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재분재 정책만으로는 한계…좀 더 넓은 시각과 큰 틀로 정책 짜야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운동을 해온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를 정책실장으로 기용했다. 새 정부 경제정책의 큰 방향을 정했다고도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장 실장을 소개하면서 “경제·사회 정책을 변화시켜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 성장, 국민성장을 함께 추진할 최고의 적임자”라고 했다. 분배와 중소기업 위상 강화가 이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이 된다는 얘기다.
 

특히 장 실장에 대한 소개에서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을 지속적으로 연구한 경제학 석학이자 실천 운동가”라고 밝힌 부분도 주목할 대목이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 이를 통한 경제민주화가 새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이자 원대한 목표라고 강조한 셈이다. 다만 분배라는 목표를 어떤 경로를 통해 달성할 것인가가 과제이자 주목할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분배구조 개선은 시대적 과제

사실 분배구조 개선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꼭 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의 자본’으로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것 역시 분배문제가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며, 분배구조가 심각한 상태로 왜곡된 한국 역시 거기서 예외는 아니다.


지니계수나 5분위 또는 10분위 분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어느 지표를 가지고 들여다봐도 한국 분배구조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는 2013년 0.336에서 2014년과 2015년 0.341로 나빠졌다. 지니계수는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분배구조가 왜곡됐음을 나타낸다. 소득수준이 빈곤선을 밑도는 가구의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적 빈곤율 역시 2013년 17.8%에서 14년 17.9%, 15년 18.6%로 높아졌다.
 

특히 그 동안은 하위계층의 소득이 늘더라도 상위계층의 소득이 더 빨리 올라가서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했으나 최근엔 상위층 소득은 올라가는데, 하위층 소득은 오히려 떨어져 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추세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하위 20%를 뜻하는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4만7000원으로 전년 대비 5.6% 줄어든 반면에 상위 20%인 소득 5분위의 소득은 834만 8000원으로 2.1% 증가했다.

◇근시안적 대응은 문제 악화 소지


문제는 확인됐고 그 격차를 어떻게 축소할 것인가가 남은 숙제다.


이제까지 정부는 저소득층에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분배 문제를 풀려고 했다. 재정 주도의 재분배를 통해 빈곤층의 생계를 도와준 셈이다.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분배가 악화된 걸로 나오지만 처분가능소득으로 본 지니계수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는 것도 그래서다. 고소득층의 소득을 떼어 저소득층을 돕는 정책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이 정책이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은 소득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은퇴연령이 하위계층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세대는 일자리를 제대로 얻지 못할 뿐 아니라 그나마 잡은 일자리마저 대부분 저임의 일용직이라서 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걸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없다. 정부 정책에도 불구하고 분배상태가 개선되지 않은 게 그 증거다.
 

그런 면에서 새 정부는 재정 주도의 재분배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을 찾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는 소득분배가 아닌 부의 재분배 정책을 도입한 적이 있었다. 바로 종합부동산세다. 그러나 종부세는 이후 대상에 따라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는 등 문제가 있는 세제라는 게 드러났다. 또 부동산 값을 잡겠다는 정책들은 오히려 부동산 거품을 일으키는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시스템 틀 다시 짜야

이처럼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정책들은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부정적 효과만 낼 수도 있다. 그 보다는 분배만이 아닌 좀 더 폭 넓은 시각에서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분배구조 왜곡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진 것이고, 경제체제 자체가 소득과 부의 분배를 공정하지 못한 쪽으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수출을 늘리기 위한 고환율정책이 수출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이익과 성장의 괴리를 키웠고, 대기업종사자와 여타 국민들의 삶의 질 사이에 커다란 간극을 만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출대기업들이 고환율로 늘어난 이익으로 연봉수준의 보너스를 챙길 때, 일반 서민들은 라면값 자장면값 치솟는 고통을 떠안아야 했다.
 

은퇴만 하면 즉시 최하위 계층으로 전락하는 사회구조도 바꿔야 한다. 임금을 올리는 구조가 아니라 나이 먹은 사람들도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고임구조를 주도해온 거대노조를 깨서라도 성사시켜야만 하는 숙제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국사회의 분배구조 왜곡은 단기간에 나타난 게 아니고 장기간에 걸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 주머니에서 꺼내 저 주머니에 넣어주는 단기적 대책으론 한계가 있다. 시스템 전체를 다시 짜는 개혁이 필요한 것도 그래서다. 다만 그런 시도가 시스템 전체를 죽이거나, 밥그릇 자체를 깨는 게 되어선 안 된다는 점 또한 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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