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가인하 논란시 책임전가 노린 편법”…해외법인 부품까지 무상 수리 요구

/ 디자이너 김태길

시사저널e가 경북 구미의 임가공 업체인 미광전자㈜ 사례를 유독 주목한 것은 원사업자(원청)와 수급사업자(하청) 간 거래 방식의 민낯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갑을관계’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컸지만, ‘갑’의 보복을 두려워한 ‘을’이 숨 죽이고 있는 특성상 은밀한 거래 방식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시사저널e는 “부당한 단가 인하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LG전자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신고한 미광전자 사례를 집중 취재하면서,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 간에 이뤄지는 계약 단계에서부터 이후 물량 공급 조절, 단가 인하, 그리고 퇴출로까지 이어지는 갑을관계의 전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 단가 조정 등 예민한 합의는 ‘실무급 미루기’?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LG전자 구미공장과 미광전자 등 협력업체들이 작성한 이른바 ‘합의서’를 쓰는 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비단 미광전자뿐만 아니라 통상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는 ‘하도급 거래 계약서’를 작성한 후 추가적으로 각종 ‘합의서’를 작성한다. LG전자 역시 하도급 계약서를 작성한 후, 형식적으로 단가 조정 협의를 하고 이에 따라 ‘임율 단가 합의서’, ‘표준시간(ST) 조정 합의서’, ‘본당 단가 합의서’ 등 각종 합의서 작성을 협력업체에 요구했다.

시사저널e가 LG전자와 미광전자 사이에서 작성된 다수 계약서와 합의서 등을 살펴본 결과, 이들 계약서와 합의서에는 공통적으로 미광전자 회사 ‘고무인’과 함께 대표이사 직인이 찍혀 있었다. 반면 LG전자 측은 계약서 작성 시에는 대표이사나 구미공장 담당 상무 등 임원급 인사가 직인을 찍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단가 관련 합의서는 팀장(부장급) 명의로 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인도 없이 해당 팀장이 사인하는 식이었다.

통상 계약서나 합의서 작성은 모두 LG전자 측이 문서로 작성해오면 협력업체 대표이사의 직인을 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합의서 작성마다 대표이사나 임원의 날인을 받기 힘들다는 식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거기다 단가 인하 결정 등을 앞두고 LG전자 측이 소집하는 협력업체 대표들과의 면담 시 LG전자 측 임원이 직접 참석해 단가 인하를 종용했다는 점이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다.

협력업체들로서는 기본 계약서 못지않게 매출과 직결되는 단가 관련 합의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대해 일부 협력업체들 사이에서는 “단가 인하 등 예민한 문제가 나중에 논란이 되면 이를 실무급 책임으로 떠넘기기 위한 방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기업 1차 협력업체로 일하고 있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기자에게 “단가 인하를 했다는 것 자체가 나중에 문제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임원이 아닌 실무선에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것이라고 업계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소속 한 변호사는 “업계에서 단가 인하라는 중요한 부분을 실무급 선에서 합의서를 작성한 것은 주목할 대목”이라면서 “대기업 차원에서 단가 인하 자체에 문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나름의 대응 논리를 만들기 위한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해외 공장서 발생한 하자까지 책임전가…“수리비 한푼 못 받아”
 

/ 디자이너 조현경
부당한 단가 인하 관행 못지않게 대기업이 하도급 협력업체들에게 수리비를 부담시키는 관행도 미광전자 사례에서 드러난다. 미광전자는 지난달 말 공정위에 LG전자를 신고하면서 “임가공 기본 계약 이외의 업무를 무상처리해줄 것을 LG전자 측이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미광전자는 LG전자와 임가공 위탁 계약에 따라 SMT(표면 실장 기술) 공정 및 기판 공정을 모두 마치고, 성능 검사 등 모든 검사를 완료한 제품에 한해 납품한다. 또 이를 LG전자 측이 검수 완료하고 그에 따라 임가공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와 미광전자가 체결한 계약 조건에 따라 미광전자가 납품한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경우 보수 의무가 있긴 하다.

하지만 미광전자에 따르면 LG전자는 해외 법인에서 유통·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하자로 반품된 부품까지 수리해 줄 것을 요구했다. 미광전자가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자신들의 책임이 없는 ‘부품불량’과 ‘부품파손’, ‘현지작업 불량’ 등을 이유로 총 4984개의 부품 수리를 맡은 것으로 돼 있다.

미광전자는 LG전자가 해외 법인에서 반품받은 부품을 수리하기 위해 수리기사 2명을 고용하고 인건비 지출을 했지만, LG전자는 별도 수리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황선도 미광전자 사장은 “우리뿐만 아니라 협력업체들이 (무상 수리) 요구를 거부했다”면서 “하지만 LG전자에 100% 의존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해외 유통과정이나 해외 법인에서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량분에 대해서도 수리를 해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도급거래 및 공정화에 관한 법률(제12조의 2)에 따르면 원사업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사업자에게 자기 또는 제3자를 위해 금전과 물품, 용역, 그 밖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도록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거래 관계를 이유로 갑이 을에게 경제적 이익을 부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금지돼 있는 것이다.

 

한편 LG전자는 미광전자의 주장과 두차례 시사저널e의 기사에 대해, 공정위에 ‘불공정하도급 거래행위’를 신고하고 조정 절차를 거치고 있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앞서 LG전자 측은 “(협력업체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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