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 놓고 기술·서비스 구상해야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헤게모니(주도권)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중국 IT 기업 성장세는 미국 스타 기업들을 압도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일 자 ‘중국 기술기업 3인방이 미국 경쟁업체 FAANG과 맞서고 있다’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BAT가 FAANG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고 지적했다.

BAT는 중국 기술 대기업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의 영문 머릿자 조합이다. 바이두는 한때 구글 짝퉁이라는 불리던 중국 검색엔진이다. 알리바바는 시장점유율 80%를 자랑하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다. 텐센트는 게임 서비스 회사다. FAANG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미국 IT 분야 스타 기업들이다.

중국 IT 3인방이 세계 IT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 대표 기업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는 게 놀랍다. 텐센트와 알리바바는 세계 1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과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세계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

미국 FAANG는 주로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BAT는 다양한 수입원을 갖고 있다. BAT는 가입자 수수료, 위탁판매 수수료, 게임 아이템 판매 등 여러 수입원으로 안정된 매출을 일으키고 있다. 사업 영역도 다변화하고 있다. 또 클라우드와 결제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면서 아마존이나 구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특히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이 터지면서 빛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현금흐름 681억위안(100억 달러)을 창출했다. 텐센트는 580억5000만위안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두는 광고 관련 규제기관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BAT는 잇따른 사업 성공에 따른 자신감과 풍부한 현금흐름을 활용해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제4차 산업혁명 주력 산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아니라 BAT 등 민간 기업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제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인프라스트럭처(사회간접자본)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제4차산업혁명위원회까지 만들었다. 모든 산업혁명에서 정부 역할은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이다. 산업혁명 주체는 예외없이 민간 기업이었다. 이에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한국판 BAT가 나타나야 한다. 

현실은 여의치 않다. 국내 시장이 협소하다보니 성장 토양 자체가 중국에 못미치는 게 국내 IT 기업들에겐 치명적이다. 이에 네이버,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쿠팡 등 한국판 BAT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혁신을 이끄는 추동력 면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다.

국내 IT 업체들이 이제 성장 전략을 바꿔야 한다. 기술 개발이나 사업구상 초기부터 영어와 중국어 서비스를 염두에 둬야 한다.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LG화학 등 국내 제조업체처럼 국내 IT 기업들도 세계 시장을 놓고 성장전략을 짜야 한다. 국내 인터넷 업체 상당수가 협소한 국내 시장만 노리고 사업을 벌이다 이내 명멸해 갔다. 

이스라엘 요즈마그룹 이갈 에를리히  회장은 “한국 IT기업 중에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만한 기술과 인재를 갖춘 업체가 즐비하다”며 “왜 이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보지 않는 지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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