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시장 VS 보호육성’ 경합…장관 하마평 도종환 주목

문재인 19대 대통령이 후보시절인 지난달 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열린 더불어포럼 문화예술위원회 주최 '문재인, 문화예술 비전을 듣다'에서 강연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대중문화산업 분야 중에는 영화와 게임에 단연 눈길이 쏠린다. 규제론과 보호론이 복잡하게 뒤얽혀 대립하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영화계 관심도 단연 새 정부로 쏠린다. 문재인 정부가 CJ와 롯데 등을 겨냥한 ‘영화산업 공정시장론’에 힘을 실어줄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어서다. 새 정부 경제정책 기조나 문화 분야 핵심인사들 면면을 보면 어떤 형태로든 공정시장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선거과정에서 “영화산업의 경우 배급망을 소유한 대형 제작사가 시장을 지배하고 이와 손잡지 못한 영화를 열심히 제작해도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하는 양극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SM아티움에서 엔터테인먼트업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다.

특히 이날 문 대통령이 “배급이 영화시장을 좌우하는 불공정한 현상”이라고 표현한 점도 관심거리다. 지난해부터 영화계 안팎에서 본격적인 대립구도를 구축한 ‘공정시장론vs글로벌 기업 보호육성론’에서 전자에 분명한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또 문 대통령은 선거과정에서 “중소제작사를 위한 문화콘텐츠 정책금융제도를 확대하고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남용이나 담합을 금지하겠다”고 강조했었다. 또 양적 팽창에 치우쳤던 문화산업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도 밝혔었다.

국내서 배급망과 제작, 상영을 모두 거느린 기업은 CJ(CJ CGV, CJ E&M)와 롯데(롯데시네마, 롯데엔터테인먼트)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상영업 3위 메가박스도 플러스엠이라는 투자배급사를 운영하고 있다. 유력 투자배급사인 NEW는 올해부터 극장사업을 시작한다.

그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공정한 영화시장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대기업의 배급, 상영 겸업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지난해 10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일부 개정안을 내놓으며 계열분리를 주장했었다. CJ와 롯데가 영화관과 투자배급사업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안 전 후보는 대선 토론회 때도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에게 질문을 건네는 형식으로 이 문제를 재차 거론했었다.

CGV 등 관련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 경쟁론을 내세웠다. 2월 열린 CJ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서정 CGV 대표는 “영비법 개정이 (과연) 국내 영화산업에 득이 될지 논의가 필요하다. 큰 그림을 봐야한다. 너무 작은 부분에 매달려 산업 성장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었다. 장용석 CGV 부사장도 “관람객이 늘지 않으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효율화를 추구하는 게 기업의 생리”라며 “글로벌 시장서 수직통합이 대세기 때문에 우리가 차포를 떼서 나갈 수는 없다”고 밝혔었다.

일단 문 대통령이 선거 때 명시적 규제대책까지 내놓지는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공정시장론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다. 새 정부가 펼칠 경제정책 기조가 영화산업 분야에서도 적용될 공산이 커서다.
 

조형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이 지난해 9월 12일 오전 서울 중구 CGV명동역 앞에서 멀티플렉스 3사 불공정행위 금지 촉구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문화정책 전면에 설 인사들 면면을 봐도 이 같은 추정에 무게감이 실린다. 특히 문재인 캠프 문화예술정책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주목하는 눈이 많다. 유명 시인 출신이기도 한 도 의원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하마평에도 오르내리고 있다. 도 의원은 2012년 대선 경선에서도 문재인 캠프 대변인을 지냈었다.

도 의원이 안철수 전 후보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영화산업 대기업 규제가 골자인 법안을 제출해놓은 점도 관심거리다. 도 의원은 지난해 10월 31일 영비법 개정안을 내놓으며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영화배급업 겸영을 규제해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었다. 같은 골자 법안을 동시에 발의한 안 전 후보가 의원직까지 사퇴한 상황이어서 사실상 법안 동력의 키는 도 의원이 쥐게 됐다.

이와 관련해 한 문화계 고위관계자는 대선 전 “당장 초대 내각에 포함 안 되더라도 국회와 정부 사이에서 도 의원이 문화정책 전면에 나설 가능성 많지 않겠나”라며 “박근혜 정부와 기조가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대책위원회 전략본부장을 지낸 전병헌 전 의원(한국e스포츠협회장)도 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전 전 의원은 2012년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멀티플렉스의 자사계열 배급사 스크린 몰아주기가 심각하다. 극장들이 자사계열 배급사 영화와 다른 영화를 불공정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발언했었다. 이외에 조현재 전 문체부 차관 등도 장관 지명 가능성이 있다.

캠프에 참여한 문화계 인사들 역시 대부분 공정시장론과 관련이 깊다. 현장 문화계에서 주목하는 인사는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정책위 상임정책위원으로 활동한 양현미 상명대 교수와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다. 두 사람 모두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인연이 깊다. 양 교수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서울시 문화체육정책관으로도 일했다. 문화연대 대표와 서울문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한 이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문화운동가다.

이동연 교수는 지난해 12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CJ는 한국 문화산업 독점과 수직계열화의 실체”라며 “독점으로 인한 폐해들, 하청업자들에 대한 결제 문제, 저작권 논란 등을 해결하기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 CJ가 갖고 있는 문화산업 파워가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견제는 필요하다”고 말했었다.(관련기사: [문화산업 직격인터뷰]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다만 법원이 업계 손을 들어준 점이 새 정부 정책에 영향 끼칠 가능성은 있다. 2월 15일 서울고등법원은 행정6부(이동원 부장판사)는 CGV, 롯데쇼핑이 “계열회사 차별취급행위와 할인권 발행 등 부당한 불이익 제공행위를 근거로 내려진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하라”며 공정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정위는 2015년 3월 6일 두 회사가 계열회사 스크린 몰아주기, 할인권 발행 등으로 공히 공정거래법 23조 제1항 제1호, 제4호 등을 위반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납부명령을 내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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