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CBM에 미국 영토 노출되는 상황 용납 안할 듯

미국이 핵항공모함 칼빈슨과 강습상륙함 본험리처드 등 기동선단을 한국 해역으로 이동했다. 일본 요코스카에 대기 중인 핵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도 투입 태세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진다. 주한미군에는 증원 병력을 추가 배치하고 있다. 미군 가족 등 민간인 대피 계획도 점검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유사시 민간인 대피는 미국 정부 표준행동절차(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다 보니 사태 전개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국민들의 동요, 시장·금융 혼란 등을 우려해 전투대비태세를 가리키는 데프콘(DEFCON)은 1953년 휴전 이래 4를 유지하고 있다. 데프콘 3은 적의 개입이 우려되는 준전시상태. 데프콘 2는 전쟁 징후가 포착될 때 발령한다. 데프콘3에서는 한미연합사로 작전권이 이양되고 전군 영내 대기 명령이 떨어진다. 1976년 도끼 만행사건,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때 등 2차례 있었다. 미국 본토에선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데프콘 2를 발령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에 선제타격할까? 북한은 어떻게 대응할까? 북한과 상호방위조약(中朝友好合作互助條約)을 체결한 중국은 어떻게 움직일까? 


세계는 한반도를 뒤 덮은 전운(戰雲)을 주시하고 있다. 그저 오랜 세월 긴장에 면역이 된 탓인지 한국인만 무덤덤한 표정이다. 당사자로서 긴장감이라곤 별로 감지되지 않는다. 본인 생사와 국가 명운이 달린 세기의 격돌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그러하다. 상당수 한국인들은 1994년 한반도 위기설을 떠올리며 23년 지난 오늘의 위기설을 애써 자위하는 모양새다. 정말 그럴까?


1994년 상황을 일별하면 이러하다. 김영삼(YS) 정부 출범 열흘 뒤인 1993년 3월12일, 북한은 핵무기확산금지협정(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다양한 채널의 접촉과 회담을 거쳐 수습되는 듯했으나 1년이 지나던 3월19일 남북 5차 실무회담 때 박영수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론이 나온다. 그리곤 북한의 정전협정 무효화 선언(4.28), 영변 5MWe에서 폐연료봉 인출에 이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공식 선언(6.13)과 이에 대한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폐연료봉 인출’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로토늄 추출과 같은 의미다.

​한국 반대와 카터 중재로 1994년 영변폭격 중단


‘서울 불바다’론이 나오자 서울 시민들은 라면·생수 등 생필품 사재기로 잠시 법석을 떨었을 뿐 이내 위기상황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클린턴 미국 행정부는 대북 제재를 본격화했다. 페리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3월30일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북한의 핵개발을 중단 시키겠다”고 언명하고 2개 항공모함을 한국 해역에 전개하는 등 군사적 응징을 위한 준비를 진행했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서 폐연료봉 인출이 확인 된지 2주 뒤(5월18일) 클린턴 대통령 주재의 국가안보회의(NSC)가 열렸다. 페리 국방장관과 캐슈빌리 합참의장의 보고를 받은 클린턴은 폭격 시 북한의 예상 반응을 물었다. 페리 장관은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의 보고를 인용, 서부 휴전선 일대에 전진 배치한 장사포 등으로 폭격을 가해올 경우 1백만 명의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한국인의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전제하는 것으로 상상하기조차 끔찍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딱한 사실은 이 관련 일련의 결정들이 한국 정부에 공식 통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1백만 사망’이라는 추계가 클린턴 대통령을 주저케 했다는 기록은 여러 곳에서 눈에 띄는데 그럼에도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선 군사적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 역시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변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정밀 폭격과 동시에 지상 공격기를 동원해 장사포를 제압하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등에 힘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6월 중순 미국은 오시라크 옵션(Osirak Option)이란 대북 응징안을 다듬었고, 주한 미대사관과 미군사령부는 한국 거주 미국 민간인 소개(疏開)작전을 구체화했다. 미국은 유사시 미국시민을 대피시키는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항상 마련해놓고 있는데 현재의 ‘오산 공항 집결-헬기편으로 대구·김해공항 이동-항공기로 일본 수송’ 기본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94년 당시는 8만, 현재는 30만 명 정도가 대상이다. 

북한 반격 시 ‘1백만 사망’ 보고 클린턴 대통령 망설이게


어쨌든 더 놀라운 사실은 사태가 이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갔음에도 한국 정부는 겉돌았다는 것이다. 청와대 긴급 대책 이틀 뒤 오찬하러 외부에 나갔던 외교안보수석이 미국 민간인 소개 추진을 확인하고 대통령에게 허겁지겁 이를 알렸다고 한다. 그제서야 대통령은 주한 미국대사를 청와대로 불러 자초지종을 묻고 백악관과 연결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클린턴과 핫라인 통화에서 “나와 상의 없이 어찌 전쟁을 하려 드느냐. 단 한 명의 한국군도 동원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한반도가 쑥밭이 되는 것을 막았다고 자랑한 바 있다. 백악관 측은 김영상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통화 기록까지 공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여튼 미국 정부가 한국 대통령의 항의를 받아 군사행동을 멈췄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그 즈음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남북 정상회담 등)가 결정적이었음은 확실하다. 

 

‘1백만 사망’을 부담스러워 하던 클린턴에게 카터의 중재는 사태 매듭의 돌파구로 비쳤을 터이다. <당시 청와대 동정은 시사저널 1371호에 ‘실제 위기 상황에선 한갓 무기력한 약소국 정부’라는 제목으로 실린 ‘박관용 회고록2-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과 YS정부’ 참고>


미국은 핵 확산, 특히 북한과 같은 적성 테러 집단의 핵 보유를 극력 경계해왔다. 그런 미국이 북한의 ‘도발-협상을 통한 자금·시간 벌기-재도발(핵 능력 제고)’ 수법을 빤히 알면서도 ‘전략적 인내’로 자신을 포장하며 참았던 결정적 이유는 ‘엄청난 수의 인질(人質)’ 때문이다. 한국 수도권 2500만 명이 북한 장사포 사정거리에 들어 있어서다. 김정은이 북한 전역의 초토화를 각오하고 저항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희생을 낳는 게 정한 이치다. 미국 대통령이 이럴 진대 하물며 한국 대통령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이런 점을 노려 좌파는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을 외치면서 ’퍼주기‘에 분주했던 게 현실이고 사태를 키웠다. “북한의 핵은 자위(自衛) 차원의 것”이라는 북한 두둔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 한국의 카드를 낱낱이 꿰고 있는 북한은 한국의 돈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렸다. 역대 우리 정부의 오판과 패착이 오늘의 한심한 상황을 낳은 것이다. 


수천만 명이 볼모로 붙잡힌 형국이 여전하고 보면 미국의 북한 타격은 없어야 한다. 한강 이남까지 포격이 가능한 300㎜ 장사포까지 실전 배치하고 중·단거리 미사일은 한국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니까 인질은 훨씬 늘어난 셈이다. 인질 우려만을 따지면 가공할 타격능력을 갖춘 핵항모 칼빈슨의 한반도 해역 전개나 스텔스 기능을 갖진 최신예 B-2전략폭격기나 F117전폭기 한반도 상공 비행도 위하용(威嚇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은 북한에 겁을 줘서 북한이 협상에 응하게, 핵 보유를 포기토록 만들 수 없음을 확신하고 있다. 벼랑 끝 협상을 통해 양보를 얻어내는 술책에 휘말릴 뿐이고, 결과적으로 사태만 더 악화시킬 뿐임을 안다. 따라서 더는 속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는 실제의 군사작전을 상정하고 있다는 말과 통한다. 북한 지도부를 바꾸거나 남한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정도에 머물게 아니라 북한 핵 보유 자체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만이 궁극적 해결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특공대를 침투시켜 예측불허의 김정은을 제거하는 참수(斬首)작전도 중간단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과 관련, 제2의 한국(전면)전만 초래할 위험이 크다며 사실상 불가능한 해법이라고 지적하는 이가 상당수다. 북한이 다량의 핵과 미사일을 분산, 특히 미군의 폭격이 어려운 중국과 국경 부근 지하에 배치했기 때문에라도 성공을 기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번 ‘자제’의 이유로 작용했던 ‘인질 피해’우려는 더 심대해졌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미국에겐 이 모든 것을 감내하게 할 요인들이 있다.

◇중국도 미국 입장 ‘일정 부분’ 양해한 듯


가장 우선은 ‘수 십 개’의 핵폭탄을 보유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통제 불능한 북한의 핵폭탄이 테러집단에 넘어가는 사태만도 조마조마하는데 자기들 머리 위에 핵이 쏟아지는 위험은 결코 용납 않는다. 핵폭탄 소형화와 수소폭탄까지 개발했다는 북한은 ICBM 발사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미국에 타격 명분을 부여했다. 1962년 10월 미국은 세계3차 대전을 불사하며 쿠바를 봉쇄한 것은 한갓 과거사가 아니다. 미국 첩보기 U-2가 쿠바에 건설하던 소련 미사일 기지 사진을 확보하자 케네디 대통령은 핵전쟁을 무릎 쓴 단안을 내렸고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과 관련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서는 흘러나온 얘기가 일절 없다. 이를 두고 미·중 간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던 것 아니냐는 설왕설래가 있으나 정반대일 소지가 되레 크다. 미국을 잘 아는 시 주석으로서는 ‘미 본토에 핵 투발(投發)하겠다고 설치는 북한을 좌시할 수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제지하기 어려울 것임은 짐작된다. 미국이 ‘(북한의 후견인 격인)중국이 않는다면 미국이 직접 처리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우연이 아니다. 

 

사실 ‘중국을 대신’해 미국·일본의 발목을 잡는 북한이 중국에겐 귀하고 예쁜 존재이지만 바로 코앞의 북한이 다량의 핵폭탄을 보유하는 게 부담스런 측면도 없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북한의 핵을 이유로 일본·대만·한국이 핵개발을 본격화하면서 군비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은 중국으로서도 곤혹스런 사태다. 이에 (상당 대가를 보장받은)중국이 미국의 선제타격을 ‘양해’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심심찮다. 

 

일각에서는 6자회담 한·중 수석대표 회담에서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이해 촉구’ 합의 등을 들어 협상 개시를 예상하기도 하는데 북한의 벼랑 끝 전력과 전략을 익히 아는 미국이 이번에도 넘어가지는 않을 듯하다. 허버트 맥베스터 백악관 NSC보좌관이 북한을 “핵능력을 갖춘 불량정권”으로 규정하면서 “대통령은 미국민과 동맹국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방안(full range options)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공개한 것이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중국조차 북핵이 중국에 위협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고 밝힌 등은 시사하는 바 크다. 

 

틸러슨 장관은 “시 주석은 상황이 악화돼 행동을 취해야만 하는 수준의 위협에 도달했다는 데 동의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북한에 대한 당장의 군사조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분석이 여전히 다수다. 위험부담이 너무 큰 게 주요 이유인데 분명한 것은 ‘선제타격’이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1994년 영변 핵시설 폭격 시도 때와 달리,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군사행동 현실화는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 김일성을 태양에 빗대 태양절로 부르는 김의 생일(4.15)과 인 인민군창건일(4.25)이 주목되는 이유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시험하려든다면 ‘돌발 사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줏대 없는 약소국은 국제사회에서 대접 못 받아 


미·중 슈퍼 파워가 벌이는 글로벌 게임에서 남북한은 대단한 존재가 못 된다. 자기 비하가 아니다. 예전보다는 비중이 커졌더라도 그들에게는 ‘장기판 졸’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중국의 한국인·한국기업에 대한 황당한 횡포는 우리의 위치를 대변한다. 그런 용렬함과 저급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스스로 ‘장기판 졸’로 전락한 우리의 책임도 적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한국에 대한 배려 없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남한을 미국 방위선에서 제외시켜 북한의 남침 유혹을 더한 애치슨(국무장관) 선언이나 1970년대 초 닉슨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결정 등은 한국의 상황은 전혀 고려 않은 일방적 조치다. 힘이 우선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에서는 자존·자강만이 살 길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민족 장래, 또한 남북문제를 넘어서는 동북아 전체의 이해가 얽힌 위중한 대상이다. 그러기에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고 대처해야 한다. 진보를 가장한 종·친북 주의, 보수로 위장한 징고이즘(Jingoism, 배타적·맹목적 애국주의) 모두 경계해야 한다. 진정한 애국주의(patriotism)가 여느 때보다 절실한 위기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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