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세계화‧창조경제 등 홍보도구 노릇 지적…후속세대 양성·내수시장 확대 내실 다져야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인 5월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에스엠(SM) 아티움을 방문해 김영민 사장(왼쪽 셋째)과 배우 김민종씨(오른쪽 둘째), 가수 슈퍼주니어 이특씨(오른쪽 셋째) 등과 한류 문화산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당시 국회의원) 모습. / 사진=뉴스1

올해로 만 20년을 맞은 한류가 탈(脫) 정권과 탈(脫) 수출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받아든 형국이다. 그간 문화계 안팎에서는 한류가 정권의 국정기조를 홍보하는 도구 노릇에 그쳐왔다는 비판이 잇달았다. 국정농단 정국의 시발점 노릇을 한 미르‧K스포츠 재단의 포장지도 한류였다. 탈 정권 이야기가 피어나는 배경이다.

수출 일변도를 넘어 내실을 키워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J노믹스의 핵심기조가 내수활성화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한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후속세대 양성과 非(비)인기분야 자립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류는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관영 CCTV에서 방영된 후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본격화했다. 1999년에는 중국 베이징 도심 한복판에 한국 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쇼핑센터가 문을 열었다. 애초부터 한류는 대중문화 콘텐츠와 소비재의 연결고리 노릇을 했다는 얘기다.

이 덕에 한류는 문화정책이자 산업정책으로 대우받아왔다. 지난해 5월 열흘 간 중국 선양, 시안, 충칭 등 3개 도시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한류상품박람회도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했다. 박람회에 참여한 기업은 340여개에 달한다. 장관이 직접 중국으로 날아가 한류와 국내산 소비재의 시너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만큼 한류를 활용한 수출 진흥에 관심이 많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수출 한류가 ‘정권발’ 비선 게이트에 이용됐다는 데 있다. 지난해는 정치, 사회 뉴스에 한류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 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한복판에 주기적으로 한류가 등장한 탓이다. 게이트의 시발점 노릇을 한 미르재단은 설립 목적으로 “한류는 한국 기업과 제품의 해외진출이나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고 있고, 그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며 “미르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브랜드화하는 ‘신(新) 한류’를 창출하고 세계적으로 ‘코리아 프리미엄’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미르와 쌍둥이재단으로 불린 K스포츠재단 역시 한류 스포츠 선수 체육센터 건립을 핑계로 대기업 모금을 사실상 ‘강제’한 정황이 드러났다. 해외 시장에서 한류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재단을 양성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 셈이다. 사실상 최순실, 차은택 씨 등이 한류를 포장지 삼아 이권사업에 몰두한 꼴이 됐다.

한류 카테고리가 소비재에서 한식으로까지 확장된 배경에도 ‘정권’이 있다. 한식세계화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본격 추진됐다. 박근혜 정부 시기 농림축산식품부는 여기에 ‘K-FOOD’라는 명칭을 붙였다. K-POP을 홍보도구 삼은 흔적이 역력하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인 창조경제 역시 또 다른 국정기조인 문화융성을 연결고리 삼아 한류를 활용했다.

K-FOOD가 정부 관련 자료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한 지난해 한 문화산업 관계자는 기자에게 “한류가 대중문화 콘텐츠를 넘어 장르 확장을 모색하는 단계에서 한류 아닌 게 없어져버린 상황”이라고 꼬집었었다. 한류 용어규정 자체가 경계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권이 주도하는 ‘한류 도구론’이 만들어낸 폐해다.

이 때문에 새 정부 문화정책에서 한류진흥의 목표는 자연스레 탈 정권으로 모아진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미르재단 의혹 등을 정면 겨냥해 온 도종환 장관 취임도 이 같은 분위기를 견인할 가능성이 높다. 도 장관은 내정 직후 “무너진 조직의 쇄신을 통해 잘못된 정책과 시스템을 바로 세우고, 책임을 묻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개혁 드라이브를 공언했었다.

산업정책 차원에서도 전반적인 기조 변화가 나타날 공산이 크다. 특히 한류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수출 중심 진흥책이 내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J노믹스의 핵심 기조가 내수경기 활성화에 맞춰져있다는 점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중소기업 지원 등에 초점이 놓인 J노믹스가 한류 진흥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후속세대 양성과 내실 다지기에 주목하자는 입장이다.

김아영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조사연구팀 연구원은 “그간 한류 진흥의 첫 관심사는 수출이었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기 위해서라도 내수시장 내에서 개별 콘텐츠, 아티스트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신경 써야 한다”며 “특히 후속세대 양성이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비보이의 경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실력자들이다. 그런데 여전히 10년 전 활동했던 댄서들이 주축이다. 그 사이에 일본, 중국에서 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아직 非(비)인기 분야지만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장르들을 적극 찾아 성과를 검증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새 한류 진흥의 방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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