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위기극복 토론회…"대기업 규모 경제·특화된 중기와 조화시켜야"

조선업 불황으로 국내 조선산업계가 위기를 겪고 있다. 사진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 / 사진=뉴스1
조선업 불황으로 구조조정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조선산업계가 규모의 경제를 내세우는 대기업 중심 체제를 유지하는 것 못지않게, 중소 조선업체 육성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면서도 건강한 산업 체질로 변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9일 오후 울산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소속 김종훈(무소속·울산 동구) 의원과 울산상공회의소가 공동 주최하는 ‘조선산업 위기극복과 일자리 창출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발표자들은 지금의 대기업 중심 조선업 체제에서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발제자로 나선 한순흥 KAIST 해양시스템 대학원 교수는 한국보다 앞서 조선업 불황을 겪었던 일본 조선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을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한 교수는 “일본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에서 참고할 부분은 조선전업 중소기업의 부활”이라면서 “1988년 2차 구조조정 이후 더 물락했을 것으로 예상됐던 일본에서 조선해양 전업기업의 활약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대로, 2015년 기준 일본 조선업계의 선박 건조량은 대기업이 아닌 이마바리조선, 오시마조선소, 나무라조선소 등 중소 규모 조선업체들이 상위 순위를 다투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일본의 조선산업은 대기업 집단이 아닌 조선전업 기업들이 연합 체제를 이루고 있다”면서 “한국의 경우 정부 지원금이 주로 대형 조선사에 집중돼 있는데 중소 규모 조선소들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유럽은 대형 조선산업이 1980년대에 거의 사라졌지만, 특수선을 건조하는 중소 조선소와 크루즈선 분야 등과 함께 선박해양을 위한 고급 기자재산업 등 산업의 적용 범위를 넓혀 여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한국도 조선해양 산업의 범위를 해운항만이나 해외자원개발, 선박해양플랜트의 유지보수 시장, 조선기자재산업 등을 포함해 보다 종합적인 육성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미경 단국대 교수 “중소 조선업체가 협업 필요성”

 

토론자로 나선 정미경 단국대 교수도 한 교수와 유사한 논리를 폈다. 정 교수는 “1990년대 한국과 일본 등 조선업 신흥국들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은 기업인수 합병을 통해 기업의 규모를 키우고 집중성을 높여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지만 단 2개의 대형조선소만 살아남았다”면서 “나머지 생존기업은 대부분 중간 규모로 유연화와 특화, 협력으로 경쟁력을 추구하는 전략을 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사의 규모를 축소하고 자본을 분산을 하는 대신 (중소 조선업체들이) 공동건조, 공동구매, 설계네트워크화로 전략적 제휴를 강화했다”면서 “중소기업간 효율적인 팀워크가 형성된다면 중소기업의 유연성과 대기업의 규모 경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강한 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4차산업혁명의 도래가 조선산업에 불러올 변화에 대한 예측도 발표됐다. 

 

이진태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교수는 4차산업 혁명을 위기를 맞은 조선해양업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4차산업을 활용하는 조선 분야로 ‘Smart Ship’, ‘Smart Ship-Service’, ‘Smart Ship-Building’ 등의 개념을 꼽았다. 이 교수에 따르면, Smart Ship은 선박의 중요한 부분에 다수의 센서를 설치하고 선박네트워크를 통해 최적의 선박 운항과 관리·보수를 할 수 있도록 건조된 선박을 말한다. 

 

Smart Ship-Service는 선박 운항 및 선박관리를 지능화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과정, Smart Ship-Building은 모든 선박 설계와 생산 프로세스틀 통합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화해 선박 건조를 효율화해 조선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선박은 주문에 의해 생산되는 제품인데 다양한 선주의 요구에 맞춰 매번 새롭게 건조되는 것”이라면서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적용한 조선산업 4.0 시스템 개발을 하고 선주의 요구에 맞춘 제품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생산한다면 조선산업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순흥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빅데이터 구축과 활용으로 국내 조선업계가 수요공급의 예측 가능성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급 측면의 빅데이터는 세계 1위의 조선해양 기업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고, 수요 측면의 빅데이터도 세계 7위에 달하는 에너지와 자원 수입액도 세계적인 규모라 그에 걸맞는 통계자료의 확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 조선산업 부흥에 대한 전략적인 방향 전환을 촉구하고, 조선업계 구조조정이 자칫 관련 업계의 일자리 축소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도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토론자로 나선 김종훈 의원은 “조선해양산업은 단위 기업 투자 규모가 크고 자본회전 기간도 길어서 리스크가 높아 공적 금융의 역할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면서 “조선 산업이 위기 국면에서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은 시장원리에 맡긴다는 것이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산업이 숨 쉴 공간을 틀어막아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의원은 조선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노무 관행 척결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은 고용구조의 선진화라는 핵심 과제를 빠트리고 있다”면서 “지금의 저가 수주, 저비용, 저임금, 간접고용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수정하고 고품질, 고부가가치 생산전략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미경 교수는 독일의 조선업 불황 극복 사례를 거론하면서 일자리 축소 없는 조선산업의 부활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조선산업의 위기를 겪으면서 실패한 독일의 조선업체는 규모의 경쟁력을 갖추고 인건비 경쟁력을 갖추려고 한 경우”라면서 “일자리를 축소하는 것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조선업 위기를 극복한 사례는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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