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업체는 실리·명분 놓고 고심…국내 건설사는 후진적 계약관행에 부담 느껴

이미지= 조현경 디자이너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오는 16일 열리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를 두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이 재차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5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사업에 한·미·일 3국 건설사는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중국 수출확대 경계, 일본은 중국의 군사대국화, 한국은 중국 발주처의 ‘후진적 계약관행’이 각국 건설사들이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망설이는 이유다.

일대일로 사업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2013년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순방 당시 처음 제시했다. 육로, 해로를 건설해 아시아 전역(64개구)을 포괄하는 경제권역 구축이 목표다. 중국 측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10조6000억 달러, 연평균 약 2조1000억 달러 규모의 교통인프라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외 건설업계에겐 호재로 작용할 대목이다. 최근 AIIB 연차총회를 두고 일대일로 사업이 추진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미‧일 건설사가 마냥 일대일로 사업을 반기지 만은 않는 분위기다. 중국을 대상으로 한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 업체의 경우 일대일로를 통해 호재를 맞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지난해 중국 일대일로 계획에 포함되는 지역에서 총 23억 달러의 장비를 수주했다. 이는 전년(4억 달러) 대비 급증한 수치다. GE는 앞으로도 17개월 간 70억 달러 상당의 천연가스 터빈, 발전설비 사업 등에 참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이 본격화되면 해당 지역의 장비 발주물량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건설업체가 GE를 따라 이 지역 건설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모든 미국 건설사가 일대일로 사업에 촉각을 곤두세우진 않는다. 중국 측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자국의 수출증대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짐머맨 전 주중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우리가 (일대일로 사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가”라며 미국 측 업체들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에 의구심을 표했다. 미국 건설사가 사업참여 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면 중국 측의 계획에 ‘들러리’만을 설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아울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대규모 수출흑자를 달가워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국 건설사의 사업참여는 명분은 물론 실리도 잃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건설사 역시 미국과 동일한 고민에 빠졌다. 일본 건설사가 목표로 하는 사업목표, 중국과 일본의 패권경쟁이 주된 이유다.

우선 일본 정부 측은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5일 아베 총리는 “(조건이 맞는다면)일본은 (일대일로 사업에) 협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 측은 지난달 15일 베이징 인근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자민당 간사장, 총리 정무담당 비서관을 보낸 바 있다. 

다만 중국과 일본 간 일대일로 사업을 둘러싼 시각차가 일본 건설업계의 참여를 망설이게 하고 있다. 지난달 산케이신문은 한 국제경제 조사기관 간부의 발언을 인용해 “왕성한 인프라 수요는 물론 중국은 속도감을 중시하고 있다”며 높은 기술이 필요 없는 도로포장 등의 공사에서 일본 건설사가 승산이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본 측이 건설수출 시 “질 높은 인프라”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자국 업체가 일대일로 사업의 인프라 사업에서 큰 수익을 얻기란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이다. 또한 중국 측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중동 지역 세력확장 등을 노릴 경우 아시아의 맹주 역할을 자임한 일본의 입장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산케이신문은 지적한다.

국내 건설사는 일본, 미국 업체와 달리 명분이 아닌 실리측면을 가장 고민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AIIB 지분율이 3.81%로 참가국 중 다섯 번째로 많다. AIIB 재원을 조달하는 일대일로 공사물량 발주 시 국내 건설사 참여기회도 커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중국 발주처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할 지에 의문점이 찍히면서 대형사들도 사업참여를 꺼리는 상황이다.

중국 발주처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국 측은 여전히 후진적인 계약관행을 지니고 있다. 국내 기업이 중국 업체와 계약을 맺더라도 자사에 유리하게 재차 계약사항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국 경제는 선진국 수준일지 몰라도 계약문화는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이라며 “일대일로 사업의 경우도 이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프로젝트 규모가 큰 만큼 이 과정에서 손실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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