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짱 대응' 논란...품질경영 타격

현대·기아자동차의 근시안(近視眼)이 역풍을 맞았다. 정부의 자발적 리콜 통보에 국내 완성차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며, 날을 세웠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에 대한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면서 24만여대에 달하는 강제 리콜의 철퇴를 맞게 됐다. '배짱 대응'에 대한 비난은 물론, 핵심 경영방침인 품질경영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는 청문회에서 국토부가 지적한 차량제작 결함 5건에 대해 "운전자의 안전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며 하나 하나 반박했다. 해당 결함들이 리콜을 실시해야 할 만큼 치명적이지 않아 무상 수리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골자였다.

자동차 관리법 31조는 안전 기준에 적합하지 않거나,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을 경우에만 리콜을 규정한다. 5건의 결함 사항에 대한 양측의 공방을 한 두 가지만 간단히 짚어보자.

LF쏘나타를 비롯한 3개 차종은 주차브레이크를 걸어도 계기판에 점등이 되질 않는다. 국토부는 운전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차량을 운행하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는 단순히 경고등만 점등이 안 되는 것일 뿐, 주차 브레이크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제동 능력 저하가 우려된 아반떼 등 3개 차종의 진공 파이프 손상에 대해서도 111m 이내에 멈추는 만큼, 법적 허용 기준(168m)에 부합해 리콜 사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국 현대·기아차의 운전자 '안전'을 판단하는 잣대가 국토부의 눈높이와 큰 격차를 보인 게 이번 리콜 사태의 본질이다.

국토부는 해당 결함들이 안전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최종적으로 판단했다. 사실 이번 강제리콜 결정은 어느 정도 예상돼 왔다. 국토부는 자동차안전연구원으로 하여금 해당 차량 20만대 이상을 조사한 이후 두 차례 제작결함심사평가위원회를 열어 결정을 내렸다. 국토부가 이번 강제 리콜 조치에 객관성과 타당성을 면밀하게 확보해 온 만큼, 이번 현대·기아차의 대응은 무리한 측면이 짙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사실 차량 증가와 전장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과거와 달리 생산량이 급증한 데다, 만드는 방식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수많은 기능이 더해지면서 결함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설계나 제작시 예상치 못했던 결함이 소비자에게 인도된 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차원에서, 생산한 차량에서의 결함을 인정하고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자발적 리콜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서는 연간 5천만대 이상이 리콜이 실시된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일상의 캠페인 정도로 여기며 과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번 현대·기아차​의 리콜은 다르다. 국토부의 자발적 리콜 통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다가 강제리콜을 당한 터라 내상이 크다. 단순히 비용 문제가 아니라, 잃어버린 소비자들의 신뢰가 더 크다. 최대 수천억원에 달할 수도 있는 리콜 비용보다 더 아픈 부분이다.

'안전'에 대한 기준이 달랐다고 억울함을 호소할 거리가 못 된다. 이번 결함들이 법적 테두리 내에서 허용 기준을 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국토부조차도 설득하지 못했다. 마케팅의 논리를 앞세워 안전과 직결되는 기준을 한계치까지 미뤄놓았다는 오해를 받아도 마땅한 변명이 없다.

또 한 가지 의문도 든다. 현대차는 앞서 세타2 엔진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결정했다. 리콜 사유로 밝힌 엔진 결함은 경기 화성공장의 청정도 문제였다. 현대차는 결함 가능성이 없는 그랜저(HG)를 리콜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안전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선제 조치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랜저에는 울산공장에서 만든 엔진이 들어간다.

당시 한 현대차 임원은 "리콜하는 게 왜 나쁜 일로 비춰지는 지 모르겠다"면서 "리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변화돼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짧은 기간 연이어 터진 리콜 사안에 왜 갑자기 태도를 뒤바꿨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실적에 리콜 후폭풍이 겹쳐 판매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을까.

어떤 의사 결정의 단계를 거쳤든,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했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자발적 리콜의 기회를 걷어차 버린 악수(惡手)가 됐다.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이기적인 기업이라는 오명(汚名)까지 뒤집어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토부는 이번 강제리콜 대상인 5개 사안에 대해 수사기관에 결함 은폐 여부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현대차는 청문 과정을 거치면서 사실상 결함을 알고도 리콜하지 않았다는 대외적 명분은 얻게 됐다. 하지만 고객의 신뢰는 상실하게 됐다. 득보다 실이 더 크다.

뻔한 결과를 앞에 놓고 굳이 청문회까지 끌고 간 이유가 결함 은폐를 면피하기 위한 '쇼잉(showing)'이었다는 눈총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 모양새다. 만약 '결함을 발견하고도 리콜하지 않았다"는 게 팩트(Fact)로 드러날 경우 수많은 돌팔매를 피할 길도 없다.

내부고발자 김광호 부장의 제보로 촉발된 이번 현대차 리콜 사태는 아직 끝이 아니다. 32건의 결함의심 사례 가운데 이번 5건의 강제리콜과 앞서 자발적 리콜을 실시한 3건, 그리고 9건의 무상수리 권고를 제외한 15건이 남았다.

국토부는 남은 사안에 대해서도 결함 여부와 안전운행 저해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현대차가 이번에는 어떤 대응을 할 지 눈길이 쏠리는 대목이다.

사실상 유일무이한 국산차를 응원하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야합(野合)이라는 턱없는 오해를 받더라도 변호하고픈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현대차의 선택을 감싸줄 만한 어떤 명분도 찾기 힘들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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