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갑을관계의 민낯]① 'LG전자 20년 지기' 중소기업이 문 닫는 사연
  • 이승욱 기자(gun@sisajournal-e.com)
  • 승인 2017.05.2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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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소재 협력업체 “35% 단가 후려치기에 못 살겠다”…공정위에 불공정거래 신고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갑을(甲乙)관계의 민낯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을이 갑의 횡포를 터놓고 말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얼마전 한 중소기업이 LG전자를 공정위에 신고한 사례를 포착했다. 시사저널e는 양사 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관행으로만 치부되는 갑을관계의 민낯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갑을관계 논란의 근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편집자주] 
국내 최대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경북 구미시에 있는 미광전자㈜. 지난 1996년 대구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 2009년 5월 구미공단에 새 둥지를 틀었다. 미광전자는 구미공단에 있는 여느 중소기업처럼 LG전자의 ‘1차 협력업체’다. 

미광전자는 설립 후 LG전자와 지난 20년 간 거래관계를 유지해왔다. 2016년 기준 매출액 67억원, 종업원 수 150명 규모인 이 회사는 LG전자에서 생산하는 TV 부품을 위탁받아 처리하는 임가공 하도급업체다. 매출액 거의 대부분은 LG전자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미광전자는 설립 후 5년 만인 지난 2001년 LG전자 대표이사에게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지난 20년 간 미광전자와 LG전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지난 4월 말 미광전자는 ‘불공정 하도급 거래했다’는 이유로 LG전자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신고했다. 


황선도 미광전자 사장은 “그동안 LG전자 측에 부당한 단가 인하 요구에 대해 보상하도록 요구해왔지만 LG전자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LG전자 본사 앞에서 시위도 벌였지만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LG전자와 거래 관계를 끊었고 사업을 접겠다는 마음으로 공정위에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100% 매출을 의존해온 대기업을 상대로 회사 문을 닫으면서까지 원청 대기업을 고발한 사연은 무엇일까. 


시사저널e 취재결과에 따르면, 미광전자 측이 LG전자를 공정위에 신고한 가장 큰 이유는 ‘부당한 단가 인하 요구에 따른 피해’다. 미광전자 측은 LG전자가 지난 10여년 간 단가 인하를 요구해왔고 이로 인해 경영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미광전자는 TV 완성품을 생산하는 LG전자 구미공장이 원자재나 부자재를 주면 완성품으로 제작해 LG전자에 납품해왔다. 임가공 작업 과정에 필요한 생산 장비와 설비는 미광전자가 투자하는 구조였다. 

 

7개월 새 20%가량 단가 인하…피해는 고스란히 협력업체로

 

미광전자는 LG전자 측의 ‘부당한’ 단가 인하 요구가 지난 2007년 6월 무렵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LG전자 구미공장 측은 미광전자와 다른 임가공업체 등에 ‘임율’을 기존보다 인하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임율은 수작업 공정에 대한 임가공 단가를 결정하는 요소로, 임율에 LG전자가 정하는 ST(Standard Time)을 곱해 원수급자인 LG전자가 임가공용역 대가를 지급한다. 임가공 용역 대가가 매출의 전부인 미광전자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하지만 LG전자 측의 요구대로 임율을 기존보다 10.16% 낮은 단가 인하가 결정됐다. 


하지만 임율 인하 요구는 당시뿐만 아니었다. 처음 임율 인하가 있은 지 불과 6개월 만인 2007년 12월 무렵 LG전자는 임율을 다시 더 내리자고 했다고 한다. 결국 기존 단가 대비 19.79% 더 임율은 내려갔다. 


미광전자의 처음 우려대로 임율 인하는 매출 악화로 이어졌다. 불과 7개월 새 두차례 임율 단가가 20%가량이나 줄어들면서 미광전자의 경영상황은 악화됐다. 실제 임율 인하가 있었던 2008년 회계연도 미광전자의 재무제표에 따르면, 미광전자의 영업 손실은 1억8000여 만원에 달했다. 임가공업체로서 비용의 80%가 노무비로 지급되는 임가공 단가 인하는 매출액 감소로 밖에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미광전자 측은 당시 LG전자 측이 ‘단가 인하를 하지 않을 경우 물량을 중국 남경으로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LG전자에 매출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LG전자의 단가 인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LG전자는 2008년 6월에 이어 2009년 9월, 두차례 임율을 인상했지만, 그 사이 인하된 단가는 고스란히 협력업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실제 당시 단가 인하로 인해 미광전자와 같은 임가공 하청업체 2곳이 폐업하기도 했다. 

 

수공업 단가 인하 이어 SMT 단가까지 연이어 인하 요구 


그런데 단순 수작업에 대한 임율 인하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수작업 외에 공정 과정에 대해서도 LG전자 측이 단가 인하를 요구해오면서 1차 협력업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미광전자는 단순 수작업 공정 이외에도 SMT(표면 실장 기술) 공정 작업을 맡았다. SMT는 인쇄회로기판(PCB) 위에 각종 칩(Chip)과 핀(Pin) 등 각종 부품을 결합하는 공정이다. 


미광전자는 2010년 8월부터 LG전자에게 물량을 받아 SMT 공정을 해왔다. 이어 지난 2014년 1월 LG전자 측이 미광전자를 비롯한 임가공업체 대표를 소집해 칩 단가 인하를 요구했고, 결국 2014년 3월 칩 단가를 기존 단가에 비해 약 15% 인하했다. 

 

칩 단가 인하가 시작된 2014년 3월 한달 기준만으로도 미광전자의 매출은 기존보다 4900만원이 줄어든 셈이 됐다. 황선도 미광전자 사장은 “단가 인하 이전 때와 같은 설비를 이용해 동일한 공정을 했는데 동일한 금액의 고정비용이 지출되는 상황이 반복되니 회사 운영은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더욱이 LG전자 측은 칩 단가 인하 6개월 만에 핀 단가까지 깎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칩 단가 인하에 이어 2014년 9월 핀 단가는 기존에 비해 35.59%나 인하됐다. 앞서 칩 단가 인하로 인해 매출액이 감소한 상황에서 핀 단가 인하가 이어지자 매출액 감소는 더욱 컸다. 2014년 10월 한달 기준 미광전자가 핀 단가 이하 결정으로 추가로 발생한 영업 손실은 7350만원에 이른다는 게 미광전자 측의 계산이다. 


그렇다면 미광전자는 경영악화로 이어질 것이 불보듯 빤한 단가 인하에 합의했던 것일까.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4조(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 금지)에 따르면 원사업자(원청)는 수급사업자(하청)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류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해 하도급 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에 의해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도 금지돼 있다. 

 

/ 디자이너 조현경
“임가공 하청, 부당한 요구에 취약”…LG전자, “일방적인 주장일 뿐”


법적으로는 수급사업자가 동의하지 않은 이상 일방적인 단가 조정이 될 수 없는 셈이다. 하지만 취재 중 기자가 접촉한 한 대기업 협력업체 사장의 이야기는 달랐다. 구미지역에서 임가공업체를 운영 중인 A 사장은 “대기업 입장에서는 단가 인하를 협의나 합의을 거쳐서 했다고 하겠지만 우리들 입장에서 억압해 빼앗아가는 것일 뿐”이라면서 “합의를 안 해주면 물량을 뺄 수밖에 없다고 하고, 사업 더 잘되게 해줄 게 말하는데 합의를 어찌 안 해줄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사업을 해야 처지니깐 말을 못한 것이지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등 원수급자(원청)에 매출 의존도가 높은 임가공 수급사업자(하청)가 단가 인하 요구를 거부하기 더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만약 하청업체가 다른 원청업체와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면, 원청업체가 무리한 단가 인하를 요구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단가 인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임가공 하청업체처럼 원청업체의 전속성이 높거나 매출 의존도가 높으면 거래를 지속할 수밖에 없어 부당한 요구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미광전자가 공정위에 신고건은 공정위를 통해 한국공정거래조정원 하도급분쟁조정협의을 통해 조정절차를 거치고 있다. 미광전자 측은 공정위에 ‘부당한 하도급 단가 인하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면서 46억원가량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다. 


황선도 미광전자 사장은 “대한민국 대표 대기업인 LG전자와 20년 간 거래해 오는 과정에서 LG전자가 말하는 정도경영과 동반성장을 믿었고 투자도 했다”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지하고 무모했다는 자책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회사를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부당한 부분은 배상을 받아 지금까지 나를 도와준 회사 임직원들에게 보상해주고 싶을 뿐”이라면서 “미광전자처럼 여전히 불합리한 단가로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나머지 협력사들은 더 이상 이런 일을 겪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사저널e는 미광전자 측의 주장과 공정위 신고 등에 대해 LG전자 측의 입장을 듣고자 했다. 하지만 LG전자는 공정위 신고 접수와 지금 조정절차를 밟고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사실관계 여부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LG전자 관계자는 “조정절차를 거치면서 사실관계 등이 드러날 것”이라면서 미광전자 측 주장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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