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고성장 전망, 기술력 개발 시급…경쟁력 강화 위해 정부 지원 강화돼야

LG화학 청주공장에서 직원들이 RO필터를 테스트하고 있다. / 사진=LG화학
전 세계 수처리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국내 화학업체들도 수처리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세계 유명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이를 넘어서기 위한 기술력 개발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물 사업이 화학기업들의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이유는 좋은 물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기후 변화, 환경 오염으로 물 부족이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처리 사업은 그동안 설비와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 중공업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화학기업들이 수처리 필터를 생산하며 물 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워터 마켓(Global Water Market)에 따르면 지난해 7139억 달러 규모였던 세계 수처리 시장은 올해 7834억 달러, 2020년 8341억 달러로 연 평균 3%씩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화학업체들은 정수나 하수·폐수 처리에서 사용되는 ‘멤브레인’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멤브레인은 원수 내의 다양한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반투과성 막으로 기공크기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된다. 국내 업체들은 이 가운데 역삼투막(reverse osmosis)이라 불리는 RO막 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RO막은 해수 속 염분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지만 하수, 배수의 재이용 등 최근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수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RO플랜트 설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RO막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RO막 시장은 현재까진 다우, 니토덴코, 도레이 등 메이저 3사가 전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연 20%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11일 글로벌 물 산업 전문 기업인 메티토(Metito)사가 이집트 엘갈라라와 포트 사이드에 건설하는 30만톤 규모 해수 담수화 공장에 들어갈 RO필터의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이는 하루 동안 약 100만명에게 담수를 공급할 수 있는 이집트 최대 해수담수화 설비로, LG화학은 올해 하반기부터 메티토에 제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LG화학은 지난해에도 중동 오만의 25만톤 규모 수주에 성공한 바 있다. LG화학은 약 400억원을 투자해 올해 초 증설을 완료한 청주공장 2호라인을 통해 산업용 및 가정용 RO필터 시장에 신규 진출하는 등 수처리 전 분야에서 세계시장 공략에 본격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상해에서 개최된 아시아 최대 규모 수처리 박람회 ‘아쿠아텍 차이나(Aquatech China 2017)’에서 경쟁사 대비 10% 이상 고(高)유량 구현이 가능한 세계 최고 수준의 가정용 RO필터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LG화학은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중국, 인도 등 신규시장을 적극 개척한다는 계획이다.

LG화학 외에도 국내 화학업체들의 수처리 사업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효성은 수처리 시장의 높은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011년 수처리 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2015년 삼성SDI의 수처리 사업 연구개발 시설을 인수했다. 특히 수처리 사업을 향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500억원을 투자해 대구 ‘물산업 클러스터’에 멤브레인 생산 공장 착공을 앞두고 있다.

효성은 2011년부터 머리카락 굵기의 1200분의 1 크기 구멍이 뚫려 있는 막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고 있다. 지난해에는 AMC(아세틸화 메틸셀룰로스) 가압형 중공사막 모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효성이 개발한 AMC소재는 기존 소재보다 높은 친수성을 바탕으로 내오염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02년 산업용 멤브레인인 ‘클린필-S’ 개발에 성공해, 2004년부터 경북 경산공장에서 생산을 하고 있다. 2013년에는 생산 라인을 증설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 화학업체들이 수처리 시장에 본격 진출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평가한다.

한 전문가는 “국내의 경우 물산업 핵심소재인 분리막, 관련 소재개발에 대한 원천기술 확보 및 관련 연구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이에 선진국과의 격차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3년에는 국내 필터 시장의 60%를 차지하던 웅진케미칼이 일본 업체인 도레이첨단소재에 인수되기도 했다. 웅진케미칼은 1994년 국내 처음으로 역삼투 필터 국산화에 성공한 이후 MF(마이크로 필터)와 UF(울트라필터)까지 사업을 확장해 왔다. 당시 웅진케미칼은 역삼투분리막 필터에서 국내 1위이자 세계 3∼4위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웅진케미칼이 일본 업체에 넘어간 이후 지금까지 세계 RO막 시장은 다른 외국업체들이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처리업계 관계자는 “당시에도 기술유출 논란 등이 있었지만 정부가 이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향후 수처리 시장 진출을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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