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석연치 않은 진단평가로 업체 변경…미광전자 “고의 퇴출” 주장

/ 디자이너 김태길
‘정도(正道)경영’.

국내 굴지 대기업 LG그룹은 구성원이 지향하는 행동양식을 이 한 단어로 표현하곤 한다. LG그룹 홈페이지에서 ‘정도경영’을 찾아봤다.

‘윤리경영을 기반으로 꾸준히 실력을 배양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LG만의 행동양식’

LG전자와 20년 거래 관계를 맺어온 임가공 하도급업체 미광전자㈜의 황선도 사장이 기자와 만날 때마다 연거푸 내뱉었던 말도 이 ‘정도경영’이라는 네 글자였다.

황 사장은 “LG전자와 20년이나 거래하면서 LG가 이야기하는 정도경영을 믿었다”면서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낮춰 회사 운영이 어려워도 끝까지 정도경영을 믿었는데 다 부질없는 이야기였다는 생각에 배신감만 남았다”고 말했다.

◇LG전자, 미광전자 유리한 기준 적용한 진단평가는 ‘미실시’

미광전자는 지난 4월 말 ‘20년 지기’ 원청 대기업인 LG전자를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현재 두 회사는 한국공정거래조정원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에서 조정 절차를 거치고 있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으면 공정위가 본격적으로 조사한다. 조정결정이든 공정위 조사든 결과와 상관없이, 미광전자는 지난해 말 이후 LG전자와 거래를 모두 끊었다. LG전자와 거래가 매출의 전부인 미광전자로서는 회사 문을 닫을 각오로 LG전자 측과 법적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황 사장은 “단가 인하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나마 언제라도 물량을 더 주면 회사가 잘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면서 “그런데 물량이 더 늘어나기는커녕 LG전자가 단가 인하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물량을 줄이려 하는 것을 보고는 ‘이 사업은 더 할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의 발단은 LG전자가 1차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실시하는 ‘진단평가’였다. LG전자는 임가공 협력회사를 월 단위 또는 분기(3개월) 단위로 평가하고 실적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진단평가를 실시해왔다.

2014~2015년 연이은 LG전자 구미공장의 임가공 납품단가 인하 결정이 있은 후인 지난 2016년 1월 말 무렵이었다. LG전자는 미광전자 등 구미지역 임가공 위탁업체와 평택지역 협력업체를 불러 ‘품질목표 조인식’과 ‘ 임가공 협력사 등급평가 규정에 대한 공유회’를 열었다.

당시 LG전자는 임가공 협력회사 등급 평가 운영 기준을 제시했는데, 분기별로 협력업체를 진단한 결과에 따라 등급이 낮은 업체는 물량을 줄이는 대신 등급이 우수한 업체에는 물량을 더 준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에 따라 미광전자 등 3개 1차 협력업체는 LG전자의 진단평가에 따라 물량을 늘거나 줄 수 있는 형편이었다. 당초 ‘물량을 늘여주겠다’는 약속이 이행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물량을 늘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미광전자 관계자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6년 1월 공유회 개최 후 첫 번째 분기 평가가 있을 예정이던 같은 해 3월 말 무렵, LG전자 측이 돌연 진단평가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협력업체들에게 공지한 것이다.

2015년 12월 말 4분기 진단평가에서 미광전자가 1등을 한 미광전자로서는 황당한 상황이 됐다. 미광전자 측 주장에 따르면 기존 진단평가 기준에 따라 2016년 1분기 평가가 실시되면, 품질 트러블(Trouble)이 발생한 나머지 2개 1차 협력업체가 2분기(2016년 4월~6월) 때 각각 –1.5%씩 물량을 줄여받고 미광전자는 +3% 물량을 더 넘겨받을 수 있었다.

1분기 진단평가 미실시로 물량 확보 기회를 잃은 미광전자는 LG전자에 항의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그런데 더 석연치 않은 일이 2분기 평가를 앞두고 벌어졌다.

◇4개월 만에 ‘재무건전성’ 넣은 진단평가로 변경

지난 2016년 5월 초 LG전자는 미광전자 등 1차 협력업체 사장단 회의를 소집하고 임가공 평가 운영 변경안을 제시했다. 2016년 1월 공유회 이후 4개월 만에 평가 항목 등 기준이 변경된 것이다.

애초 LG전자는 협력업체 대상으로 ‘품질’과 ‘생산’ 항목에 각각 80점과 20점의 배점을 주고 여기에 품질 트러블, 총조공정불량률, 잔량, 생산목표달성률 등 10개 상세 항목을 진단평가했다. 하지만 변경 기준 안에서는 ‘품질’ 배점은 35점으로 대폭 낮춘 반면, ‘재무건전성’에 20점을 배점하도록 했다. 이외에 ‘정책기여도’(20점), ‘안전’(5점), ‘CSR(기업의 사회적책임’(5점) 등도 진단평가 항목에 포함시켰다.

평가 기준 변경 전인 2016년 1분기 실적에서 품질 트러블이 없어 품질 항목의 배점이 높았던 미광전자로서는 애매한 상황이 돼 버렸다. 특히 단가 인하와 투자 과정에서 부채가 늘어난 미광전자는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LG전자 측에 “경영상 어렵다”는 사정을 이야기해온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건전성’에 상당한 배점을 준 평가기준 변경은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LG전자가 원청업체로서 물품의 안정적인 공급 등을 위해 하청업체의 안정적인 운영을 중요한 진단평가 기준으로 삼을 수 있지만, 다른 분야 협력업체 진단평가와 비교하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 대목도 나온다.

시사저널e은 미광전자 등 TV 부품 임가공 위탁업체와 유사한 하도급거래 구조를 가진 휴대폰 단말 협력업체에 대한 LG전자의 진단평가 기준을 확보했다. 지난 2016년 하반기 적용된 이 기준에 따르면, 협력업체의 경영 관련 사항(신용평가 결과)은 거래 지속 에부 검토에 참고만 할 뿐 진단평가 배점 항목엔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미광전자 “불만 있다 오해해 벌어진 것”…LG전자 “일방 주장”
 

미광전자 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의 진단평가는 실시되지 않고, ‘불리한 기준’으로 진단평가가 갑작스럽게 변경된 데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미광전자 측은 “기존 평가 방식으로 미광전자가 빤히 1등을 할 상황에 처하니 협력업체들 중 미광전자에게 가장 불리한 재무건전성을 평가 항목에 포함시킨 것”이라면서 “우리가 납품단가 인하와 물량 배분에 불만을 품고 있다고 오해한 LG전자 측 고위관계자가 재정 문제를 이유로 물량을 아예 줄여 퇴출시키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광전자 측의 ‘퇴출’ 주장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을까. 시사저널e는 지난 2016년 11월 초 미광전자 황선도 사장과 LG전자 구미공장 A상무가 대화한 녹취록을 확보했다.

황선도 미광전자 사장 : “아니, 아니 여기서 했습니다. 아유, 상무님께서 그렇게 (미광전자가 단가 인하나 물량 배분 등 불만을 품었다고) 오해를 하셨구나, 휴우~.”
LG전자 A 상무 : “그래 가지고 이제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래, 뭐 미광의 황 사장님께서 클레임 걸어서 클레임대로 해줬는데 약속은 또 혼자 안 지킨다.’ 이렇게 저는 생각한 거지. ”
(중략)
A 상무 : “뭐 오해가 많네요. 뭔가 찝찝한데 중요한 건 아닌데.”
황 사장 : “중요한 건 아니더라도 알 건 알아야 됩니다. 오해는 풀고 가야지요. 오해는 풀고 가야지요.”

같은날 녹음된 다른 녹취록에서도 미광전자의 물량 축소 등 고의 퇴출을 위해 진단평가 기준을 변경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 엿보인다.

황선도 미광전자 사장 : “(LG전자 구미공장 관계자인) OOO가 (2016년 1분기) 품질 (진단평가) 미실시 한다고 그러고, 진단 안 한다고 그러고, 그걸 또 (A) 상무님이 지시했다고 그러고 이러니깐 ‘아, 이건 내가 갈 데 없다’.”
A 상무 : “(품질 평가 미실시) 지시했지요. 당연히. 제가 지시 안 하면 그래 안 움직여요.”
황 사장 : “그럼 품질 진단을 왜 상무님께서, 왜 그렇게 하나, 품질은 내가 봤을 때 지시를 하는 게 아니지요.”
A 상무 : “아니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니깐요. ‘(협력업체에서) 임금체불이라는 거는 이게 막장까지 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회사는 빨리 방지해라. 그거 뭐 (물량) 1%, 2% 움직여가 되는, 되는 얘기가 아니다. 이거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근본적으로 막아라.’ 그 얘기를 하는 거죠.”

시사저널e는 LG전자에게 미광전자가 주장하는 불공정거래행위 등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을 듣고자 했지만, 공정위 신고와 조정 절차 중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이야기 외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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