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규제론’ 부담…예술계 ‘반색’, 기관 ‘긴장 속 기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도종환 의원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사진=뉴스1

문화계 안팎에서 유력하게 점쳐온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발탁이 현실화했다. 도 내정자는 탄핵정국의 주된 불씨였던 미르재단 의혹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이슈를 주도했고, 영화산업 수직계열화 규제가 골자인 법안도 내놓는 등 거침없는 개혁 행보를 이어왔다.

문화계 안팎에서는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현장 예술계는 환영 입장을 나타내면서도 문체부 체제 개혁 등 묵은 과제도 동시에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CJ와 롯데 등 영화상영과 배급을 모두 영위하는 대기업들은 규제 가능성 대두 탓에 비상이 걸렸다. 상임위 때부터 문체부와 산하기관들을 향해 날선 비판을 쏟아온 장관이 임명되면서 기관 안팎은 ‘긴장모드’다. 하지만 기대감도 엿보인다.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도종환 더민주 의원(충북 청주흥덕‧재선)을 지명했다. 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펼쳐왔다.

지명 직후 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문화예술계는 철저히 무너졌다. 블랙리스트를 운영하며 차별과 배제, 불공정한 지원으로 예술인들에게 불이익을 줬으며, 문화생태계를 왜곡시키고 다양성을 잃게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강한 어조로 전 정부와 각을 세웠다.

도 의원은 이어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있었다”며 “무너진 조직의 쇄신을 통해 잘못된 정책과 시스템을 바로 세우고, 책임을 묻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다. 산하기관이 독립성‧자율성‧투명성을 갖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전면적인 개혁드라이브를 공언한 셈이다.

문화계 안팎에서는 도 의원의 장관 발탁 가능성을 유력하게 점쳐왔다. 도 의원이 국회 교문위에서 활동하면서 미르재단 의혹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주도적으로 나서왔기 때문이다.

도 의원은 지난해 9월 10일 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며 미르재단 설립 기금 모금 논란에 불을 지폈다. 1월 열린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는 9473건의 개인자료 관리 내용이 담긴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대외비 자료, 즉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건을 공개했다.

이 때문에 현장 문화예술계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다만 묵은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이 곁들여졌다. 한 문화예술계 인사는 “(도 의원의 장관 내정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기대감이 있다”면서도 “(자의든 타의든) 블랙리스트 사태와 직간접 연루된 관료들과 그 체제가 그대로 있는 상황인데 이를 함께 바꾸지 않으면 장관 한명만으로는 개혁이 힘들다”고 조언했다.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실국장 등 간부들이 1월 23일 정부세종청사 공용브리핑실에서 가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대국민 사과문 발표에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영화산업계는 도 의원의 장관 내정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도 의원이 지난해 10월 31일 CJ와 롯데 등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배급 겸영 규제가 골자인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 의원을 장관직에 내정하면서 규제론 목소리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도 의원 법안 발의 직후 한 영화제작업계 관계자는 기자에게 “영화 제작 과정에서 개봉에 이르기까지 배급사와 극장, 제작사 간 힘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투자배급과 상영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던 CJ는 지난해 국내 대표적 제작사 중 하나인 JK필름 지분을 인수해 자회사로 두면서 제작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도 내정자가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대기업을 향한 칼날을 실제 겨눌 지도 주목해볼 만한 대목이다.

관가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도 의원이 국회 상임위 시절부터 문체부와 산하기관 등을 향해 날선 비판을 해온 탓이다. 다만 “산하기관이 독립성‧자율성‧투명성을 갖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는 도 내정자의 공식입장에 기대감을 표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한 문화관련 기관 관계자는 “도 내정자는 국정감사 때도 매우 날카롭게 문제를 지적해온 인물이다. 당연히 (장관 내정으로) 긴장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대신 그간 지적해온 현안들을 잘 풀어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기관의 한 실무자도 “(장관이 바뀐다고) 당장 (실무라인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면서 “전임 장관들보다 더 나으리라는 기대감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도종환 내정자가이 청문회를 통과해 장관에 오르면 등단을 한 시인 출신으로는 첫 번째 문체부 장관이 된다. 앞서 현장 예술가 출신으로는 영화감독 이창동, 배우 김명곤(이상 노무현 정부), 배우 유인촌 씨(이명박 정부) 등이 장관으로 일했었다. 도 내정자는 지난해 9월에도 현역 의원 신분으로 신작 시집 《사월바다》(창비 펴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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