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더 기가 막힌다. 자료의 첫 부분을 장식한 게 시장동향이다.

“금년 5월 월간 상승률은 0.14%로, 5년 평균(0.12%)과 유사한 수준”이며 “금년 5월 누계 상승률은 0.33%로, 5년 평균(0.54%)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시작부터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투가 절절이 묻어난다. 생각이 거기에 머물고 있으니 판단도 그 수준이다. 이번에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전무한 것도 여기서 읽을 수 있다.

게다가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지 않은 이유까지 친절하게 달았는데 그게 걸작이다. “하반기 미국 기준금리 추가 인상 예고, 입주물량 증가 등 주택시장 조정 요인이 존재”한다고 했다. 건설업계를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자료에서 “대내외 경제여건 개선, 완만한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부동산시장 심리가 호전되며 투자목적의 주택수요가 급격히 증가한다”고 시장상황을 친절하게 평가하기도 했다. 앞뒤가 전혀 다른 해석에서 정책당국의 안이한 상황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삶의 필수요소를 투자대상으로 인식

당국은 이번에 청약시장의 경쟁률이 높다고 하면서도 ‘투자수요가 지속 유입’된다고 했다. 주택을 삶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기관의 먹거리 가운데 하나인 ‘모기지 자금’을 지속적으로 풀어 수요를 뒷받침하겠다는 발상도 거기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당국의 상황인식 중에서 가장 웃기는 것은 한국 주택시장의 문제를 중개업소를 비롯한 거래시장의 불법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당국은 이번 대응방안을 내놓기 전부터 불법행위 단속 강화를 한다고 부산을 떨었다. 중개업소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투다.

결국 대응방안조차 “거래가 위축되지 않도록”하는 “선별적·맞춤형 대출규제”로 나타났다. 대책을 세운다는 이들 자체가 등 따습고 배부르기에 심각한 문제의 본질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한국 부동산 시장은 거래 위축이나 몇몇 건설사의 사업성 하락을 걱정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짜내 전세금 올려준 세입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으더라도 오르는 전세금을 채우지 못해 그 집에서 쫓겨나고 있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셋집조차 마련할 수 없어 결혼까지 포기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런데도 ‘부작용’ 운운하며 안정책만 따질 것인가.

◇업자 눈치 보는 정책이 갖는 한계

정책을 결정하는 당국자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사정을 세심하게 고려하는 것은 좋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배려가 국가의 중심까지 흔들리게 해서는 곤란하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나온 많은 정책들을 보면 업자들 농간에 놀아나서 결정된 게 적지 않은 것 같다.

시장을 살리겠다며 내놓은 분양가 자율화나 그린벨트 완화는 결국 건설업체들 뱃속만 채워줬다. 지금 전국적인 부동산값 폭등은 중개업자들이 아니라 떳다방까지 동원해 경쟁적으로 고가분양 경쟁을 벌인 건설업자들이 주도한 것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심각한 부동산 가격 왜곡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을 멀리하는 것 또한 업자들의 폭리를 간과한데서 생긴 난개발 때문이다.

그런데도 부동산 대책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부작용부터 들먹거린 당국자들이 넘쳐나니 한심하다.

◇새 정책, 국민과 국가를 보고 내야

새 정부는 적폐 청산을 들고 나와 국민들의 표를 얻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국민들이 바라는 적폐 청산이나 그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생각이나 해봤을까 궁금할 정도다.

지금 부동산 문제는 대증요법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할 대상이다. 특정계층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도시재생을 포기해서라도 집값부터 잡아야 한다. 진짜 서민들의 재산형성을 돕고 싶다면, 야릇한 금융상품 내놓기보다 전세부터 안정시켜야 한다.

대책은 업자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보고 세워야 한다. 폭리를 취하던 업체 모두가 무너지더라도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업계 대책은 청년들이 집 때문에 결혼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난 뒤 생각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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