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발주에 ‘형제’ 현대중·군산 반색…조선업계 "정치·혈연 논리, 공정성 해쳐"

현대상선이 초대형원유운반선 5척을 발주한 가운데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 입찰제안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13100TEU 현대 드림호. / 사진=현대상선

현대상선이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조성한 2조6000억원 규모 ‘선박 신조 프로그램’을 활용해 초대형유조선(VLCC) 5척을 발주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현대중공업과 군산 지역계가 반색하고 있다. 과거 현대가(家)의 조선·해운 ‘쌍두마차’였던 만큼 수주에 있어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현대상선은 가격요소 등을 분석해 최종업체를 선정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대상선 선박 입찰에 참여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은 이 같은 ‘혈연 논리’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벌써부터 조선사와 지역 간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치열한 탓에, 향후 현대상선 선박건조업체 선정 과정을 두고 형평성과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기술력으로 보나 역사로 보나”…현대중 수주 자신감

2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최근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조성한 2조6000억원 규모의 ‘선박 신조 프로그램’을 활용해 초대형유조선(VLCC) 5척을 발주했다. 초대형유조선 1척당 평균 신조 선가는 약 8250만 달러다. 5척 모두 수주할 경우 4억 달러(약 4454억원) 이상의 수주실적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소식에 현대중공업과 조선소를 둔 울산 지역계가 반색하고 있다. 조선 불황 가운데 단비 같은 발주를 내건 업체가 현대중의 오랜 ‘형제’이기 때문이다.

현대중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1972년 울산 미포만에 설립한 현대조선소를 모태로 2002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현재는 정 명예회장의 6남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대주주다. 현대상선은 1976년에 아세아상선으로 설립됐다가 1982년에 현대그룹 산하의 현대상선으로 상호가 변경됐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두 회사 모두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로고는 현대그룹이 사용하던 두 개의 삼각형 모양을 계속 쓰고 있다. 현대중과 현대상선 모두 범현대가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구조조정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대중이 현대상선 발주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29일 익명을 요구한 현대중 관계자는 “선박 건조기술력으로 세계 으뜸이다. 어느 발주가 나오더라도 자신 있는 부분”이라며 “현대상선과는 (현대라는) 이름을 공유한다고 해도 사실상 남남인 회사다. 다만 과거 정주영 회장이 바닷길 개척을 위해 만든 회사라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역사를 공유한다. 각자도생하고 있지만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형평성 논란 일어서는 곤란”…정치·혈연논리 개입 우려

현대상선은 “발주는 입찰 조건에 맞춰 이뤄질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배를 값싸고 좋게 만들 수 있는 능력’ 외 그 어떤 것도 고려대상에 넣지 않겠다는 것이다. 행여나 일 수 있는 형평성 논란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현대중과 같이 현대상선 발주 입찰에 참여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현대중과 현대상선이 과거 같은 현대 계열사였다는 점은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쟁사로서 두 회사 간 관계가 ‘껄끄러운’ 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대우조선의 경우 현대중 조선소를 둔 울산과 군산 지역계가 자사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수주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탐탁지 않다.

국회 정무위 소속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군산)은 지난 21일 “정부는 대우조선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도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현대상선을 통해 10척의 배를 신규로 수조하도록 지원했다”면서 “도크폐쇄 직전인 서해안 유일의 군산조선소는 기업이 알아서 하라고 나 몰라라 하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즉, 공적자금을 활용한 조선사 지원의 ‘다음 차례’는 현대중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29일 대우조선 노조 한 관계자는 “쉽게 말해 대우해운이라는 회사가 있는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이 입찰에 참여하면서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는 상황이다. 사명이 같다는 것은 간과하기 어려운 사실”이라며 “정치권까지 가세해 현대중 지원에 대우조선을 들먹인다면 향후 현대중이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채권단 한 관계자는 “각 조선사들이 낸 입찰제안서를 바탕으로 철저히 검증하면 된다. 그 외 어떤 고려사항도 없다”며 “그런 면에서 현대중 관계자들이 장외에서 공개적인 발주 압박을 가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지금 어렵지 않은 조선사가 어디 있나. 잡음이 적으려면 철저하고 객관적인 발주만이 정답”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대상선은 상반기 안으로 초대형원유운반선 5척에 대해 조선소 선정 및 세부조건 확정 후 신조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현대상선은 소형 컨테이너선 5척 등도 하반기까지 추가 발주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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