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 지친 청춘들 '공시'에 올인…중기·벤처 등 민간부문서 더 나은 일자리 쏟아낼 수 있게

얼마전 실시된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에 17만여명이 응시해 역대 최대 응시인원 기록을 갈아 치웠다고 한다. 선발인원은 4910명인데 35배가 넘는 인원이 몰렸다. 그나마 원서를 내고도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은 55000여명을 빼고도 이런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공시에 목을 매는 우리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초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 조사에서도 공무원직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내놓은 ‘2016 청소년통계’를 보면 조사대상 청소년(9~24세)의 23.7%가 국가기관을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꼽았다. 이어 대기업(20.0%), 공기업(18.1%) 순이었다. 국가기관과 공기업을 합치면 41.8%에 달하니 10명중 4명꼴로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업을 바라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도 국가기관에는 뒤진데다, 벤처기업(3.7%)과 중소기업(3.2%)을 가고 싶다는 청소년은 7%에도 못 미쳤다.

서울 노량진은 공무원 취업을 바라는 젊은이들의 메카가 된지 오래다. 취업 시험을 준비 중인 청년층의 60% 가까운 30만명이 힘든 시간을 감내하며 공무원ㆍ공기업ㆍ각종 고시를 노리는 공시족이라는 통계도 있다. 한 민간 연구소는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공시 준비에 매달림으로써 초래되는 사회적 기회비용이 연간 17조원이 넘는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공시생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생산과 소비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추산한 수치다.

대학을 나오고도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겠다고 몰리는 세태를 무조건 탓하기는 어렵다. 취직이 되어본들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열악한 근무조건을 감당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처우와 뛰어난 복지혜택, 정년 보장이라는 고용안정성과 은퇴한 뒤에는 두둑한 연금까지 챙길 수 있는 공무원 자리를 선망하지 않는다면 그게 되레 이상할 것이다.

공무원 직을 폄하하려는게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공무원들이 많고, 이들이 국가 발전과 국민의 삶에 기여하고 있음도 일상적으로 보고 느끼는 그대로다. 다만 젊은이들이 자신의 재능이야 어떠하든 너도나도 공무원이 되겠다며 구름같이 몰려 젊음을 바치는 과열된 행태가 걱정스럽다는 뜻이다.

공무원들은 국가경제라는 측면에서는 가치를 창출하는 긍극적인 존재가 아니다. 주지하듯이 공무원들의 급여는 국민이 내는 세금에서 나온다. 세금은 국민의 경제활동을 통해 창출되는 소득에서 떼어내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생산활동의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이 이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내지 못한다면 가계도, 정부도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하다. 정부가 공급하는 국방, 치안, 교육 등 공공서비스와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도 민간의 생산활동과 소득창출이 뒷받침돼야 재원조달이 가능한 존재들이다.

따라서 공무원을 늘리는 것을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긍정적인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국가의 재정부담이 그만큼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공개된 '2016 회계연도 국가결산'에서는 국가부채가 1400조원으로 사상최대 규모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금액중 절반 정도인 752조 6000억원이 정부가 적자를 메워주기 바쁜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다.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것은 세금으로 충당하는 당장의 급여뿐 아니라 미래에까지 부담을 늘리고 국가재정을 어렵게 하는 일이다.

결국 생산활동의 주체인 민간부문에서 공무원 부럽지 않은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야말로 과열된 공무원 취업 열기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최선의 방법이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의 격랑속에서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것은 정부나 공무원에게 주도적으로 책임을 지울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을 정부가 더 잘할 수 있다면 박근혜 정부에서 창조경제의 주무부처 역할을 맡았던 미래창조과학부가 차기 정부 조직개편에서 당연한 듯이 폐지 1순위로 거론되는 일이 벌어질리 있겠는가.

기본적인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외 정부의 역할은 민간의 창의를 극대화해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족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외친 기업인도 있었다. 세월의 풍파속에 기업들도 많은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기업인들의 열정과 꿈, 이들이 만들어낸 일자리가 오늘의 한국 경제를 일군 원동력이 됐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꿈과 비전을 갖고 도전하는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희귀해진 국가가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는 없다. 반대로 쉽고 편한 길을 가기보다 높은 꿈을 실현하기위해 기꺼이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로 넘치는 국가라면 역동하는 에너지로 강력한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고 그만큼 세계의 미래를 주도할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이다. 

 

취업난에 주눅든 젊은이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경로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공정한 시장경쟁과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통해 일자리의 보고인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활개 칠 수 있게 된다면 공공부문 일자리에 집중된 청소년들의 취업선호도도 확 달라지지 않겠는가.  


특히 대권 도전에 나선 지도자들은 냉철한 상황인식과 뚜렷한 비전을 갖고, 지금의 일그러진 현실을 바꿔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총력을 쏟아야 한다. 당장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국가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뒷전인채 그저 달콤한 말로 환심사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인다면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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