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매 유통업체들의 2분기 경기 전망이 8년 만에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 때문이다.

일러스트=우먼센스 이현정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도 그건 될 줄 알았습니다. <대장금>의 아우라가 있고 이영애라는 카드에 송승헌까지 가세한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까지 중국 수출이 안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의 말이다. 그만큼 요즘 연예계에는 암울한 그림자가 매우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후폭풍으로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 발길을 끊었으며 중국 한류 역시 한한령(限韓令)의 여파로 완전히 문이 닫혀버렸다.

 

<사임당>과 <도깨비>가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 연예계가 마련한 야심작 <사임당>이 중국 광전총국의 사전심의를 받지 못하며 결국 중국 입성에 실패했고, 기대가 높았던 <도깨비>의 중국 수출길 또한 막혀버렸다.

 

불법 다운로드 등 음지로 유통되면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린 <도깨비>의 저력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기본적으로 중국 한류의 정상적인 루트는 거의 모두 막혔고 최근 열린 베이징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를 초청하지 않았다. 이미 한국 영화의 중국 개봉이 힘겨워진 상황으로 지난해에는 단 한 편도 개봉하지 못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일본 영화를 11편이나 개봉했고,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무려 1천억여 원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 것을 보면 씁쓸한 소식이다.

 

가요계 역시 참담하다. K-팝 가수들의 중국 현지 활동이 사실상 중단됐다.​ 다행히 중국 현지 팬들이 홍콩과 대만 등을 직접 찾아 K-팝 스타들의 공연이나 행사에 참석하는 등 아직 열기는 식지 않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한한령이 계속 이어질 경우 그 열기도 곧 식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런 까닭에 가요계는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시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구 2억 5천만여 명의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한국 연예계의 더욱 근본적인 위기는 중국 자본의 투자까지 끊겼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국 한류가 대세를 이루면서 중국 자본의 한국 연예계에 대한 투자도 급속도로 진행,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서 유명 연예 기획사가 중국 회사로 편입되는 등의 호황은 당분간 기대할 수 없다. 중국의 투자가 끊기면서 중국 자본을 통해 한국 연예계는 시장 규모를 키우며 더욱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이를 중국 시장에 수출하는 선순환 구조 역시 힘들어졌다.

 

한한령으로 중국 시장에서 한류 열풍이 치명타를 입는 사이 한국 산업 전반 역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은 한국 제품의 통관을 거부하고 현지 매장의 영업을 정지시키는 등 다양한 보복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 롯데마트의 90%가 문을 닫은 롯데그룹의 경우 관련 손실이 올해 상반기에만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유통업에서 제조업까지 보복의 여파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는데 현대·기아차의 중국 판매량이 반토막 났을 정도다. 이는 현대·기아차의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자동차 부품업체들까지 고통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느냐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한류를 중심으로 시작됐듯이 해결책 역시 한류의 부활에서 찾을 수도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중국은 각종 심의 규정을 강화하며 한류 콘텐츠 경계령을 꾸준히 유지해왔지만 한류는 콘텐츠의 힘으로 이런 장벽을 거듭 통과해오지 않았던가. <별에서 온 그대>가 TV가 아닌 온라인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대박이 난 것을 보면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한한령의 돌파구로 서양 대자본이 떠오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 세계 2백여 개 국가에서 방영되는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야심작 <옥자>는 사실 극장 개봉용이 아닌 인터넷 기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한 영화다. 인터넷 기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업체 넷플릭스가 직접 투자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극장 개봉 영화나 TV 방영 드라마를 주로 서비스하지만 아예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한 오리지널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며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킹덤>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준비 중인데, 넷플릭스가 무려 3백억원을 투자했다. 

 

지금 한국의 경제·문화계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외교적인 갈등으로 일본에 이어 중국 한류까지 봉쇄된 상황에서 넷플릭스 등 서양 대자본과 손잡고 한류를 전 세계로 확대하며 또 한 번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반면 한국 연예계가 서양 대자본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과 일본 시장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서양 대자본과의 협업을 통한 세계 진출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중국 한한령 돌파,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글 신민섭<일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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