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갑을관계의 민낯]② “단가 안 깎아? ○○로 물량 간다”
  • 이승욱 기자(gun@sisajournal-e.com)
  • 승인 2017.05.2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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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단가 인하 때 ‘물량 빼기’ 으름장…협력업체, 울며 겨자 먹기로 단가 조정 수용

/ 조현경 디자이너

‘갑을(甲乙)관계’의 핵심은 ‘의존성’이다. 한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나 제공한 용역의 단가를 누가 정하는 것이, 그리고 그 물량은 누가 결정해 내려주는냐는 것이 갑과 을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갑은 이 의존성에 기대 불공정한 반사 이익을 누린다. 납품단가 결정과 생산 물량이 갑에게 쥐어진 을의 목숨줄인 셈이다.

우선 단가 결정 과정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다. 이는 실태 조사에서 나타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월 발표한 ‘2016 중소제조업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중소제조업체 47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소기업 중 17.1%가 가장 빈번하게 경험한 하도급법상 위반행위를 ‘부당한 대금(단가) 결정’이라고 꼽았다.

또 하도급대금 조정이 원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정을 요구해도 ‘조정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요구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46.1%로 가장 많았다. ‘원사업자의 조정거부’나 ‘원사업자의 시간끌기’ 등을 이유로 답한 응답도 각각 31.4%, 22.5%를 차지했다.

◇단가 인하 보다 더 무서운 ‘물량 빼기’의 공포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 중소 하청기업이 원청 대기업에게 부당한 단가 인하를 요구받아도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갑이 쥔 또 하나의 무기 때문이다. 원청이 물량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LG전자의 1차 협력업체로 운영되다, 지난 1월 단가 인하 압박에 못 이겨 결국 LG전자와 거래 관계를 끊은 경북 구미 소재 미광전자(주)도 소위 ‘물량 빼기’의 공포 때문에 단가 인하를 수용했다고 한다.

2014년 1월 LG전자 구미공장은 미광전자와 1차 협력업체 대표들을 불러 SMT(표면 실장 기술) 공정의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결국 LG전자와 협력업체 회동 한달여 뒤인 같은 해 3월부터 SMT 칩(Chip) 당 단가는 종전과 비교해 약 15% 깎였다.

SMT는 인쇄회로기판(PCB) 위에 칩과 핀(Pin) 등 각종 부품을 결합하는 공정이다. SMT 공정 임가공비는 칩과 핀 당 책정된 단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15%나 칩 당 단가가 내려가면 매출액 감소는 불보듯 빤한 상황이 된다.

하지만 미광전자과 협력업체들은 15% 칩 당 단가 인하라는 LG전자의 요구를 수용해야 했다. LG전자 측이 협력업체 대표들과의 만남에서 ‘해외로 물량 이전’ 가능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e는 2014년 1월 당시 LG전자 구미공장 관계자와 협력업체 대표들 간 대화 녹취록을 입수했다. 당시 모임에 참석한 LG전자 구미공장 관계자들은 인도네시아 등 해외 생산기지로, 물량이 이전될 가능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이어질 협력업체 피해에 대해 언급했다. 다음은 당시 구미공장 관계자들의 대화 중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단가 인하 때마다 ‘물량 이전’ 언급한 LG전자​​

LG전자 A부장 : “베트남, 이집트… 그러면 만약 그 물량들이 이제는 한국에 있을 필요가 없다. ‘내보내야 된다’라고 (본사 차원에서) 명분이 서 버리면 그나마 한국에서 생산하는 세트 생산물량이 다 뺏기다 보면….”
LG전자 B상무 : “(구미 생산 물량이) 확 무너져요.”
A부장 : “이 완전 공동화 현상이 생긴다고요.”
B상무 : “빵꾸, 빵꾸가 나면 깨 구멍난 것처럼 와르르….”

LG전자 구미공장 측이 단가 인하 결정을 앞두고 미광전자 등 협력업체를 상대로 ‘물량 이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당시뿐만이 아니었다.

LG전자 구미공장은 2014년 3월 칩 단가 인하 이후, 약 6개월 뒤인 같은해 9월 다시 협력업체 대표들을 불렀다. 칩 단가에 이어 핀 단가 인하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LG전자 측이 단가 인하 요구의 논리로 내세운 것도 물량 이전 가능성이었다.

이번에는 국내 타 지역으로 이전 가능성을 LG전자 측이 언급한 것이다. LG전자 측이 SMT 단가를 인하하지 않을 경우 구미 협력업체들이 담당하던 TV 물량을 최근 완공된 평택공장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LG전자 A부장 : “지금도 평택 올라가면요...뭐라는 줄 아십니까? ‘구미 언제 올라오냐?’는 이야기를 해요. 왜? 그 정문 평택공장 가서 보면 정문 왼쪽에 있는 건물이 이제 다 들어섰거든요. 완공 다 돼가지고 입주 다 했습니다.”

미광전자 측에 따르면, 당시 LG전자가 평택공장을 완공한 후 상대적으로 생산 단가가 높은 구미지역 물량을 옮겨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내부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물량 빼기’ 언급은 2014년 당시 SMT 단가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지난 2007년 무렵 LG전자 측이 임가공 임율 인하 단가를 요구할 당시에도, 중국으로 물량 이전 가능성을 LG전자 측이 강조한 바 있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생각만큼 수익 안돼 이전 없던 일로”…‘물량 빼기는 단순 압박용’ 의혹​

물론 기업 논리상 생산 단가가 낮은 곳으로 물량의 이전을 무조건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갑이 지닌 두가지 무기 중 하나인 ‘물량 빼기’가 기존 협력업체와의 단가 인하 협상 과정에서 단순 압박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4년 1월 단가 인하를 요구하던 LG전자 측이 한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LG전자 A부장는 본사에서 생산 물량 이전을 요구를 하더라도 구미공장 차원에서라도 방어를 하겠다는 논리로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 2007년 무렵의 이야기를 꺼냈다. 2007년 당시는 LG전자가 미광전자 등 1차 협력업체들에게 TV 부품 생산 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할 수 있다면서 수작업 공정 단가(임율) 인하를 요구할 때였다.

당시 대화 녹취록에 따르면, A부장은 “2007년에 6개월 정도 테스크포스팀이 중국 이전 가능성을 검토했다”면서 “하지만 (애초) 7~800억원 정도 (중국 이전으로) 남길 수 있다고 했지만, 검토 결과 (예상 수익이) 10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다시 검토를 하자고 해서 (중국 이전 계획은)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2007년 임율 단가 인하 요구 당시 LG전자가 중국 현지로 임가공 물량을 이동하기 위해 내부 검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이전으로 인한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아 물량 이동을 백지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LG전자는 2007년 6월과 2008년 1월 1차 협력업체로부터 두차례나 임율 단가 인하(약 20%) 결정을 받아냈고, 단가 인하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협력업체 몫으로 돌아갔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미광전자가 지난 4월 말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를 신고하고 조정절차를 거치고 있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협력업체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만 밝혔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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