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위대한 일 했다…부당이익 환수할 ‘이학수법’ 필요”

13일 본지와 만난 곽노현 전 교육감은 재벌개혁의 절반은 광의의 사법개혁으로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사진=최형균 기자

(④ 곽노현 前 서울시 교육감 인터뷰에 이어)

당시에도 다른 재벌이 아닌 삼성, 그 중에서도 소유지배구조문제에 천착했다. ‘꼭대기를 바꿔야 한다’라는 명분을 말했었다.

법학교수 43명이 재벌총수 하나를 고발한다는 게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던 매우 비상한 일 아닌가. 김재규가 유신체제의 심장을 비수로 겨눴다고 자부했듯이 나도 재벌체제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는 의분과 결기로 임했다. 당시 (재계에는) 삼성 뿐 아니라 다른 그룹에도 총수 일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불공정거래가 아주 많았다. 그걸 다 고발하지는 않았다. 삼성을 먼저 겨냥하면 그 후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금융감독원이 다른 그룹의 무세(無稅) 배임상속시도를 다루기 쉬울 것으로 전망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비상장회사를 승계고리로 삼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하림그룹에서 25살짜리 대학생인 오너 2세가 비상장회사 덕에 회사를 통째로 승계 받게 됐다.

국회는 아직까지도 10대 재벌불법상속 청문회조차 열지 못했다. 행정부도 이를 방지할 정교한 법제도를 마련하지 못했다. 부작위에 의한 최고수준의 직무유기다.

이제 남은 건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일명 ‘이학수법’(‘특정재산 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에 구제 관한 법률안’)이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이들은 이재용과 그 자매들(이부진, 이서현)이다. 두 번째 수혜자가 이학수 전 부회장이다. 배임범죄로 얻은 재산상의 부당이익은 빠짐없이 환수해야 정의가 살아난다.

‘삼성요새’를 형성해오는데 검찰과 법원 등 사법권력도 일조해 왔다. 변호사로 개업해서도 관계는 이어진다. 최근에는 특검 대변인을 지낸 변호사가 신동주 전 롯데 부회장의 변호인을 맡았다가 비판 끝에 사임하기도 했다.


삼성은 법원에 대해 굉장히 많은 영향력의 고리를 갖고 있다. 한국 법관은 말로만 정년을 보장받을 뿐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지 못하면 50대 초중반에 옷을 벗는 관행이 아직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퇴임 후를 고민하는 판사들이 재벌을 엄정하게 다룰 수 있을까? 변호사가 될 때 재벌기업은 얼마나 좋은 고객이자 일자리인가. 법무실장 자리도 있고 사외이사 자리도 있지 않나.

그래서 법관독립을 강화해야 한다. 재벌개혁에서 사법부 역할이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재벌들의 불법, 편법, 부정, 비리 행위 중 운이 나쁜 일부만 법의 심판대에 선다. 이마저 법원이 관대하게 대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나마 총수가 연루된 범죄를 솜털처럼 가볍게 처벌해온 관행이 바뀌는 중이다. 다만 특정사안 하나에만 매몰되지 말고 큰 맥락과 구조까지 감안해서 양형을 높일 필요가 있다. 최고의 변호사일수록 구조적으로 큰 비리사안도 자디잘게 나눠 판사가 맥락 없이 현미경으로 보게 하는 법이다. 판사는 나무를 넘어 전체 숲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법개혁을 통해 법관독립이 강화되면 법관들이 대법원장이나 정치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양심과 소신에 따라 경제권력의 비리를 바로잡을 길이 열릴 거다.

재벌개혁을 달성하기 위해 사법개혁 완수를 지름길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보나?

재벌에 대한 통제 방식은 크게 4가지다. 시장에서의 통제, 기업 내부 통제, 입법에 의한 통제, 사법에 의한 통제다. 경제력이 집중된 탓에 시장 통제는 사실상 어렵다. 기업 내부 통제 역시 우리나라의 독특한 소유지배구조 때문에 작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주식시장을 통한 통제를 강화하자’ ‘주주소송을 활성화시키고 사외이사의 기능을 강화하자’ 같은 논의가 나온다. 실제 이 같은 방안이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으로 추진됐지만 별 실효성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검찰과 법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게 재벌을 통제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재벌개혁에서 검찰, 법원, 규제기관 등 광의의 사법개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을 거다.
 

13일 오후 서울 삼청동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 사진=최형균 기자

법무법인(로펌)과 회계법인이 삼성과 든든한 결속을 맺어왔다. 변호사‧회계사라는 전문가 집단이 직업윤리보다 재벌과의 유착에 더 관심 기울여왔다는 비판이 많다. 한국에는 기업을 대리하는 로펌은 많지만 기업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대리하는 로펌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법률가와 회계사는 진실을 다뤄야 하는 전문가다. 그런데 수많은 회계법인이 기업 부실 사태가 날 때마다 분식회계로 처벌 받고 영업을 중단한다. 대형 로펌에는 판‧검사, 장‧차관 등 전관이 넘친다. 이에 대항할 민간 지식권력을 만드는 일이 너무 어렵다.

변호사와 회계사 세계에 전문직윤리라도 튼튼히 뿌리내려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불법비리에는 조력하지 않는다’ ‘허위와 과장을 동원하지 않는다’ 등등. 의뢰인 이익을 위하면서도 위의 원칙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진실을 다루는 전문직에 대한 공신력이 생긴다. 당국과 전문직 공신력이 떨어지면 그 피해를 보통사람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돼있다.

최근에는 재벌개혁에 적극적인 지식인, 연구자가 과거처럼 많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를 관통하는 시기에는 곽노현, 김상조, 장하성, 조승현, 홍종학, 故김기원 교수의 활약상이 눈부셨다. 후세대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추상적으로 ‘재벌’을 비판하면 연구비나 이너서클 진입 등 당장의 혜택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삼성 같은 특정 재벌과 싸우면 모든 재벌의 진짜 적이 된다. 재벌로 통하는 모든 문이 닫힌다. 재계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기피인물이 된다. 현실적 문제도 있다. 요새 교수들은 연구압력에 너무 시달린다. 신진교수들이 특정재벌 소유지배구조 같은 주제로 오랜 기간 공들여 논문 쓰는 게 쉽지 않다. 이건 돈이 안 되는 걸 넘어서 돈을 쫓아내는 연구니까(웃음).

재벌은 사외이사를 고리로 주변에 엄청난 인재를 빨아들인다. 절대다수의 파워엘리트가 사외이사 형태로 재벌 곁에 있다. 이 사람들만 수천 명이다. 이를 노리는 인원도 또 수천 명이 넘는다.(웃음) 끈적끈적한 ‘수혜와 특권의 네트워크’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과 싸운다? 몇 명이나 남을까? 김상조 교수가 운영한 ‘경제개혁연대’가 고작 상근자 6, 7명으로 운영됐다. 조사연구능력과 시민행동역량을 겸비한 이 작은 독립단체 하나가 사실상 우리나라 전체 재벌과 맞대결한 거다. 김상조 교수는 방대한 회계데이터와 공시정보를 분석해서 이상 징후를 찾아내 그때마다 고발했다. 그야말로 국가권력이 꼼짝 못하고 일을 하게 만들었다. 위대하고 눈부신 일을 했다.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이 됐을 때 너무 기쁘더라.

경제개혁연대의 역사는 그 자체로 한국 재벌개혁 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독립적 연구기관의 역할은 원래 대학이 일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국내 대학 연구소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게 현실 아닌가. 재벌과 정권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는 경우도 많아서 독립성을 지키기도 어렵다. (이 공백의 틈에서) 경제개혁연대는 주요 기업들의 공시사항을 체계적으로 모니터링 해왔다. 문제를 발견하면 분석을 곁들여 검찰, 공정위, 국세청, 금감원에 고발을 했다. 정권이나 재벌로부터 자유로운 싱크탱크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이런 과정에서 독립적이면서도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갖춘 인재가 길러지는 것이다.

분야별 엘리트들이 돈과 권력만을 위해 뛰지 않는 전문직 윤리를 갖추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들이 일할 독립기구들을 만들어 기득권 중심 정치경제를 견제하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일찍부터 재벌총수가 뽑는 사외이사제가 아니라 노동이사제 등을 주장해온 이유다.

(⑥ 곽노현 前 서울시 교육감 인터뷰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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