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확대에도 당장 일감 없어”…정책 지원 절실

국내 조선업이 부활의 기미를 보이지만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저가수주 우려가 제기되면서 업황 회복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내년 초는 지나야 조선 경기가 살아날 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전망이 유력하다. 또 일감 공백을 메우고 인력 손실을 막을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는 평가다. 

 

한국 조선 업계가 2개월 연속 수주 실적 세계 1위에 올랐다. 지난달 국내 조선사는 전 세계 선박 발주 절반을 가져오며 중국을 따돌렸다. 지난 4월엔 이미 월별 수주량에서 중국을 넘어섰다. 2년여 만이다. 2012년 중국에 밀려 2위로 내려앉은 이후 2015년에는 일본에도 밀리며 잃어버린 조선 강국 지위를 올해는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낙관도 난분분하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에 부활의 뱃고동은 성급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줄어든 선박 건조 수요는 지난해 이미 수주 절벽에 부닥쳤고, 선박 조립 도크는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최근 국내 조선사가 중국보다도 많은 일감을 가져왔지만, 건조는 아무리 빨라도 내년에야 시작할 수 있다. 조선사가 수주 후 건조를 시작하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탓이다. 

 

조선업계 일감 절벽 문제가 국내 조선사 수주 호황에도 현실로 나타났다. / 그래픽 = 김태길 디자이너

◇ “일 없이 일할 날 기다려야”

이에 도크 위 선박 건조 작업에 필요한 인력은 올해 하반기까지 일 없이 일할 날을 기다려야 한다. 순환 휴직이라는 말이 조선 업계에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빅3는 지난해 셋이 합쳐 영업손실 6조원을 기록했지만, 일감 공백을 메우기 위한 유·무급 순환 휴직을 검토 중이다.

1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는 2만여명에 달하는 생산 인력 순환휴직 검토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올해 하반기 일감 바닥으로 전체 직원 1만6000명 중 3분의 1인 5000명이 할 일이 없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5월까지 국내 조선사 수주량이 207만4507CGT(단위환산톤수)으로 중국 184만552CGT을 누른 것과 대조된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1분기 이미 600명 인원을 줄였지만, 무급 순환 휴직을 검토 중이다. 중소조선사인 성동조선해양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그리스 선주 키클라데스와 3억달러 규모의 유조선 7척(옵션 2척 포함) 수주 계약을 체결한 성동조선은 10월 말 일감이 소진될 예정인 데 따라 인력 1440명중 절반인 700명이 유급 휴직 중이다.

저가 수주 우려마저 여전하다. 저가 수주에 따른 수익성 악화는 유·무급 순환 휴직으로 애써 견딘 인력의 도크 복귀를 차단한다. 지난달 국내 조선사는 전 세계 선박 발주량 165만8298CGT의 절반에 가까운 79만4871CGT(47.9%)을 수주했지만, 수주 선박 대부분은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에 몰렸고 VLCC 가격은 한 척당 8000만 달러 수준에 그쳤다.

앞서 국내 조선업이 중국의 선박 수주 저가 공세에 완벽히 포위되기 이전인 2014년 VLCC 선가는 1척당 1억1000만달러에 달했다. 2년 새 VLCC 선가 27.2%가 하락한 셈이다.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가격도 최근 한 달 새 100만 달러가량 떨어진 1억8200만 달러 정도다.

 

한·중 조선사 올해 1~5월 누적 수주량.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 일감 공백 메울 정책 지원 절실

업계에서는 중국을 넘어 국내 조선업이 부활하기 위해선 일감 공백을 메우고 저가 수주 우려를 종식할 수 있는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조선업계 한 전문가는 “중국은 공격적인 저가 수주로 전 세계 선박 수주를 끌어오면서도 자국 내 발주를 중심으로 수주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자국 선사가 노후 선박을 교체할 때 GT(선박의 총 무게)당 약 3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노후 관공선·연안여객선을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고, 선박펀드를 활용한 발주, 노후 상선 교체 지원 등을 담은 해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일감 절벽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로 조선업 도시인 울산과 경남의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년 새 2400명이나 줄었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IT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조선 산업을 가망 없는 산업이라고 규정하고 정책 지원을 아껴서는 안 된다. 조선 산업은 노동집약 산업이지만, 핵심 경쟁력은 단순 인건비 절감이 아닌 숙련노동에서 나오는 기술 집약형 산업”이라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물량 확보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인력을 손실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사가 배를 만드는 방식은 두 가지 단계로 나뉜다. 먼저 육지에 있는 공장에서 건조에 필요한 부품을 만들고 이어 부품을 물 위의 도크에서 조립하는 식으로 배를 만든다. 중요한 부분은 도크 작업이다. 물 위에서 진행하는 조립 작업인데다 배마다 모양과 기능이 제각각이고, 사람이 일일이 들어가야 하는 복잡한 공정 많은 탓이다. 숙련공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 도크 폐쇄 가속…인력 손실 막아야

하지만 일감이 말라버린 현시점에서 국내 조선사가 도크 폐쇄를 늘리면서 숙련공 이탈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조선사가 올해 들어 폐쇄했거나 가동 중단 예정인 도크는 5개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11개 도크 중 3개 도크 가동을 중단했다. 현대미포조선은 울산에 위치한 도크 4개 중 35만톤급 제4도크 가동 중단을 검토 중이다.

김 교수는 “갈수록 선박에 대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조선 산업이 중국을 넘어 다시 호황을 맞이할 방법은 이 같은 숙련노동력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한국 조선업이 설계와 생산 역량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차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을 정책 지원을 통해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조선사가 지난달 기록한 수주 잔량은 1749만600CGT으로로 지난 4월보다 15만CGT 증가했다. 수주잔량 규모가 전월보다 늘어난 것은 2015년 5월 이후 2년 만이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사는 같은 기간 1716만8392CGT를 기록한 일본을 제쳤다. 다만 중국이 가진 수주잔량 2575만6696CGT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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