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의존하는 개혁은 지속되기 어려워…과거 정부가 'e知園' 만든 정신 되새길때

참여정부시절 청와대 업무혁신비서관을 지낸 강태영 연세대 산학협력단 연구교수가 자신의 업무경험을 정리한 ‘이지원(e知園)-대통령의 일하는 방식’이라는 책을 냈다. 역시 참여정부에서 혁신 업무를 맡았던 민기영 전 비서관(씨플랫폼서비스 대표)과 함께 저술한 이 책에는 이지원의 탄생 배경과 철학, 얼개와 실제 운영 사례가 소상히 담겼다.

이지원은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활용한 업무관리 시스템이다. 자료의 축적과 공유체계를 확립해서 불투명한 보고체계를 정비하고 과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자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이를 통해 국정과제를 언제든지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시스템 개발과정에 발명자로 직접 참여했다. 그는 이지원이 통합된 업무관리시스템으로서 청와대뿐아니라 공직사회 전반에 걸쳐 일하는 방식으로 정착돼야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부가 구현될 수 있다는 철학을 자주 강조했다고 한다. 정부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시스템을 통해 자신이 하는 일을 드러나도록 만들어야 권위주의 문화를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지나간 정권의 업무관리 시스템에 새삼 눈길이 가는 것은 이 시스템이 참여정부 이후에도 국정운영의 기본 인프라로서 정착되고 활용됐더라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최씨의 막후 영향력에 청와대와 정부 고위 인사들이 가담해 추진됐던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이 투명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면 아예 처음부터 이런 일을 도모할 엄두를 내지 않았을 지 모른다. 세월호 7시간동안 대통령의 행적도 시비할 여지조차 없이 시간별로 속속들이 드러났을 것이다.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한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한 역할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 뻔한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이런 초법적인 일에 맨 정신이라면 과연 누가 가담했을까 싶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박근혜 전대통령도 임기중 파면되고 구속돼 피의자로서 법정을 들락거리는 헌정사상 초유의 불행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청와대 업무 인수 인계를 둘러싼 어처구니없는 논란도 제기될 여지가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후 업무 인수에 나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정부의 업무를 인수하려다보니 청와대 온라인 인수인계 시스템에 유의미한 자료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공식적으로 받은 문서는 업무 현황이라는 7∼8쪽짜리 업무문서뿐이었다고 하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청와대 업무 자료가 대통령이나 그 보좌진의 사유물이 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알법한 일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기록을 남기고 당대는 물론 후손들과도 공유돼야 할 소중한 국가의 자산이다. 

 

좋은 정책은 더욱 발전시켜 계승하고 잘못된 정책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보전돼 그 경험이 온전히 전해져야 마땅하다. 그런 자료가 사라지고 후임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국가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만사 이렇게 엉망이니 국민들 사이에서 “이게 나라냐”는 한탄이 나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정곡을 찌르는 인사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장에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발탁해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하고 예비역 장성으로 보임돼던 국가보훈처장에 여성 첫 헬기 조종사로 유명한 피우진 예비역 중령을 임명한 것도 국민의 박수를 받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에 조국 서울법대 교수를 임명하고 서울중앙지검장에 박근혜 정부에서 소신 수사를 벌이다 한직으로 밀려났던 윤석열 검사를 기용한 것도 검찰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의 측근이 도맡아온 대표적인 문고리 권력인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비고시 출신인 기획재정부 이정도 국장을 임명한 것도 파격이다. 문 대통령의 뜻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이 비서관은 얼마전 "대통령 공식행사를 제외한 가족식사비용과 사적비품 등 비용에 대한 예산지원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문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첫주 81.6%에 이어 둘째주 84.1%로 더 상승해 과거 정권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보인데는 이런 인선이 한 몫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선때 문 대통령의 득표율이 41.1%였으니 그에게 표를 준 것보다 2배나 많은 국민들이 문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새 정부들어 국정 운영이 빠르게 정상을 찾아가는 모습에 반가움을 느끼면서도 한편 이런 좋은 흐름이 계속 이어질지 위태로운 마음을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항상 최선의 인물이 자리를 맡게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최선이 아닌 사람이라도 자리가 요구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최순실 같은 독버섯은 도저히 숨어 있을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연줄만으로 자리를 꿰찬 사람들도 실력이 그대로 노출될 테니 엉뚱한 짓 하는 사람들은 버티기 힘들어질 것이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것이 아닌 양화가 악화를 내쫒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치(人治)보다는 시스템이 일하게 하는 것은 개혁이 반짝 구호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하도록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강교수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이 공직사회가 변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 이지원의 핵심내용을 정리한 책을 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최우선순위로 강조하는 일자리 창출도 그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때 이번 정권에서만 끝낼 정책이 아니다.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밀한 기획과 검토를 거쳐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해 그 경험이 다음 정권으로 온전히 이어지고 다듬어져야 한다. 이지원이라는 인프라가 그것에 도움이 된다면 외면할 이유가 없다.

이미 지나간 정권의 흘러간 업무방식이라고 치부해선 안된다. 창고에만 묵혀 두지 말고 다시 되살려 국정운영의 인프라로 활용할 가치가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 사이 변화된 기술과 새로운 시대 정신을 담아 수정·개선하고 보완하는 일은 새 정부의 몫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