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건물 관리인 전횡 심해…정부 개정안 내놨지만 처벌 강화 등 필요 지적

/김태길 디자이너
지난해 11월 퇴직 후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려던 A(60)씨는 서울 강북지역의 한 오피스텔을 매입했다. A씨 오피스텔이 있는 건물은 오피스텔 198세대, 상가 468세대로 이뤄진 대형 집합건물이다. 그런데 A씨는 지난 4월 초 열린 관리단 집회에 참석했다가 의아한 광경을 지켜봤다고 한다. 

 

매년 1차례씩 열리는 관리단 집회는 오피스텔이나 상가 소유자(구분소유자)가 참석해 해당 집합건물의 관리 실태와 주요 사안을 의결한다. 현행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 시행령에 따라 구분소유자들이 선출한 관리인이 집합건물 관리에 필요한 예·결산안 등 관리 실태 내역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투명한 건물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하지만 당시 A씨가 참석한 관리단 집회에서 관리인은 지난해 결산은 고사하고 올해 예산안도 보고하지 않았다. 또 관리인과 관리단 측은 관리업체 도급계약 안건을 제출하고도, 구체적인 도급 금액은 공개도 하지 않은 채 의결을 일사처리로 진행했다. 일부 구분소유자가 ‘공개 경쟁 입찰 방식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마저도 묵살 당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관리단 집회 이후였다. 관리단 집회 운영 방식을 지켜보고 문제 의식을 느낀 A씨는 정보공개 청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현행 법에도 구분소유자가 관리인 측에 관리비 사용 내역과 각종 증빙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A씨는 관리인 측의 명확한 답변을 듣기 위해 내용 증명까지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관리인 볍원에 입원한 관계로 관리단 임원회의를 하지 못해 정보공개를 한달 후로 미룰 것’이라는 답 때문이었다. A씨는 “구분소유자들이 매달 꼬박꼬박 내고 있는 관리비가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보장된 당연한 권리”라면서 “관리인이 병원 입원을 했든 안했든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답을 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예·결산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정보공개 요구까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미루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이른바 ‘김부선 난방비’ 사태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 관리 문제가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당시 사태를 겪으면서 여론 환기로 인해 아파트 공동주택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법·제도가 상당히 강화돼 있다. 하지만 앞선 A씨가 겪은 사례처럼 오피스텔, 상가 등 집합건물의 경우 공동주택과 달리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동주택은 상대적으로 강화된 공동주택관리법을 적용받지만. 집합건물의 경우 관리인 등 관리단의 독단 운영에 대한 처벌 규정이 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의 미비는 실제로 행정기관을 통한 집합건물의 분쟁 조정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실제 시사저널e가 서울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서울시 분쟁조정위원회에서 분쟁 신청을 받아 조정 개시를 한 사례는 10건 중 1건에 불과했다. 

 

지난 2014년 서울시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의뢰한 건수는 32건이었지만 이 가운데 실제 조정이 개시된 사례는 7건(조정개시율 21.9%)에 불과했다. 이어 2015년 40건 신청 중 조정이 개시된 비율은 15%으로 6건에 그쳤다. 지난해 분쟁조정위의 조정개시율은 11.8%였다. 34건 중 4건만 조정이 개시된 것이다. 조정안 수용은 2014년 4건, 2015년 3건, 2016년 4건에 불과했다. 

 

분쟁조정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조정 기구를 법으로 설치하도록 해놓고도 조정에 대한 강제력을 두는 규정은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현행 집합건물법은 분쟁조정위에 조정 신청이 들어오더라도 조정 개시가 바로 성립되지 못한다”면서 “관리단이나 이해당사자가 조정을 불응할 경우 강제적으로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결국 조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집합건물 관리에 대한 비리 우려가 커지고 분쟁이 잦아지면서 일정 부분 법·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 2월 21일 법무부 장관 명의로 집합건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은 집합건물 관리단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집합건물 분쟁조정위원회의 실효성 제고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법무부의 개정안이 시행되면 그동안 관리인 등이 매년 1회 이상 사무를 보고하지 않거나 거짓보고하고, 규약과 관리단집회 의사록, 서면결의 등을 보고하지 않는 경우 기존 100만원 이하 과태료에서 2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다. 또 A씨의 사례처럼 정당한 사유없이 정보 열람이나 등본의 발급 청구를 거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과태료 처분 대상이 된다.

 

  
  
법무부 개정안은 또 집합건물 관리비 등의 징수·보관·사용·관리에 대해 회계장부를 작성해 5년간 보관하도록 하고, 관리단 집회 결의로 회계감사를 받도록 했다. 만약 이를 집행하지 않는 관리인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신설했다. 이외에도 분쟁조정위원회의에 조정이 필요한 경우 자료 제출을 요구할 권리도 규정하는 한편, 관리단 집회에서 의결해 요구한 경우 감사인의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도 새롭게 신설해놨다. 

 

법무부 개정안이 현행 법규정보다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개정안이 현실화되더라도 논란의 여지는 남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사저널e가 관련 개정안을 자체 검토한 결과, 예외 규정이나 미비점이 여전히 보였다. 

 

법무부 개정안에 따르면 구분소유자 등이 정보공개 청구를 하더라도 의사 결정 과정 또는 내부 검토과정에 있는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최근 사례로 봤을 때 관리인과 관리단이 애매한 예외 조항을 근거로 청구를 원천 차단할 수도 있는 셈이다.   

 

특히 과태료 처분 규정이 강화돼 있지만 여전히 공동주택법의 규정보다는 약한데다, 외부회계감사가 아닌 내부 감사인의 회계감사를 규정한 만큼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9대 국회에서 구분소유자가 150명 이상인 집합건물에 대해 주택관리사 등 전문가에 의해 관리하도록 하거나, 관리인에 대한 외부 회계감사를 매년 1회 이상 받도록 하는 등 법무부 개정안보다 강화된 법률안이 제출된 바 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 들어 구분소유자 150명 이상 집합건물의 경우 사업자를 전자입찰방식으로 선정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는 강화된 집합건물법 일부개정안이 다수 제안돼 있는 상태다. 

 

관련 전문가들은 공동주택과 집합건물에 대한 차등을 주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 주택관리사는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은 생활공동체라는 성격으로 보고 행정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집합건물은 개인간 사적자치의 영역인 민법에 기반하고 있어 처벌 규정도 상대적으로 약하다”면서 “최근 오피스텔이 보편화되고 있는 만큼 집합건물 관리·운영상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도 법 제도 강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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