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채무재조정 반대로 P플랜 가능성…17~18일 채무재조정 통과에 실낱같은 희망
국민연금이 대우조선에 대한 채무 조정 가능성을 아예 닫아놓은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11일 대우조선에 대해 직접 실사를 진행하겠다고 산은에 요구했다. 또 4월 만기 채권의 원리금 상환을 3개월 유예할 의사가 있음을 전달했다. 채무 재조정 결정 또한 이에 맞춰 3개월 미루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를 모두 거절한 상태다. 산은이 국민연금이 대우조선을 실사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이 실패하면 오는 21일 만기를 앞둔 회사채를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현재 두 갈래 길 앞에 섰다.
◇대우조선 P플랜, 이후 수주 어려워져 최악 상황 직면하게 될 수도
대우조선이 당면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P플랜 돌입이다. P플랜은 사실상 법정관리다.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어쨌든 P플랜은 법정관리다. (대우조선) 절반은 포기하겠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가면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선주사들의 선박 건조 계약 취소(빌더스 디폴트·Builder’s Default)다. 대우조선의 건조 선박 114척 중 96척에 대한 계약이 대우조선 법정관리 시 빌더스 디폴트 조항을 담고 있다. 또 이 중 40척이 실제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
산은은 대우조선이 P플랜에 가더라도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은은 10일 언론브리핑에서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소난골과 시드릴이 발주한 드릴십 각 2척을 포함한 단 8척만이 빌더스 디폴트(Builder’s Default)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밝혔다.
빌더스 디폴트가 발생하더라도 선박을 재매각하면 건조 자금을 회수할 방법은 있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8월 건조 중 계약이 취소됐던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2척을 노르웨이 선주 프런트라인에 재매각한 바 있다.
발주 취소도 골칫거리지만 이후 수주전에서의 악전고투도 예상된다. 당장 빌더스 디폴트 예상 건수가 적고, 재매각을 통해 큰 손해를 면하더라도 선주들이 대우조선해양에 더이상 신조 발주하지 않을 수 있다. ‘무너진 신뢰’ 탓이다. 백 교수는 “외국 선주들이 선박을 발주할 때, 그 회사가 언제 부도 날지도 모르는데 발주하지 않을 것이다. P플랜은 향후 수주 마케팅 차원에서 큰 타격이다”고 설명했다. 수주를 받지 못하면, P플랜으로 대우조선을 간신히 살린다 하더라도 이후 자력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선주와 화주는 국가 리스크를 중요하게 본다”며 “글로벌 선주들은 (한국)정부가 지원하지 않아 한진해운이 도산하고 말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대우조선을 P플랜으로 가면, 이는 대외적으로 한국의 ‘조선업 포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런 국가의 조선사에 수주 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 내부 관계자는 “기존 수주 뿐 아니라, 신규 수주가 전량 취소가 될 위험이 있다. (빌더스 디폴트에 노출된 배가) 몇 척이니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후 수주에 치명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우조선에 줄줄이 엮인 일자리도 문제다. 대우조선 1만명 임직원뿐 아니라 사내외하청업체(약 1300개), 1·2차 벤더의 직원수까지 합치면 대우조선이 품은 인력 수는 수만명에 달한다. 부산 조선해양기자재업체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갈 경우, 기자재 납품 대금 집행이 제대로 안될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피해”라며 “경영 악화는 자연스럽게 고용 악화로 흘러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선은 결국 생명 유지… “지금 살려야 나중에 산다”
대우조선이 바라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결국 ‘회사가 사는 것’이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17~18일 예정된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 조정안이 통과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사채권자 집회서 정부가 제안한 채무 조정안에 합의할 경우, 대우조선은 산은과 수은으로부터 2조9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빌려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된다. 대우조선은 이를 통해 올해 계획된 선박 인도 일정을 완수해 흑자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우조선은 최근 안젤리쿠시스 그룹 자회사인 마란 탱커스와 현대상선과 VLCC 수주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정상화 단계를 밟으며 크기가 줄어든 대우조선을 빅2 체제로 편입하는 방안도 ‘최선’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 조선시장을 현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에서 빅2(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체제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정 사장은 이에 대해 지난달 24일 기자간담회서 “회사엔 주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직원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결국은 주인 찾아주는 것은 빅2 체제로의 전환과 맥락이 같다. 빅2를 염두에 두고 경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금 살아남는 업체가 다가올 호황의 과실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일단 살려놓고 봐야 한다. (대우조선에) 딸린 사람이 수만 명이다. 수만 개의 일자리를 잃는다는 건, 일자리 확보에 목매는 현 상황에서 큰 손실”이라고 밝혔다.
백 교수는 “희망은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친환경 규제로 LNG(액화천연가스) 연료 선박 발주가 늘고 있다. 이는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다. 세계 선복량 60%가 선령이 20년이 넘는 노후선박이다. 이들을 폐선 처리하고 신조를 짓는 게 선주 입장에서도 유리하다”며 “지금껏 세계 경기가 나빠 선주들이 (발주를) 머뭇거렸지만, 곧 회복되면 교체 수요가 많이 늘어날 것이다. 살아남는 업체가 곧 다가올 조선 해운 산업 호황기를 향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