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야할 사안과 신중해야할 사안 구분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열흘 지났다. 열흘 만에 일어난 일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한민국이 일변했다. 출발 신호와 함께 폭발적으로 튀어나가는 100m 달리기 스프린트처럼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취임하자마자 국정 주요 과제를 놀라운 속도로 일사불란하게 처리하고 있다.

우선 제왕적 대통령이 가진 권위를 테이크아웃 커피와 아이스크림으로 없애버렸다. 4강 외교를 복원하고 청와대 핵심 인사를 인선하고 총리 후보를 지명했다. 일자리위원회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등 차기 정부 조직구성도 서두르고 있다. 그 와중에 인천공항공사를 전격 방문해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정규직화를 약속하는가 하면 5·18 기념식에 참석해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잘하고 있다. 국민 80%가량이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방식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사는 한 지인은 “요즘 한국 상황을 보면 한때 망해가던 애플에 스티브 잡스가 대표이사로 돌아와 회생의 기초를 마련할 때를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정 우선 순위를 정하라고 고언하고자 한다. 지금 서둘러 처리해야할 사안과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안건이 뒤죽박죽 섞여서 아침 저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내세운 모든 공약을 한달만에 한꺼번에 다 해치울 기세다.

북한 핵실험과 미국 선제타격론 등이 끌어올린 한반도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4강 외교를 서둘러 복원한 것은 찬사를 보내도 아깝지 않다. 4강 특사 외교는 코리아 패싱 우려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5·18 민주항쟁 유가족에 대한 위로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북학 미사일실험에 대한 경고도 적절한 수위를 지켰다. 취임과 동시에 야당부터 방문해 협치를 모색한 것도 정치적으로 기민했다. 하지만 경제 현안까지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해선 안된다. 경제 정책만큼은 서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

 

경제 분야 국정과제는 옳고 그름를 가르는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고 목표적합성이나 실현가능성 등 정책 효과를 고려해야할 사안이 대다수다. 이에 갖가지 변수를 감안해 정책 효과는 극대화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은 줄일 방안을 마련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일자리 창출 위한 추가경정예산 조기 편성,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금융사 대주주 자격조건 강화 등 개별 경제정책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고 있어 혼란스럽니다.

이에 경제정책만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예산 조달방안, 이해단체 반발, 입법과정에서 야당의 협조 유도 등 갖가지 세부 전략을 아주 세밀하게 짜야 한다. 필자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성장, 비정규직의 점진적 축소, 재벌개혁, 생계형 영세상인 보호, 중소벤처기업 활성화로 제4차산업혁명 주도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을 지지한다. 다만 너무 서두르다 예상치 않는 걸림돌이나 반발에 부딪혀 핵심 정책들이 무산될까 조마조마하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을 이원화했으면 한다. 정치·안보·사회 등 이슈는 지금처럼 속도감있게 처리하되 경제 분야 정책과제만큼은 한숨 고르고 한발 늦게 추진했으면 한다. 아직 경제정책을 입안할 정책실장이나 경제비서관, 경제정책을 집행할 경제부총리도 인선하지 않았다. 핵심 진용이 갖춰지고 충분히 논의한 뒤 밀어부쳐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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