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번호 수집권한 있는 통신사·국가기관과 경쟁 어려워…임의번호로 대체 절실

주민등록제도가 핀테크 스타트업들을 출발선에서부터 뒷줄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다수 스타트업들은 주민등록번호(이하 주민번호) 수집기관이 아닌데, 전자상거래시 본인인증을 하려면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서비스 절차가 번거로워진다는 얘기다. 반면 정부기관이나 통신사 등 주민번호 수집권한이 있는 기관은 본인인증 절차를 훨씬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 주민번호가 출발단계부터 스타트업들을 옭아맨다는 빈축을 사는 이유다.   

 

한 핀테크 업체의 본인인증 화면. 주민번호 수집권한이 있는 통신사를 통해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 사진=정지원 기자


한국은 전자송금이나 결제시 본인확인수단으로 공인인증서를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공인인증서를 등록하려면 주민등록번호를 넣어 최초 1회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만일 이 절차가 없으면 핀테크 스타트업들도 충분히 독자적 어플리케이션 내에서 본인인증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공인인증서가 고유 킷값을 주민번호 뒷자리까지 매칭시키다 보니 주민번호 수집권한이 없는 핀테크 업체들은 통신사나 한국신용정보원 등 주민번호 수집기관을 거쳐 본인인증을 할 수밖에 없다.  

 

 

 

 

 


핀테크 업체인 A사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개인이 가입한 보험을 한 눈에 보여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A사 서비스를 활용해 눈먼 보험금을 찾을 수 있고 중복 가입 여부도 체크할 수 있다. 한국신용정보원의 ‘내 보험 다 보여’도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컴퓨터를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A사는 대기업과 정부 산하 기관 등 ‘금융 공룡’들과 비교하더라도 혁신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금융공룡과 계속해서 경쟁하기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한국신용정보원의 '내 보험 다 보여'는 웹사이트 내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최초 본인인증을 할 수 있다. / 사진=한국신용정보원


A사 부대표는 "우리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각 보험사마다 공인인증서를 모두 등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반면 주민등록번호 수집 권한을 가진 대기업들은 보다 간편하게 절차를 마칠 수 있다“면서 ”스타트업은 정보비대칭성으로 인해 대기업과 출발선부터 다른데 어떻게 아이디어만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나”며 고충을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사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 업체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 일반 스타트업의 경우 주민번호를 통한 본인인증이 필요한 서비스들은 앱 내에서 자체적으로 제공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절차가 번거로워지고, 잠재고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핀테크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현행 주민등록제도 개선 방안으로 ▲주민번호를 용도별 임의번호로 대체 ▲공인인증에 필요한 고유키값을 주민번호 앞자리에 한정 ▲공인인증서 이외의 본인인증 방식을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방식 등을 제안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민등록제도만 개선되더라도 핀테크 스타트업이 진출할 수 있는 사업영역이 훨씬 넓어질 것”이라면서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을 성장시키려면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고 필요한 규제는 도입하는 등 규제합리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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