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읽기와 걷기로 내 목소리 발견

자기소개서를 처음 썼다. 난 내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그럼에도 성장과정은 밝히긴 쉽지 않다. 초등학교 1학년 단짝친구 팔찌를 훔치다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 중학교 도덕 선생님이 내 과제를 보고 ‘이리 잘 쓸 리 없다. 뭐 보고 베꼈나’라고 면박해 억울했던 순간. 성장의 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스물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 <스물>에서 나오는 남자 셋은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스무살 난 누구보다 놀기 좋아하는 대학생이었지만 가장 우울했다. 수업 가기 싫어 기숙사 침대에 하릴없이 누워있고는 했다. 가족이 보고 싶어 무리하게 고향 광주로 내려갔다. 자유로워 행복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서울 생활은 외로웠다. 1년만에 백기를 들고 휴학했다.

난 가족과 친구에게 “힘든데 힘든 이유를 모르겠어”라고 되뇌일 뿐이었다. 그 이유는 나중에 깨달았다. 남과 자기를 비교하면서 열등감이 폭발해 우울했다.

난 다복한 사남매 가정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인기투표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다. 서울에 오니 난 평범한 애로 전락했다. 교수는 내 이름조차 몰랐다. 친구들 용돈은 나보다 두둑했다. 동아리, 대외활동, 아르바이트 등 여러 경험으로 특별한 스무살을 만들고 싶었지만 열등감만 커져갔다.

휴학 1년간 스무살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선배와 친구는 “계획 없이 휴학하면 망해”라고 조언했다. 그들은 “너무 힘들어 그냥 쉬러가”라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휴학 기간 나 자신에 몰두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담쌓았던 책을 한 달에 10권 이상 읽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해 여행 경비를 모았다. 읽기와 걷기는 남이 아니라 나에 집중할 수 있던 시간을 허락했다. 내가 나를 가장 잘 모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아픔을 발견하는 데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열등감은 남에게 칭찬받고 싶은 욕망 탓이었다. 늘 멋진 사람이고 싶다보니 결핍을 견디기 어려웠다. 돈, 시간, 애정 등 서울서 겪은 결핍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거다. 무엇보다 남이 날 특별하게 바라보길 원했던 듯하다.

1년 휴학기간 나는 스무살의 내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기 목소리를 발견하는 데 서툰 이들이 많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자기 기만과 침묵이 자리 잡은 지점 이면엔 날 것의 아픔이 있다.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충분한 휴식을 통해 이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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