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수직계열화, 혁신경제에 취약해”

16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박상인 서울대 교수. / 사진=시사저널e
(박상인 서울대 교수 인터뷰에 이어)

 

수직계열화가 빠른 제조공정에는 유리하지만 가치사슬고리마다 혁신이 발생하는 걸 막는다는 돈 탭스콧(Don Tapscott)의 주장을 두 책(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 왜 지금 재벌개혁인가)에서 인용했다. 탭스콧은 이 문제 때문에 글로벌 IT기업 중 삼성전자의 미래가 가장 어둡다고 주장했는데, 가격경쟁력과 기술혁신을 위해 삼성전자도 제조마케팅R&D 모두 아웃소싱 해야 한다고 보나?

 

물론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모든 공정을 다 처리했다. 그 과실도 많이 가져갔다. 그런데 혁신형 경제에서 과연 생존 가능한 전략일까? 삼성전자의 생존가능성 때문에 부품공급체계를 이렇게 수직계열화로 가져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플러스알파 요인 때문인지 의문이다. 그 플러스알파 요인은 재벌총수일가가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총수의 사익추구라는 플러스알파 요인 때문에 삼성전자의 장기적 생존가능성이 되레 낮아지고 있는 구조가 아닌가라고 문제제기 하는 거다.

 

삼성전자가 탈수직계열화해야 기술관련 중견, 중소기업이 이른바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나?

 

당연히 그렇다. 일감몰아주기가 횡행하니 중견, 중소기업들이 좋은 사업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내부거래, 전속거래가 혁신에 불리하다는 것은 미국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1960년대까지 미국 자동차산업에서 3사가 카르텔을 형성했었다. 부품업체들과도 모두 전속계약을 체결해 이 시장에서도 경쟁이 없었다. 그러다 일본 업체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부품을 현지조달하면서 전속계약이 깨졌다. 부품산업에 경쟁이 일어나 품질이 좋아졌다. 이게 다시 미국 완성차를 살렸다. 미국 시카고대학 비즈니스스쿨 교수들이 쓴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라는 책에 나오는 사례다

 

부품산업에 경쟁이 없으면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1980년대 이후 일본, 독일의 제조업 최종부문은 가격경쟁력을 위해 해외로 나갔다. 일본, 독일 국내는 부품소재 중에서도 고부가 가치 위주로 산업이 재편됐다. 산업구조 고도화다. 그런데 한국은 이 고도화가 단절됐다. 재벌체제 때문이다. 해외에 이미 많은 산업진화 사례가 있다. 그런데 왜 우리만 다른 길을 가나. 결국 총수의 사익을 추구하는 구조 탓이고 이제 한계에 왔다.

 

결국 재벌체제와 이에 따른 수직계열화가 한국경제 내에서 중견,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말인가?

 

사업기회가 있어도 기술탈취가 만연하고 약자의 재산권이 보호받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 구조에서는 기술력보다 가격경쟁력에 매달리는 중견, 중소기업 위주로 하청구조가 짜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재벌 대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단가 후려치기를 하게 된다. 또 이렇게 되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날 수 밖에 없다

 

일본, 독일은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 임금의 70~80%에 달한다. 한국은 50%가 안 된다. 생산력이 높고 기술력이 있는 중견, 중소기업이 많으면 임금이 늘어나고 (대기업과의) 협상력도 커진다. 정상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그러면 이익공유가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일자리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 제조업은 최종재 중심의 중화학공업이다. 물적 자본 중심의 산업구조다. 고용이 안 늘어난다. 한국 제조업의 고용창출 능력을 1이라고 하면 일본은 1.5이고 독일은 1.2. 일본, 독일은 기술력 갖춘 인적 자본 중심의 중견, 중소기업 체제이기 때문에 고용 창출이 용이하다.

 

박상인 교수는 이날 삼성전자의 수직계열화 구조가 패스트 팔로워로서는 이점을 발휘했지만 혁신경제에는 취약하다고 밝혔다. / 사진=시사저널e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신흥시장 외에도 선진시장 격인 유럽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저가 이미지를 떨치려고 고가, 중가 모델도 늘렸다. 반대로 보면 삼성전자가 혁신을 안 할 수가 없는 시장상황 아닐까? 과거 노키아는 기존 휴대폰 시장서 막대한 이윤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담대한 혁신을 추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 중저가 중국과 격전을 펼쳐야 한다.

애플은 아이폰 등 고가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데 반해 삼성전자는 다양하게 많이 판다. 그런데 중저가에서 중국이나 인도 회사에 자꾸 밀리고 있다. 결국 애플과 프리미엄 시장에서 경쟁해야 살아남는 구조로 가고 있다. 혁신에 몰리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삼성전자에서 무리하게 제품을 내다 갤럭시노트7 사태 같은 일이 터지지 않았나. 혁신이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는 구조나 부품소재산업과의 협력관계보다는 (구조는 가만히 두고) ‘빨리빨리’ 같이 쥐어짜기 식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사건이 터진 것이다. 

 

갤럭시노트7으로 불거진 근본적인 문제점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 걸 보여줬다. 갤럭시S8이 국내에서는 성공하겠지만 과연 해외시장에서 성적이 어떨지 지켜봐야 한다. 애플에게 프리미엄시장에서 밀리고 중저가에서 중국이나 인도기업에 밀리면 샌드위치 신세다.

미래전략실이 해체됐다. 컨트롤타워가 없어지는 탓에 대규모 M&A 등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서 되레 약점이 불거질 수 있다는 반박도 있다. 즉 ‘구조본’ ‘미전실’ 등 오너 중심으로 컨트롤타워를 운영한 삼성그룹 구조의 장점을 지지하는 이들이 내놓는 주장이다.

과거 구조본이 해체될 때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미전실로) 부활시켰다. 그런데 미전실이 없다고 해서 대관업무나 그룹 차원 의사결정 체계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단지 (본인들이) 불편한 것 뿐이다. (미전실 부활은) 과거의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과 같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 문제도 있고 이건희 회장 와병생활이 길어지는 등 삼성에도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상황이 새로운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가 바람직한 방향성을 가진 정책 이니셔티브를 펼치면 재벌개혁 물꼬가 오히려 쉽게 터질 수 있는 환경이다. 전경련과 삼성 미전실이 대정부 로비를 제일 극심하게 하는 단체였다. 전경련이 약화됐고 미전실이 없어지니 재벌 총수 입장에서는 답답할 거다. 지금이야말로 재벌개혁을 할 수 있는 적기다. 문재인 정부가 이 적기를 놓치면 안 된다.

(③ 박상인 서울대 교수 인터뷰서 계속)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