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노린 공약 남발 극심 … 국민 노후자산 조기 고갈 우려

19대 대선을 앞두고 국민연금이 동네북 취급을 당하고 있다. 표를 노려 연금을 올려주겠다는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연금기금을 끌어다 정책을 집행하는데 쓰겠다는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모두가 연금기금의 장기 재정수지는 알 바가 아니라는 태도다. 아니 쥐꼬리 월급에서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를 떼어내는 봉급생활자들을 아예 봉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다.

◇더 주고 공짜로도 준다는 공약

이번 선거에서 국민연금과 관련한 공약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연금을 더 주겠다는 것과 보험료를 내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수급권을 준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두 후보가 현재 40%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겠다고 제시했다. 평균소득의 40%선인 연금지급액을 50%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얘기다. 다른 후보는 국민연금 최저 지급액을 월 35만원에서 80만원으로 올려주겠다고 했다.
 

연금보험료 납부 여부와 무관하게 나눠주는 기초연금을 현재 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높이겠다고 약속한 후보도 둘이나 된다. 또 다른 후보는 아예 한술 더 떠서 기초연금 월 40만원 공약을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말은 좋다. 받는 입장에서 얼핏 보면 반갑고도 달콤한 유혹이다. 그런데 그 약속을 어떻게 이행하겠다는 설명은 없다. 기초연금이란 게 국민연금 기금을 재원으로 하고 있으니 결국 연금보험료 낸 국민들의 자산을 가져다 쓰겠다는 얘기다. 연금자산이 줄어들 게 뻔하다.
 

그러니 연금 더 주겠다는 얘기는 다른 한편으로 매달 보험료 내는 국민들에게 더 떼어가겠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매달 월급에서 10%씩 떼어갔다면, 다음 달부터 15%씩 떼겠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될 성 싶다.
 

그렇게 펑펑 쓰고도 연금보험료는 더 떼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건 국민연금을 더 빨리 파산시키겠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현재 추세로 가더라도 국민연금은 2060년 무렵에 고갈에 직면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정부는 이 때문에 지난 2007년 60세이던 연금 지급시기를 5년마다 한 살씩 늦춰 2033년에는 65세가 돼야 연금을 탈 수 있도록 국민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국민연금 지급액을 줄이고, 매달 떼는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젊은 세대가 져야 할 부담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낮은 수익률 끌어내리는 공약도 나와

국민연금 고갈을 늦추는 또 하나의 길이자 가장 좋은 방법은 기금운용 수익률을 대폭 끌어올리는 것이다. 연금기금에서 엄청난 수익을 내주기만 한다면 지급액 늘려주는 건 바보라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수익률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이냐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기금의 54.6%를 채권에 쏟아 넣고 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국공채에 잠겨 있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마음 편하게 산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 동안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을 세금처럼 가져다 썼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렇게 채권에 집중 투자한 게 기금운용 수익률을 끌어내리는 악재가 됐다. 지난 해 국민연금 국내채권 수익률은 고작 1.83%에 그쳤다. 인플레이션도 커버하지 못했으니 사실상 마이너스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앞으로 금리는 계속 올라갈 기세다. 채권에서 적자가 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중장기 운용방향을 수정해 채권 비중을 대폭 축소하고 주식이나 대안투자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앞서 일본 공적연금도 채권 비중을 대폭 축소하고 주식 비중을 크게 늘리기로 방향을 설정했다.
 

이렇게 방향을 수정했는데 이번 선거를 앞두고 국민연금 기금을 수익률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정책에 끌어다 쓰겠다는 공약이 또 나왔다. 한 후보는 보육시설이나 임대주택, 요양사업을 추진하는데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제시했다. 직접 투자가 아니라 거기에 소요되는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국공채를 매입하는데 쓴다고 했지만 연금의 실상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게다가 덧붙인 설명이 웃기기 짝이 없다. “국공채 투자는 가장 안전한 투자이며, 기본적인 수익률이 보장”된다고 했다. 삼성그룹에 골치 아픈 삼성전자 처분해 버리고 국공채나 들고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남용 막지 못하면 국민이 부담해야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주머니다. 평생 유리지갑을 쓰며 살아야 하는 많은 월급쟁이들에겐 거의 유일한 보루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주머니를 정치인들이 노리고 있다. 그걸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현행 국민연금법 4조 ①항은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는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調整)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같은 조 ③항은 ‘연금보험료, 급여액, 급여의 수급 요건 등은 국민연금의 장기재정 균형 유지, 인구구조의 변화, 국민의 생활수준, 임금, 물가, 그 밖에 경제사정에 뚜렷한 변동이 생기면 그 사정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해 연금자산이 줄어들면 연금 지급액을 줄이거나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출생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선 거의 피할 수 없는 경로다.
 

답은 명확하다. 그런데도 몇 푼 더 주겠다는 정치인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표를 팔아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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