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30% 가진 국민연금 등 채무 재조정 부정적 기류…훨씬 강도 높은 자구노력 불가피

서울 중구 다동 대우조선해양 사옥. / 사진=뉴스1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결국 사전회생계획제도(P플랜·Pre-packaged plan)으로 기울고 있다. 대우조선 회사채 30%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채무 재조정에 부정적 의견을 내놓을 경우 다른 기관 투자자들도 이를 따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제시한 대우조선 지원방안이 실패하고 P플랜에 들어가면 대우조선은 수주가 끊기고 지금보다 강도 높은 자구 계획을 전제로 자금이 지원된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대우조선 구조조정안에 대한 보강자료를 요구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향후 수익 전망, 재무건전성 개선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이 정부가 내놓은 대우조선해양 회생을 위한 출자전환 등 채무 재조정에 관해 큰 틀에서 동의했지만 사채권자들은 대우조선해양이 여기까지 온 이상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추가 감자(자본감소)를 하는 등 책임있는 자세를 보일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주가 먼저 고통을 분담해야 투자자들도 손실을 감내하겠다는 주장이다. 

 

특히 채권자들 사이에선 정부가 고통분담을 앞세워 국책은행의 출자전환 등과 함께 회사채 투자자들에게 손실 부담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바 있어 신중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 요청에 그대로 따르면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단 국민연금은 정부가 내놓은 안을 토대로 오는 31일 투자관리위원회를 열 계획이다. 이어 금융당국과 산은이 제시한 채무 재조정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다음 달 17∼18일에는 회사채 투자자를 대상으로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안 동의 여부를 결정한다.

이에 산업은행과 대우조선은 국민연금과 만나 설득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지원에 반대해 대우조선이 P플랜으로 가면 선박 발주 취소·대규모 선수금 환급 요청(RG콜) 등 후폭풍이 커지기 때문이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 사진=뉴스1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이날 자신의 급여를 100% 반납하겠다면서 직원들에게도 고통 분담을 촉구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은 "대주주와 채권단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구계획의 철저한 이행과 추가 고통분담"이라며 "여기에는 무쟁의·무분규 지속, 전 직원 임금 10% 반납을 포함한 총액 인건비 25% 감축 등이 포함된다. 저부터 급여 전액을 반납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채권단은 회사채 투자자 측에서 요구한 산업은행 감자에 대해선 "가능성은 제로"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11월 1조8000억원 규모로 출자전환을 하면서 경영정상화 이전에 보유한 주식을 모두 소각했기 때문이다.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을 모두 졌기 때문에 더는 감자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사채권자들이 대우조선 지원안에 반대할 경우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P플랜에 돌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P플랜 돌입으로 예상되는 손실을 강조하며 사채권자를 압박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가면 대우조선은 물론 채권단도 추가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P플랜은 법정관리 형태라는 점에서 충당금을 100% 쌓아야 하는게 원칙이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가면 국책은행이 대우조선에 지원해야 할 추가 자금이 기존 2조9000억원에서 3조4200억∼3조5340억 원으로 늘어난다. 최소 4000억원 더 늘어난다. 시중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회생가능성을 보수적으로 보고 법정관리에 준하는 100%를 쌓는다면 지금보다 2조4000억원이 더 투입해야 한다. 사채권자들이 출자전환해야 하는 금액은 거의 두 배로 증가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P플랜에 대비해 정확한 충당금 비율 자체가 합의되진 않은 상황"이라며 "명확히 제시한 것이 없다. 은행들은 일단 정부 안대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는 3800억원이다. 전체 채무조정 대상 회사채의 30%다. 대우조선해양 지원안에 국민연금과의 합의가 불발되면 시중은행과 사채권자의 채무조정을 전제로 국책은행이 2조9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구조조정안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어 플랜B에 해당되는 P플랜이 적용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