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하기 바빴던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결국 뒷탈…스튜어드십 코드로 '고객 최우선' 확립을

증권회사를 일컬어 ‘셀사이드 애널리스트’라고 말한다. 즉 기업분석을 통해 해당기업의 목표주가를 고객인 투자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투자의사결정을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분석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익 최우선의 원칙이다. 즉 증권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 입장이 아니라, 고객인 투자자들 입장에 서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두 주체의 이익이 부딪히면 무조건 고객 이익을 앞세워야 한다. 이것이 증권회사의 스튜어드십(Stewardship)이다.

그러나 한국 여의도 증권가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증권사들이 기업보고서를 작성할 때, 해당 기업 IR담당자 의견을 그대로 받아 적기 십상이다. 투자의견도 ‘매수’ 일변도이다. 이런 판에 ‘매도’의견은 언감생심이다. 만일 비관적 전망을 보고서에 담고 매도 의견을 제시하는 순간, 해당 기업 IR담당자와의 관계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 기업과의 IB업무, 자금 유치 등에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오죽하면 증권사들을 일컬어 대기업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비아냥이 무성할까.

필자는 작년 최순실게이트가 터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관련한 각 증권사 보고서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엘리엇이 합병비율의 부당성을 근거로 반대의견을 제시했던 2015년 6월 5일 전후 발간되었던 18개 증권사들의 삼성물산 보고서에 주목했다. 이들 보고서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은 높은 합병 성사 가능성을 다룬 보고서들이다. 6월부터 발간된 5개의 보고서들 중 H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증권사들 모두 합병 성사를 예상했다. 이들은 합병안의 주총 통과를 위해 요구되는 최소 의결정족수, 삼성 측과 엘리엇 측의 지분율 등을 근거로 합병이 무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유형은 합병 가결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유리하다는 주장을 담았다. 5개 증권사들은 합병을 통해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 바이오로직스 및 기타 자회사들의 성장성을 삼성물산 주주들이 공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만일 합병이 부결된다면 삼성물산의 펀더멘탈 악화로 인해 추가적인 주가하락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세 번째로 삼성 측이 제시한 합병비율(1:0.35)을 두둔하고, 당시 ISS가 제시했던 비율(1:1.21)의 부당성을 비판한 내용들이다. 대부분 증권사들의 보고서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합병비율의 적정성을 옹호하고, ISS가 제시한 적정 합병 비율에 대해 반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반론의 근거는 두가지이다. (1) ISS가 제일모직의 가치평가에서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미래 성장성 등을 과도하게 디스카운트했다는 점 (2)삼성물산의 영업가치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삼성물산 영업가치에 대한 증권사들의 고무줄 평가다. 즉 5월 26일 합병 발표 직후 제시된 8개 증권사들의 삼성물산 평균 영업가치는 6조 2천억 원이었는데, 불과 두 달 사이에 3조 4천억으로 무려 45%나 줄어 급전직하했다. 필자는 아무리 살펴봐도 그 두 달 사이 삼성물산 내 펀더멘털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짐작컨대, 비교적 명확한 자산가치는 건들지 못하고, 주관적 평가가 가능한 영업가치에 손을 댄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대다수 증권사들이 고객 이익보다는 삼성의 눈치 그리고 그와 밀접히 연결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곡학아세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필자는 2년 전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한 우리나라 증권사들의 분석보고서를 보면서, 한국 자본시장의 가야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높다는 생각을 다시금 가졌다. 대기업과 연결되어 거래를 하거나, 그들과의 소유관계로 얽힌 국내 증권사들이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업보고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답을 찾기 어려웠다. 또한 이들이 계속 이런 이해상충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불공정한 보고서를 계속 쓴다면, 한국 자본시장은 투기꾼들의 놀이터가 되거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로 쇠락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증권사들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것이다. 리서치 센터의 독립성 제고 방안, 예상되는 이해상충 상황에서 고객 이익 최우선 원칙, 그것을 여하히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과 가이드라인 등을 설정해서 공개하고, 사후적으로 이행성과 등을 상세하게 보고할 것을 제안한다. 이것이 삼성물산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증권사들의 과거 ‘부끄러움’을 속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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