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는 아담해도 공간의 깊이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연필의 흑심을 단단히 감싸는 나무처럼 주인의 취향과 관점을 견고하게 쌓아 올렸다. 아트 디렉터 김수랑의 문구점 ‘오벌(Oval)’을 찾았다.

햇빛이 그대로 투과되는 유리 천장은 온실 느낌을 자아낸다. 나무와 철제로 짠 선반과 탁자, 단상 등은 빈티지와 자체 제작한 것이 섞여 있다. 곳곳에 비치된 아담한 책상에서는 손님들이 앉아 직접 구매한 필기류로 편지를 쓰기도 한다. / 사진=우먼센스 이우성

“서교동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빛이 들지 않는 1층에 가게가 있었어요. 이사한다면 빛이 잘 드는 옥상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창을 곳곳에 내 유리 온실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가게 한쪽에 마련된 사무 공간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단풍 든 가을에, 눈 오는 한겨울에 분위기가 좋아요.”​

가게 입구에서 바라본 내부 모습. 이곳의 공간 구성에서 ‘창’과 ‘빛’은 중요한 요소다. / 사진=우먼센스 이우성

 

공간과 사물이 빚어내는 완벽한 합

 

‘오벌’은 문구 마니아들이 일부러 걸음 하는 곳이다. ‘Postalco’ ‘Papier Labo’ ‘Serrote’ 등 20여 개의 해외 문구 브랜드를 취급한다. 김수랑 실장이 오벌을 꾸린지는 어느덧 10년, 홍대에서 서교동으로 가게를 이전한지는 4년째다. 기존의 주택 건물을 개조해 완성한 ‘옥탑 온실’ 구조의 인테리어는 온전히 그녀가 구상했다. 철제 구조물을 만들고 창을 내는 등 공사하는 과정에서 제한 요소가 있었지만 그걸 즐기는 게 오히려 재미있었다고. 취향을 넘어 어떤 통찰력마저 느껴지는 공간의 인상 때문일까? 줄거리보다 정서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영화처럼 이곳을 지배하는 건 고유한 분위기다. 호기심은 유리 대문을 열고 가파른 회색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피어오른다. 과연 저 위에 어떤 공간이 펼쳐질까?​

 

본래 쓰임새보다는 다양한 사물을 함께 비치하기 위한 집기로 활용하는 이젤.가게 오픈 초기에 만든 팔레트 형태의 분리형 테이블 상판은 하부 구조물을 유동적으로 바꿀 수 있어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기 좋다. 이젤 아래 원목 구슬 모양 아이템은 블레스(BLESS)의 멀티 어댑터. 2005년 시즌 ‘N°26 Cable Jewellery’ 시리즈 중 하나다. 뒤편에 보이는 마당은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꼭 들러보는 공간./ 사진=우먼센스 이우성

 

마침내 가게 안에 들어서면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과 마주하게 되는데,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은 문구류와 소

품, 집기들이 그 볕을 머금고 근사한 그림을 이룬다. 가게 끝자락에는 옥상 마당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문이 등장한다. 시야를 가리지 않는 커다란 유리문이다. 벽, 창, 문을 통해 반복적으로 열리고 닫히는 공간의 흐름은 이곳을 한층 매력적으로 만든다. 특별할 것 없는 에어컨조차 원목 박스를 제작해 입혀 주변과 어우러지게 한 주인장의 감각에는 감탄하게 된다.

 

1950~60년대에 집중적으로 생산된 다양한 무늬의 포마이카 (Formica) 플랜트 테이블. 유리 상판을 받쳐 탁자로 쓰거나, 식물 대신 다른 소품을 놓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사진=우먼센스 이우성

 

 

 

오벌은 자신이 쓰고 싶은 물건을 관심 있게 찾고,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쇼핑’이 ‘공간 체험’과 공명해 더 풍성해질 수 있음을, 자신만의 깊이 있는 공간을 꾸리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훌륭한 레퍼런스가 돼줄 듯하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