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遠慮] “고객? 판매가 살길” 무뎌진 벤츠의 보도(寶刀)
  • 정기수 기자(guyer73@sisajournal-e.com)
  • 승인 2017.06.0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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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 수성 위해 할인 총력, 프리미엄 퇴색…폭리, 결함 논란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국내 시장에서 방향성을 잃었다. 국내 고급차 시장에서 차별화된 품질과 고객 관리로 입지를 넓혀오던 ‘프리미엄’ 브랜드의 기치가 실종됐다. 수입차 판매 선두 자리를 수성하기 위한 할인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브랜드의 지향점을 잃고 갈지자(之)​ 행보가 거친 모양새다.


벤츠는 지난해 국내시장에서 수입차 최초로 5만대 판매를 돌파하며 새롭게 왕좌에 올랐다. 외형의 성장과 함께 수익성도 견조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벤츠의 지난해 매출액은 3조7875억원으로 전년 대비 20.6% 늘었다. 국내 완성차업체인 쌍용자동차(3조6285억원)의 매출액을 웃돌았다. 한국GM(3조4437억원),르노삼성차(3조1809억원)의 지난해 내수 매출액도 상회했다. 같은 기간 벤츠의 영업이익은 1143억원으로 2.9% 늘었다. 9년 만에 흑자를 기록한 쌍용차(280억원)의 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거둬들인 과실 중 상당 부분은 독일 본사의 몫이다. 국내 진출 15년 동안 쌓인 막대한 이익에도 투자엔 여전히 인색하다. 현재까지 국내 인프라 투자는 연구개발(R&D)센터 및 부품물류센터(PDC) 2곳이 전부다.

차량 판매는 늘어도 고객들의 편의는 뒷전이다. 벤츠는 국내 고객들에게 그동안 정비망 부족과 서비스 개선 등 문제점을 수 차례 지적받아왔다. 올 초 간담회에서는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벤츠 코리아 사장이 직접 나서 전시장 및 서비스센터 등 네트워크 확장과 딜러사 임직원 고용 확대 계획을 밝혔지만 2000억원에 달하는 투자 금액 중 벤츠 코리아의 부담은 없다. 투자는 딜러사에 떠넘기고, 성과는 벤츠 코리아가 챙기는 모양새다.

2012년부터는 해마다 50%를 넘기는 ​통 큰(?)​ 배당도 이어오고 있다. 여론의 도마에 오르며 숱한 지탄을 받아도 흔들림이 없다. 비난이 빗발쳐도 차는 잘 팔린다는 자신감에 당당하다. 지난해 배당성향은 52%로 전년(66%) 대비 10%P 낮아졌지만 여전히 순이익의 절반 이상이 본사에 배당됐다. 지난해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익 가운데 약 450억원에 달하는 돈이 증발한 셈이다. 


반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기부 금액은 63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작년에 전체 1/3에 가까운 기부가 몰렸다. 그동안 기부에 인색했다는 여론에 등떠밀린 인상이 짙다. 같은 기간 225억원을 기부한 BMW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BMW코리아는 2011년 이후 단 한 번도 본사에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국내 재투자 활동이 어느 정도 궤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지난해 5년 만에 처음으로 370억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사장. / 사진=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그럼에도 벤츠의 질주는 거침이 없다. 지난해 8년 만에 BMW를 밀어내고 수입차 판매 선두 자리에 오른 벤츠는 올해 1~4월 시장 점유율이 30%를 훌쩍 웃돈다. 올 들어 판매된 수입차 10대 중 3대 이상이 벤츠라는 얘기다. 이 추세대로라면 수입차 업계 최초로 연 판매 7만대 돌파도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러 비난에도 벤츠가 고공행진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국내 시장에서 특화된 브랜드 가치다. 하지만 올 들어 선두 수성을 위해 공격적인 판촉에 나서면서 ​프리미엄​이라는 희소성이 퇴색돼 가고 있다는 평가다. BMW와 아우디 등 경쟁 브랜드가 10% 할인을 해도 끄떡 없었던 벤츠의 자존심은 간 데 없다.


벤츠의 국내 시장 질주를 견인한 프리미엄이라는 가치의 보도(寶刀)가 판매에만 급급한 이기적인 수입사의 칼자루로 전횡(專橫)되면서 날끝이 무뎌지는 모양새다.

실제 서울 강남 신사동 벤츠 전시장에서 만난 한 영업사원은 “E클래스 등 주요 모델에 대해 최대 500만원 정도에 달하는 할인을 진행하고 있다​며 ​딜러마다 S클래스의 비공식 할인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안을 듣고도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이 영업사원은 이내 ​내 마진을 깎아서라도 원하는 수준의 가격을 맞춰줄 수 있다​며 ​올 초 오른 가격 인상분을 감안해 더 혜택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속내를 꺼내놓기도 했다.


벤츠 차량을 재구매하기 위해 들렀다는 김성종(남·41)씨는 ​앞으로 벤츠가 신차를 내놔도 바로 구매하는 데 망설임이 생길 듯 하다​며 ​시간이 지나면 할인될 지도 모르는데, 제 값 주고 사면서 호구 소리까지 듣고 싶진 않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벤츠 코리아가 애초부터 높은 가격을 책정,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불거진다. 벤츠의 경우 수입원가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마진이 얼마나 더 붙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판매가격이 1억~2억원에 달하는 고가 모델의 경우 실제 수입원가가 판매가격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일 것이라는 게 업계에서는 정설로 통용되기도 한다.

올 들어서는 잇따른 리콜과 결함 논란에 휩싸이며 품질 완성도에 대한 의구심조차 불거지고 있다. 이달 초에는 국토교통부로부터 E200 등 9개 차종 1069대에 대해 리콜 명령을 받았다. 리콜까지 가진 않았지만 변속기 레버가 갑자기 부러지는 내구성 문제나 창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등 제작 결함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벤츠 코리아는 ​고객 과실​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두 건 모두 공식적인 보상이나 리콜은 계획에도 없다.


선두 자리 수성을 위한 출혈 경쟁 탓에 국내 딜러들의 희생을 묵인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대규모로 할인을 진행해도 피해는 모두 딜러사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수입사인 벤츠 코리아가 입는 피해는 거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생의 기치를 앞세우고 모두가 동반성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신들만 예외라고 착각하는 벤츠 코리아의 오만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정기수 기자
정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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