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네마다 고소한 식빵 굽는 냄새가 퍼진다.

사진=우먼센스

퇴근길에 고소한 빵 냄새에 이끌려 빵집에 들어가니 진열장에 전에 본 적 없는 다양한 종류의 식빵이 늘어서 있었다. 기본 식빵부터 천연 효모를 사용한 식빵, 토스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식빵, 밤이나 호박이 든 식빵 그리고 최근 유행하는 페스트리 식빵까지 족히 열 가지가 넘는 식빵이 매대에 늘어서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SNS 피드에서도 가장 많이 보이는 디저트는 다름 아닌 식빵이다. 녹차 반죽이 마블링 되어 있거나 초코크림이 흘러넘치는 식빵 사진을 보며 침이 고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제부터 식빵이 이렇게 환골탈태를 했나?

 

밀가루에 효모를 넣고 반죽해 구워낸 주식용 빵이 바로 식빵이다. 프랜차이즈 빵집이 골목마다 생기기 전 동네 빵집에는 옥수수 전분을 넣은 고소한 옥수수 식빵과 우유만 넣어 좀 더 담백한 우유 식빵 두 가지뿐이었다. 모양도 달랐다. 옥수수 식빵은 윗부분이 둥그스름했고 우유 식빵은 네모반듯한 모양이었다. 옥수수 식빵은 달달한 딸기잼을 발라 먹을 때 가장 맛있고 우유 식빵은 달걀을 입혀 프렌치토스트 흉내를 내거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하교 후 간식거리를 찾을 때도 잼이나 달걀 없이 맨 식빵만 먹는 일은 결코 없었다. 식빵은 말 그대로 주식용 빵으로 맨 식빵을 먹는 것은 반찬 없이 밥만 먹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빵집의 실력을 바게트로 가늠한다. 우리가 밥을 주식으로 먹듯 그들은 바게트가 주식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딱딱한 빵 문화가 아닌, 일본의 부드러운 빵 문화가 자리 잡은 국내에서는 주식용 빵으로 바게트보다 식빵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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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트나 치아바타 등 거친 빵으로 만드는 샌드위치가 대중화된 유럽과 달리 일본과 한국에서는 식빵으로 만든 샌드위치가 대중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동네 빵집들은 프랜차이즈 빵집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본에 충실하기’시작했다. 바로 ‘식빵이 맛있는 빵집’이 되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빵집의 발 빠른 메뉴 개발은 소비자를 유혹했고 반죽이 된 상태로 매장에 배달돼 굽기만 하면 되는 편안함은 프랜차이즈 빵집의 인건비를 줄였다. 

 

멤버십 카드에 쌓이는 마일리지는 고객을 프랜차이즈 빵집의 노예로 만들었다. 그러나 고객의 입맛은 변덕스러운 탓에 어딜 가나 찍어낸 듯한 특색 없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맛에 고객들은 곧 싫증을 냈다. 좀 더 깊이 있는 빵 본연의 맛을 맛보고 싶어진 것이다.

 

드디어, 프랜차이즈 빵집의 성업 중에도 생존한,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빵 맛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제빵사들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강한 부재료나 화려한 데커레이션이 들어간 빵이 아닌 식빵에서 가장 먼저 반응이 왔다. 단순히 빵이 좋아 빵집을 한다는 젊은 제빵사들이 식빵에 집중했고 식빵만을 파는 작은 빵집이 동네마다 군데군데 생기기 시작했다. 

 

사진=우먼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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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빵집에서는 맛보지 못한 쫄깃한 반죽의 식감은 곧 입소문을 탔고 빵이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동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은 다른 빵은 만들지 않고 식빵만 만드는 대신 식빵으로 만들 수 있는 갖가지 메뉴를 개발했다. 반죽에 녹차가루를 넣어보기도 하고 초콜릿과 치즈를 넣어보기도 했다. 이 반죽들을 함께 섞어보기도 했다. 페스트리용 반죽으로 식빵을 개발한 빵집은 이제 줄을 서지 않으면 맛보지 못하는 맛집이 됐다. 그렇게 식빵은 점차 샌드위치를 만들던 주식용 빵에서, 그 하나만으로 맛있는 주인공으로 환골탈태했다. 

 

백화점의 프리미엄 식빵부터 줄을 서야만 살 수 있는 유명 식빵 전문점의 식빵, 그리고 이제는 프랜차이즈 빵집에서도 열 가지가 넘는 식빵을 살 수 있다. 가끔 형형색색의 화려한 식빵을 보면서 더 이상 식빵을 ‘식빵’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식빵의 발전은 프랜차이즈 빵집의 홍수 속에서 생존한 한국 제과업계의 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빵을 사랑하는 ‘빵순이’ 입장에서는 이 다양한 변화에 신이 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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